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22)

본문 : 요 11:25-26

제목 :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이 있다고 고백을 하면서 그 믿음을 그냥 추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그렇게 되겠지 혹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될 일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진짜 그렇게 되는 것을 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부활과 영생에 관한 믿음이 그런 것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활과 영생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다시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과 비교할 수 없이 너무나 완벽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영생이란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도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걱정근심해가면서 고통을 당해가면서 그렇게 영원토록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경험과 언어로 형용할 수없는 완벽한 복락의 삶을 영원토록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사도신경을 통해서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얼마나 진심에서 나오는 고백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의미 없이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기대감으로 고백합니다.

그런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되물어 보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시고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이 물음 앞에 진실한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정말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지 아니면 그냥 믿는척하고 사는 것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현실을 통해서 확실한 믿음을 주시는 예수님

우리는 로마서나 에베소서를 통해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수십 번 반복해서 배웠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의인이 되기도 하고 죄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특별한 백성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 몇몇을 빼고는(물론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고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문제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 충분하게 믿고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부족한 상태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속에서 그 믿음의 증거들을 보여주시고 훈련시키시고 확신을 가지고 살게 해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빛을 발하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노력도 없이 그 좋은 믿음을 사장시키고 믿음도 없는 사람들처럼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게 되어서 사람을 보내어서 예수님을 청했습니다.

사랑하는 오라버니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으니까 예수님께서 얼른 오셔서 고쳐달라고 예수님을 청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을 오히려 이틀 동안이나 거기 더 계셨다가 천천히 오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고 난 후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안타까워하면서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께서 늦게 오시는 바람에 이미 죽었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르다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절)라고 했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에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시기를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마르다가 그것을 지금 현재 있을 일로 믿지 않고 미래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때에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그런 고백이 그냥 미래에 될 일에 대한 막연한 고백이 아니라 정말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증거로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이미 죽은 지 사흘이 되어서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날 정도가 된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보고 삶 속에서 경험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의 고백이 정말로 믿고 확신하는 고백이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런 기적적인 일을 행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이 내속에서 확실한 나의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의 더욱 성장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고 고난들을 통하여 연단을 받게 하시고 그 연단을 통하여 그 믿음이 확실한 나의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귀한 믿음을 받고 또 훈련의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훈련을 회피하고 믿음을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아사직전에 이르러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불려나갈 쭉정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내가 왜 어려운지를 생각해보세요.

힘든 일이 생기면 이런 힘든 일이 왜 생겼는지를 생각해보세요.

그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고 그 힘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그 어려움을 이길 생각을 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더욱 믿음이 강해져서 많은 일들을 하면서 살았던 것을 봅니다.

어렵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포자기 하고 있으면 어려움은 더 커질 뿐입니다.

그 어려움들을 통하여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고 믿음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은 훈련이 없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실 때 그 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고 그 훈련을 잘 받지 않으려고 한 사람들은 실패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도 원래 그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시키셨을 때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고 따름으로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그 믿음의 시험에 통과했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의 믿음을 인정하셨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기모인 우리는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만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아슬아슬하게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믿음을 훈련을 통해서 강한 믿음이 되게 해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 안되시면 훈련받기 너무 힘드시면 그 믿음이라도 잃지 않게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더 후퇴라도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답게 살기를 원하시면 힘을 내시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오시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더 충성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이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정말로 확신에 찬 강한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부활을 믿는 믿음

25절 말씀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아직 부활하시지 않으신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직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보지 못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시니까 정말로 믿음이 필요한 질문이었습니다.

가끔 사람이 부활을 하는 일이 있었다든지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신 후였다면 쉽게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런 경험도 없고 들어본 일도 없는 것을 그것도 사람이 다시 산다는 엄청난 일을 믿느냐고 물어보시니까 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 황당한 물음에 마르다는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라고만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그가 부활을 믿는 이유까지 설명을 하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데 부활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냥 믿는다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믿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주시고 자기 자신도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냥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의 확실성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또 보이지 않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일이고 미래에 될 일이지만 그것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증거가 있는 너무나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고 성경에 기록하셨고 우리의 삶 가운데도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증거들을 잘 살피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부활의 신앙을 더 확실하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에 더 급급하고 작은 고통에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삶은 우리가 더 기대할 것이 못됩니다.

살아볼수록 한계가 있고 살아볼수록 고통스러운 것이 이 세상의 삶입니다.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이 세상의 삶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너무나 우울한 것이 이 세상의 삶입니다.

소망이 없는 이 세상의 삶에 너무 매일 것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가난할수록 좋다는 것은 그 가난을 통하여 부활의 소망을 더욱 굳건히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고난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그 고난을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비록 우리는 어려운 삶을 살지만 그 어려움을 통하여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제일 불행한 사람은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부활의 신앙을 키우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핑계로 삼는 사람입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활을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소망을 더욱 굳건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 주시는 훈련과 시험에 잘 통과하심으로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도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3.영생을 믿는 믿음

본문 26절 말씀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습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의 육신을 가지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은 때가 되면 죽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신비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여기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의 영혼이 거듭났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산 영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산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영혼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미래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생명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새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새 생명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의 삶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아끼고 더 즐겁게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그저 서론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삶을 시작함에 있어서 준비운동 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잠시 잠깐의 이 세상이 끝이 나면 우리는 더 좋은 곳에서 완벽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보장이 되어 있고 이것을 믿는다고 우리는 고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영생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정말로 확실하게 고백하는 믿음의 고백이 되려면 말로만 그렇게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로마서 5장을 배우면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몸은 죽어도 부활할 것이고 영혼은 지금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토록 살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실을 바르게 알고 확실히 믿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과 영생의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저주인 죽음과 지옥의 형벌에서 완전히 풀려났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부활과 영생의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니까 자신의 신세가 서글퍼 보이고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설교를 하면서 이런 예화를 말씀 드렸습니다.

100년 전에 미국 최대의 구두쇠로 꼽힌 사람은 히티 그린이라는 노파입니다.

아주 장수한 할머니인데 독자(獨子)를 두었습니다.

몇 십 년 전 이아들이 다리에 병이 나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 다리를 잘라내고 한 평생 절뚝발이로 살았습니다.

이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묽은 죽으로 연명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실 때 병명이 영양실조였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할머니의 저금통장을 보니까 100년 전 당시의 돈으로 1억불이 들어 있었습니다.(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을 해도 10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영양실조로 죽고, 아들은 다리 수술을 못해서 절뚝발이로 살다가 죽게 만든 사람에게서 1억불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통장에 1억이 있으면 뭐하고 100억이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이 할머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쓸 줄 모르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이 할머니의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거든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활과 영생의 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을 늘 고백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그냥 허공에 내뱉는 독백이 아니라 정말로 확실히 이루어지 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막연히 바라는 소망이 아니라 정말로 이루어질 확실한 사실임을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생은 이미 시작이 되었고 우리의 몸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더 신비하고 완벽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복을 누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이 세상에 급급하지 마시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즐겁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서 기쁘고 즐겁게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