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15)

본문 : 행 1:9-11

제목 : 하늘에 오르시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삼차원의 세계라고 합니다.

일차원은 직선을 말하고 이차원은 면적을 말하고 삼차원은 공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우리를 삼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삼차원의 세상 말고 사차원의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차원의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다가 시간을 더해서 시공을 초월해서 갈 수 있는 어떤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가는 기구를 발명해서 그 기구를 타고 가보면 거기 사차원의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즘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여행을 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공간을 이동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영화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우리도 시공을 초월하는 그런 사차원의 세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차원의 세계보다 훨씬 더 높은 5차원 6차원의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시는 부분을 생각해 볼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를 않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은 혹시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처럼 신비한 몸으로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몸으로의 부활은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부활보다도 더 믿지 못할 일입니다.

사람이 날개도 없이 기구도 타지 않고 하늘로 상승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하늘에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 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신 제한적인 말씀이지만 그 말씀의 진실함을 믿습니다.

 

 

1.하늘에 오르심의 역사적인 사실

성경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40일을 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한 증거로 친히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면서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여러 가지 당부들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였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시고 또 특별히 제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당부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이라고 합니다.

       

 

1)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심도 십자가의 죽으심이나 부활하심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열한제자만을 말씀하는 것인지 그 외에 다른 제자들까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승천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특별히 본다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데” “보이지 않게 하더라”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하늘을 쳐다보느냐”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이렇게 특별히 본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로 자신이 가진 상식으로 이해가 잘 아 되는 부분은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승천과 같은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환상설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승천도 그저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의 위상이 하늘까지 높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하나님과 같이 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승천은 그런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하신 실제적인 사실입니다.

 

2)부활의 몸을 가지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부활하신 그 몸을 입으신 채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셨으니까 영으로 승천하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활하신 그 육신을 가진 채로 승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가지신 몸은 우리의 몸과 다른 몸이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실 수 있는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신비한 몸을 가지셨기 때문에 하늘로 오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3)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기까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까지 올라가셨습니다.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호위를 받으시면서 올라가셨습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구름이 가리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말합니다.

거기가 하나님나라입니다.

천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나님나라에 이를 때까지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된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임무를 마치고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승천을 하신 것입니다.

 

4)실재하는 장소인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나라가 분명히 실제적인 장소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를 할 수 없지만 그날이 되면 우리도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없어지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인 하나님나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거기 계시다가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2.하늘에 오르심이 주는 의미

예수님의 승천은 이 땅에서 모든 임무를 마치시고 원래 계시던 하나님나라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주는 귀한 승천입니다.

 

1)승리의 승천입니다.

에베소서 4:8절에 보면 바울이 예수님의 승천을 시편 68편 1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주님의 모습을 전쟁에서 승리한 왕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마치 승천하실 때 승리자로 승천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정말로 겸손한 모습으로 사셨고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더 이상 그런 실패자의 모습이 아니고 당당히 승리하신 승리자로서 승천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예수님을 무시하거나 예수님에게 해를 가하거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조용히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비참한 신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당당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쟁에 패한 사람들이 사로잡혀서 끌려가는 것처럼 비참한 신세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조롱을 하고 비웃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반대로 심판을 받고 비웃음을 당하고 비참하게 형벌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주님만이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당하게 승리자로서 하나님나라로 올림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2)대제사장으로서의 승천입니다.

히브리서 4: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희생 제도에 의하면 희생 제사를 드린 후에 제사장이 그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온 회중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속죄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상기하면서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몸과 피로 온전한 희생 제사를 드린 후에 단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희생 제사를 드린 후에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라라로 올라가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인용한 히브리서 4:14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이 바로 그 희생 제사를 드리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처럼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나라로 승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 받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기 위한 승천이라는 것입니다.

 

3)성령님을 보내주시기 위한 승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승천하시고 난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계시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이 오시면 누구든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 만나기 위해서 줄을 설 필요가 없습니다.

대기번호표 받고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4)우리가 갈 처소를 마련하기 위한 승천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가서 살 거처를 마련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살 거처를 마련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살게 될 거처가 다 마련이 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심판을 하시고 우리는 그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셔서 거기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우리도 위로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위로 올림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위로 올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늘로 올림을 받고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들어가신 그 하나님나라를 우리도 승리자가 되어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그 때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은 부활의 몸으로 변화하여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고 그 후로 항상 우리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의 모습처럼 우리도 그와 같이 공중으로 올림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그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올라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올라가야 할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나라에 올라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올라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올라가는 삶이란 우리가 주님 오시기 전에 이 세상에 살 때에도 우리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실패자의 삶을 삽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의 종이 되고 죽음의 종이 되고 영원히 멸망할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승리한 것처럼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돈 좀 있다고 눈에 보이는 성공을 했다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자들입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진리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그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함으로 제일 중요한 구원을 받는데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하며 땅을 치며 후회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인 줄 알지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받는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엄청난 쾌락을 준다고 해도 거기에 너무나 좋은 것들이 있다고 해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의 성공 때문에 세상에서의 출세 때문에 세상에서의 안락한 삶 때문에 이 좋은 것 이 귀한 것 이 절대적으로 가져야 할 것을 내어주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적극적으로 올라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고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 예배에 참여를 하고

더 주님나라를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이 세상에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을 하셨습니다.

이 승천은 많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 승천 속에 있는 여러 의미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승천은 우리에게도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귀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승리의 승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면서 이 세상에서도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