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04)

본문 : 행 1:3

제목 :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오늘날 교회 내에 이미 초대교회 때 예언을 하고 그 때부터 시작이 되었던 이단의 무리들이 많이 들어와서 우리는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이단이라는 말을 문자대로 풀이하면 다를 이(異)에 꼬리 단(端) 이란 한자를 씁니다.

즉. 처음은 기독교와 비슷한데 그 끝이 기독교와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날 교회 내에 더 심각한 것은 이단이 아니라 이두(異頭)의 무리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두라는 말은 제가 이단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만든 말입니다.

아예 머리부터 즉, 처음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종교이고 사이비 종교입니다.

그런데 말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단이 있고 이두(異頭)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입니다.

그 하나님나라가 우리가 전하여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해야 할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요 목적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회가 이 복음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언제부터인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세상의 나라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주장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아주 교묘하게 우리를 속여서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의 관심을 우리의 마음을 나그네처럼 행인처럼 스쳐지나가야 할 이 세상으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아주 목적을 바꾸어버린 그 사람들을, 꼬리가 아닌 머리통부터 바꾸어버린 그 사람들을 이단보다 더 나쁜 이두라는 이름을 쓰고 그들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중점적으로 하신 말씀이 이 하나님나라의 일에 관해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의 40일은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제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시간에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아주 소중한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소중한 이야기가 “하나님나라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누가가 먼저 쓴 글 즉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나라를 아주 소중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43절 말씀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고 심지어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왜 하나님나라가 복음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나라의 일이 무엇인지 본문은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가 먼저 쓴 글인 누가복음에도 “하나님나라”라는 말은 많이 등장하지만 그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지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나라가 어떤 것인지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가 들어갈 수 있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들어갈 수 있고 거기 들어가는 자가 복되다고 했지만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또 비유로 하나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비유에서도(겨자씨와 누룩) 하나님나라가 전파되어 나가는 과정을 말씀하시지만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라는 명령은 많이 나오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가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면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이루어진 하나님나라가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복음서를 통해서 또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살게 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된 영원한 천국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시고 그 왕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이방 나라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당시의 패권 국가였던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시면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다스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오셨다고 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를 다시 만드실 것이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내심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높은 자리 권력이 잇는 자리 한자리씩 맡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자 제자들은 실망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고기 잡던 베드로나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고기를 잡으러 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시고 자신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나라의 일이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난 후에 다시 부활하여서 살게 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가면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가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보다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대강 적당히 얼버무려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에 사는 것이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고 사는 것보다 더 비중이 높게 만들어서 이 세상의 하나님나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르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고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가 우리 마음에 이미 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도 하나님나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만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임했고 우리 마음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이미 우리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이고 진행일 뿐이고 그 하나님나라는 미래에 완성이 되는 것이며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받아 죽으신 후 부활하셔서 친히 살아계심을 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하나님나라와 연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하나님나라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었다면 갈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의 산상보훈을 통해서 이미 배웠습니다만 누가복음 6장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0-21)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6:24-25)라고 했습니다.

 

지금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매우 싫어할 것입니다.

지금 배불리 잘 먹고 웃고 즐기며 사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싫어할 것입니다.

가난한 게 뭐 자랑이야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슬퍼서 우는 것이 뭐 자랑이야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그래야 헌금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이지 거지처럼 사는 것이 무슨 복이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웃고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반대로 가난한 것이 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리고 우는 것이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자가 잘 사는 사람이 십자가를 의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십자가를 의지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성공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권력 때문에 십자가를 의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흉악한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성공한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행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 때문에 자신의 똑똑한 머리를 믿는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판단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자기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배고픈 사람 슬픈 일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알고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비록 가난하고 배고픈 삶을 산다고 해도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똑똑하고 남달라야 한다면 또 서로 경쟁을 해야 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다 정해지고 누구나가 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그것이 이미 다 확정이 되어 있고 또 우리가 천국백성으로 확정이 되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시편 85편 5절 말씀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 즉 천국으로 가는 대로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대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주 시원하게 뚫린 천국 가는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앞이 잘 안보이거나 꾸불꾸불 하거나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있거나 힘이 들고 어려운 길이거나 두드려 보고 연구해 보고 가야 하는 길을 가졌다면 참 걱정스럽고 위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천국 길은 아주 확실하게 뻗어있는 아주 쉽고 편한 대로와 같은 길입니다.

어려울 것도 힘들 것도 머리 싸매고 연구하고 깨달을 것도 없습니다.

이미 깨끗하게 뚫려있는 길을 그냥 가면 됩니다.

 

이렇게 쉽고 확실한 길을 만들어 주셨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딴 길을 연구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행을 하면서 깨달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입니다.

 

 

미래에 있을 하나님나라를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천국은 미래에 있을 것이고 지금 우리는 세상에서 고생만 하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은 비록 미래에 오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그 천국을 미리 맛보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고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냥 헛된 삶을 살 뿐입니다.

 

뭔가 보람된 일을 찾아보려고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뭔가 선한 일도 찾아서 해보지만 별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삶을 준비하고 사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모아두면 뭣합니까?

가지고 갈 수가 있습니까?

다 쓰고 갈 수가 있습니까?

많거나 적거나 다 그냥 두고 빈손으로 가야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물을 천국에 쌓아두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우리의 봉사나 우리의 헌신들이 다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상급이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마지막인 줄 알고 나이가 들어가면 허무하게 한숨 쉬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소망에 찬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날로 늙어지고 병이 들고 죽어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성공과 실패에 온 인생을 걸고 삽니다.

성공한 사람도 더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울해지고 실패한 사람은 낙망하고 좌절하고 자신을 자책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성공이나 실패에 너무 마음 쓰지 않고 삽니다.

비록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 실패가 오히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고 안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처럼 남의 것에 욕심내지 않고 가난하게 산 사람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나 과오들을 가슴에 안고 늘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살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죄를 다 용서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벌을 받게 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는가만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받을 하나님나라는 미래에 있을 것이지만 지금 이미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탄의 종으로 죄의 종으로 매여서 살지만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복음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사는 것이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뽐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