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7. 추수감사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0306)

본문 : 사 38:18-20

제목 : 산 자의 감사.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들이 많습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성경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육신적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시고 말씀대로 살면 건강해지도록 해 두셨습니다.

 

물을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도 물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물을 생수 혹은 생명수라고 말합니다.

 

좋은 음식을 잘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에게 주신 채식을 하시면 건강하고 육식은 먹지 말라고 하신 것 안 먹으면 됩니다.

돼지고기나 동물성 기름이나 피나 내장 같은 것 몸에 좋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미꾸라지나 장어 같은 것도 사실 몸에 좋지 않는 것들입니다.

 

육신의 건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하고 생기면 빨리 해소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마음에 있는 원망이나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원망하고 짜증을 내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 인사를 받는 것을 좋아하시겠지만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기 하나 더해서 영혼을 잃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습니다.

영혼은 우리의 영원한 우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육신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건강입니다.

영혼이 건강할 때 신앙생활도 더 잘하게 되고 모든 일들이 다 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감사가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정말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과 더 많은 교통을 할 때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과 교통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시 50:14)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시 147:7)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95: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일들을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다 너무나 큰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너무나 크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가까이하면 할수록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을수록 그 영혼은 건강하고 그 믿음은 굳건한 것이 되고 감사한 마음이 없고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은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던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고 이런 절기를 만들어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은 감사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으나 오직 산 자는 감사할 줄 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라는 사람은 남유다왕국의 13대 왕으로 25세에 왕이 되어서 29년간을 통치한 왕입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왕을 모두 합쳐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 왕을 뽑으라고 하면 첫 번째가 다윗 왕이고 두 번째가 이 히스가야 왕일 것입니다.

 

그의 행적이 기록된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하18:3)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서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한 일입니다.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고 거기에 있는 주상이나 목상을 깨뜨리고 찍어서 없애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모세가 만든 놋뱀까지도 그들이 우상처럼 섬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부수어버렸습니다.

 

히스기야 왕에게도 좋지 않는 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정직한 자로 보신 것은 이런 우상을 다 없애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려고 했던 것을 좋게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론을 말씀 드리기 전에 히스기야의 좋은 점을 말씀드리는 것은 이렇게 잘못된 것을 개혁할 줄 아는 개혁자이기에 우리가 그가 하는 고백을 잘 듣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죽은 자는 감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 스올이라는 말과 사망이라는 말과 구덩이라는 말은 사실 다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약간의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육신이 죽음을 의미합니다.

스올은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고 사망은 문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하고 구덩이는 사람이 죽은 후에 묻히는 무덤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죽음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했다고 봅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있어야 감사도 드리고 살아 있어야 찬송도 하고 살아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죽음 직전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산 경험을 해 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죽음 직전에 처했다가 다시 살려주심을 받은 후에 그 은혜에 감사하는 시입니다.

 

그가 25세에 왕이 되어서 14년을 왕으로 있었을 때 그러니까 왕의 나이 39세 때 그는 죽을병에 걸렸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병으로 인해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히스기야는 통곡을 하였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육신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을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고 15년 동안 더 살면서 왕이 해야 할 일들을 예전보다 더 잘 했을 것입니다.

아직 죽으면 안 될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죽음의 의미를 알게 하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죽을병에 걸리게 하고 죽음의 위기를 맛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도 사실은 이미 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죽을 날이 정해져 있고 그 죽을 날 앞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알기는 하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죽을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죽기 전에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려고 이런 말씀을 기록해 두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음을 실감하고 죽으면 할 수 없는 일 세 가지를 말하면서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죽으면 감사할 수 없고, 죽으면 찬송할 수 없고, 죽으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죽기 전에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18절 말씀에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하심을 바라지 못하되”라고 했습니다.

 

구덩이에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죽어서 무덤에 묻혀버린 다음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신실하심을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실하심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은혜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일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아주 분명하게 확실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내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서 다시 살게 되는 일,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일, 이 일만큼은 이 세상에서 내 생명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분명하게 확실히 해결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나의 것이 되게 하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고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즉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열심히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켜서 바르게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게 잘 안 되면 다른 방법은 없는가 살펴보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구원을 받고 볼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사탄의 종으로 살면 정말 큰일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뭐 좀 더 잘 먹고 잘살고 행복하고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매일매일 죽어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재물을 쌓아놓은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오늘 좀 더 잘 먹고 오늘 좀 더 좋은 집에 산다고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기 전에 반드시 해결을 하야 할 일은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아주 먼저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죽기 전에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18절 말씀에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라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특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만 하게 될 것입니다.

 

 

2.산 자는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9절 말씀에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산자 곧 산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함으로 살아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금 히스기야 자신이 하는 것처럼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이 세상에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고 다 살아서 걸어 다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살아서 걸어 다닌다고 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육신은 다 같이 살아 있지만 그 속에 있는 영혼은 죽은 사람이 있고 산 사람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산 사람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한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다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영혼으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이라고 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아서 모든 죄들을 다 조건 없이 용서를 받고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영원히 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는데 그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기도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회가 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도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감사의 표현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최고의 표현일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중세교회의 교회 음악은 너무나 어렵고 보통 사람들이 부르기가 힘이 드는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에 수준이 높은 사람이 들으면 듣기에는 아름다운 음악일지 몰라도 성도들이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마음대로 부르기에는 힘든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이제 찬송이 우리의 감정을 가장 담기 쉽고 누구나가 함께 감사함으로 기쁘게 부를 수 있는 찬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행하던 유행가에다가 가사를 고쳐서 만든 것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입니다.

 

당시에는 유행가라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음악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마음을 같이해서 부르기에는 음악적으로 맞지 않은 음악이 많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예배찬송을 만들어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즘 우리가 예배시간에 많이 부르고 있는 예배찬송입니다.

 

찬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음악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을 잘 담아서 부르는 것입니다.

 

찬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감사가 없는 찬양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리면서 손을 들기도 하고 일어서서 찬양을 하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면서 찬송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춤추며 기쁨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별로 감격이 없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들의 영혼이 아직 죽어 있는 사람들이

형식을 찾고 격식을 갖추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기뻐하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 사람이십니까? 정말로 살아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손을 들고 일어서서 기뻐 춤을 추면서 찬송하십시오.

그것이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삽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손을 들지도 않고 일어서지도 않고 기쁨으로 노래하지도 않고 아주 중요한 구원받은 백성의 의무를 외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시시하게 보입니까?

살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같잖게 보입니까?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옵니까?

찬양할 때 눈이 감기고 목이 잠깁니까?

그렇다면 아직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살아나십시오. 정신을 차리십시오.

세월을 아끼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지금 당장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진실 된 찬양을 드리는 살아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히스기야 왕의 고백을 통하여 죽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받는 일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생에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히스기야의 서원이 여러분의 서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