2014. 5. 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17)

본문 : 행 1:12-14

제목 :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이번에 세월호 때문에 온 국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교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고 모든 일을 원칙에 입각해서 바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맡은 책임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함으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선박회사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사주를 비롯해서 임원들과 실무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사고가 난 후 구조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이지 못한 해경에도 책임이 있어서 아예 해경을 해체하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잘 알아보지 않고 그 선박을 선택한 학교 당국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수학여행을 주선한 교감선생님은 구조가 되었지만 그 책임감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리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셨느냐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누군가를 원망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책임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의에 의해서이든지 타의에 의해서든지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나의 결정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바르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믿어버립니다.

일일이 점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믿고 살아야 하지만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소소한 일까지 다 체크하고 살지는 못하겠지만 아주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신중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사건을 대하면서 누구의 책임을 묻고 원망하고 하는 것보다 우리 교회들도 한번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도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서 영원한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구원의 방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들은 다 그냥 그렇게 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탄 배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체크를 해 보아야 합니다.

 

무사하게 천국까지 도착할 수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목표지점을 향하여 가고 있는지 너무 많은 짐을 싣고 가지는 않는지 세상의 물이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특별히 사도행전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1장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가 신약교회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여기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 출발점이 교회의 원형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갔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다락방에 모였던 신약교회의 첫 성도들이 제일먼저 한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고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모여 있는 이 배가 구원의 방주라고 한다면 기도는 무엇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배를 앞으로 가게 하는 엔진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방향을 잡는 키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능력을 받는 것 추진력을 가지는 것 엔진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능력을 받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방향을 잡는 키의 역할을 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둡니다.

기도는 우리가 나아갈 바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가는 길이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본문 14절에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120명 정도 모였으면 거기 별별 사람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앞장서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성격이 급한 사람 유별난 사람 이런저런 사람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조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모였으니까 앞으로 해야 될 일도 많고 하니까 우리를 이끌어 갈 회장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총무도 뽑고 회계도 뽑아야지 일이 됩니다. 그리고 각 팀을 만들어서 업무를 분담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뭘 그렇게 복잡하고 골치 아프게 합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하면 됩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뭘 조직을 하고 뽑고 그럽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라고 반대를 할 것입니다.

답답하니까 좁은데 이렇게 있지 말고 좀 넓은 데를 물색해서 나가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뭘 하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간표를 정하고 시간마다 할 일을 정하고 계획대로 하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만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한 사람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가 힘을 내서 열심히 오로지 기도에만 열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다락방이 신약교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신약교회의 시작이 기도로 시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고 기도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는 자기가 믿는 신에게 자기가 바라는 마음의 소원을 빌어서 응답을 받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나 미신을 믿는 사람이나 다 기도를 최고로 여깁니다.

누가 기도의 응답을 잘 해주는가에 따라서 참신이 되기도 하고 거짓신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가끔 기도 응답이 안 된다고 하나님이 혹 안 계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기도의 응답이 교회에 다니는 제일 큰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도가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기도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뭘 바라기가 미안해서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냥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살면 되지 지금까지 받은 은혜도 너무나 많은데 또 무엇을 더 달라고 하느냐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사람은 욕심을 버려야 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마음에 소원이 없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면 되지 뭘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성도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호흡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육신이 죽듯이 기도가 끊어지면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는 험한 파도에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물결에 휩쓸려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세월에 휩쓸려 떠내려가서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가는 목적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바르게 가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힘 있게 갈 수 있는 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각자 받은 은사대로 어떤 사람은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을 하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사람들이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전심전력을 다하여서 끊임이 없이 언제나 계속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락방에서 시작했던 그 기도처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기도에 힘쓰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특별히 다락방에 올라갔던 처음 교인들이 기도에 힘썼던 것은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기도하는 줄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시작하는 일이 무엇이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았기 때문에 기도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힘을 썼을 것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간절함도 없고 간절한 기도도 없는 것입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본문이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앞뒤의 내용을 살펴봄으로 그들이 기도했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 선교백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재철 목사님이 오랫동안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하셨는데 오늘 본문을 설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 남가주의 한 대형 한국인 교회에서 특별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런 표어를 내걸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부모의 새벽기도, 자녀의 평생축복

자녀의 새벽기도, 부모의 노후대책

아내의 새벽기도, 남편의 영적성공

 

아내의 기도가 남편의 성공이 아니라 영적 성공이라고 해서 살짝 피해갔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이라는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이 오히려 세상적인 성공에 중점을 두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별 새벽기도를 할 때 주로 나오는 제목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도가 이런 기도가 주요 핵심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에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만 기도한다면 교회는 뭔가 문제가 있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이런 기도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만 하는 것은 우리가 탄 배를 세상을 따라 흘러가게 하는 원인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이 세상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어 보이시면서 무엇을 하셨다고 했습니까?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된 그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시작된 그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완성되는 그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나라가 나에게도 임하여지기를 위해서, 나도 그 하나님나라의 일원이 되어서 살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출세를 하고 부자로 행복하게 살고 그런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이 먼저 이 세상의 행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건강과 이 세상에서의 부와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천국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령님이 오시기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모인 목적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그동안 잘 몰랐던 것들 조금은 알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일들을 확실히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고 확신을 가지고 믿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왜 부활하셨는지 어렴풋이는 알지만 확실히 일지 못하고 확실히 믿지 못했지만 이제 성령님이 오시면 확실한 것을 알게 될 것이고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한다고 성령님이 오시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오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는 것이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신 후 그들이 받게 될 은혜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오순절에 이미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이미 임하여 계십니다.

물론 우리 중에 혹시 성령님도 받지 못하고 예수님도 믿지 못하는 그저 손님으로 오신 분들이 혹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 마음속에는 이미 성령님께서 와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와 계시는데 오십시오, 오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강하게 역사해달라고 성령님의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강하게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 이상 이 교만한 나의 자아가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더 확실히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확실히 알고 확신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사니까 수십 년 교회에 다녀도 확신도 없이 변화도 없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 자기만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오시면 나는 엄청난 사람이 됩니다.

나의 신분이 확 바뀌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에서 칭찬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영 죽을 몸이 영원히 살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혼자 외롭게 쓸쓸히 힘없이 살다가 사탄을 따라 영원한 지옥으로 가야할 인생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능력을 받아 살면서 우리주님을 따라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가게 됩니다.

 

성령님 나에게 오시옵소서. 나에게 오셔서 강하게 역사하옵소서. 이 병들고 죽어가는 인생을 새롭게 고쳐주옵소서.

이 힘없고 하찮은 나에게 힘을 주옵소서.

세상을 능히 이길 능력을 주옵소서.

나에게 위로자가 되시며 나의 변호자가 되시며

나의 인도자가 되어서 나를 위로하시고 나를 대변해 주시고

험한 세상 바르게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하신 예언이자 명령이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성령님이 오시면 권능을 받아서 해야 할 일이 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받은 이 사명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에 증인이 되어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이 그들에게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피땀을 흘려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그들도 고난의 길을 앞에 두고 그렇게 전심전력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증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은 그냥 우리만 알고 우리만 믿기에 너무나 아깝고 귀한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또 나가서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그 다락방에서 처음 시작된 교회는 전심으로 기도하는 일로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성령님의 강림을 위해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기억하고 우리도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위해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힘써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