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2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종합08)

본문 : 마 6:34

제목 : 염려하지 마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금년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말씀을 드린 설교 주제가 염려에 관한 설교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기 때문에 염려 없이는 살 수가 없는데 염려하지 말라고 설교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하여 가장 많이 말씀하신 주제가 또 염려에 관한 교훈이기 때문에 염려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설교 들으시고 염려하지 않고 사십니까?

설교는 그렇게 들었지만 염려를 하지 않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계속 염려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또 한 염려 하는 사람입니다.

염려하면 제가 아마 일등일 것입니다.

오늘도 교인들은 별 탈 없이 잘 지냈는지

교회당 불은 다 끄고 문은 잘 잠갔는지.

혹시 에어컨 켜 둔 채로 문 잠근 것은 아닌지

차는 주차지역에 잘 세워뒀는지 그런 염려 때문에 한 바퀴 돌고 들어와야 마음이 편합니다.

 

사실 이런 염려들이야 조금씩 하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그런 염려 때문에 당하지 않아도 될 사고들을 미연에 방지하기도 하고 또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기도 할 것입니다.

 

문제는 쓸데없는 염려들이 문제입니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하는 염려들이 문제입니다.

하지 않아도 될 염려를 함으로서 고통을 당하고 건강이 훼손되고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보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또 하나의 교훈은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우리의 가치관과 여러 가지 생각들을 바꾸지 않는 한 하늘나라에서의 삶 즉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천국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에 대한 교훈도 원리가 그렇습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한들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염려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식구조가 옛 사람의 의식구조와 똑 같다고 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염려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의식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생각들을 근본적으로 바꾼 후에야 예수님의 말씀대로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19절의 말씀부터 시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19절부터 우리가 염려하고 사는 이유들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근본적인 가치관을 바꾸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심으로 염려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염려하는 이유

 

1)보물을 땅에 쌓으려고 하니까 염려를 합니다.

6장 19절에서 21절에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교훈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자들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하는 모든 선한 일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보물을 땅에 쌓아두려고 하니까 늘 염려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라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해로운 욕심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해로운 욕심이 파멸과 멸망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친 욕심 즉 해로운 욕심으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탐내는 자는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세상의 일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염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려고 하는 사람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좋은 일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염려가 필요 없습니다.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벗어주려는 사람이 뭘 염려하겠습니까?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십리까지 가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무슨 염려가 필요하겠습니까?

이 세상이 삶의 종착역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면 이 세상의 잘 되고 못됨이 그리 큰 염려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너무 눈을 고정하지 마시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염려들이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2)진리를 볼 수 없으니까 염려를 하게 됩니다.

6장 22-23절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져서 진리를 볼 수 있으면 우리의 삶 전체가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서 사는 사람은 내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사람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처럼 이신칭의의 진리를 알고 영원한 천국을 알고 그 나라를 이미 상속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 그 자체가 염려거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잘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볼까 늘 염려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3)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니까 염려를 합니다.

6장 24절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면 하나님이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을 소중하게 여기면 재물이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냐 이 세상이냐 라고 할 때 과감하게 하나님을 택하려고 하는 사람은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니까 온갖 염려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에 교회에 갈 것이냐 일을 하러 갈 것이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사람은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냥 무조건 교회에 간다고 결정을 해두고 사는 사람은 망설일 것도 염려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결정을 한대로 교회로 오면 됩니다.

 

선한 일만 할 것인가 적당히 악한일도 할 것인가 망설이는 사람은 걱정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냥 무조건 선한 일만 한다고 결정을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살아도 선한 일 보다는 악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신앙생활을 적당히 할 것인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는 사람은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을 한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두 주인을 섬기면서 사셨으면 이제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렇게 사시면 열려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2.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

 

이렇게 우리가 염려를 하고 있는 이유들을 간접적으로 말씀을 하시고 이제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1)영원한 생명의 보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제일 많이 걱정을 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목숨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할 것인데 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은 생명에 관해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육신의 생명에 관한 것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더 살라고 하시면 더 사는 것이고 이제 그만 살고 오라고 하시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서로 정을 나눈 가족들과 성도들과 오래 함께 살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더 좋은 세상에 와서 살라고 하시면 모든 것 털어버리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가야 되는 길인데 좀 일찍 가거나 좀 늦게 가거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잠시 육신과 헤어지기는 하지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우리의 몸도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죽으면 없어지는 사람들처럼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죽음에 대해서 열려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일용할 양식의 보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어떻게 살까도 많은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무엇을 입고 살 것인가. 자녀들 교육은 어떻게 시킬 것인가 나의 노후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대책이 없는 일 때문에 걱정이 될 때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부자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런 걱정은 안 하고 삽니다.

부모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육신의 부모가 없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이시니까 하늘에 나는 모든 새들도 다 먹이시고 들에 피는 꽃들도 다 입히시는 분이시니까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 된 우리들을 그냥 두시겠느냐는 것입니다.

 

3)염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6장 27절에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키가 작다고 염려한다고 키가 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으로 키를 키운다고 합니다.

키 크는 운동 키 크는 음식 키 크는 약을 가지고 키를 크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크는 것이지 원래 유전자 속에 얼마나 클 것인가가 결정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압니다.

 

여기 키를 목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수명도 정해져 있습니다.

노력에 의해서 약간 더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염려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가지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내일 일은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

우리의 염려들은 주로 장래에 관한 일에 대해서입니다.

그러나 내일일은 나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만 충실하고 내일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내일을 위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내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란 대부분 내일이나 먼 장래의 일로 걱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는 일 대부분 나타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서 미리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모릅니다.

내일 우리가 염려하는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종말이 와서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말지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을 취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임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주관하셔서 만들어나가실 것입니다.

 

 

5)염려는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강해설교의 대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는 이 본문을 설교하면서 염려를 의인화 하는 것으로 보아서 염려를 사탄의 세력으로 보았습니다.

 

염려는 특별히 내일에 대한 염려는 대부분 없는 것인데 사탄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우리 속에 역사하여서 많은 상상력을 동원시키게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있지도 않는 일을 있을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충만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생활을 잘 하고 있을 때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좀 좌절하고 신앙생활을 좀 소홀하게 할 때 사탄은 염려라는 무기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키기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고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부정적인 일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들게 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탄이나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줘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내일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염려하는 것은 사탄의 꾐에 빠지는 것이고 내일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하나님께서 맡아 주관하실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는 것입니다.

 

3.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6장 33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걱정거리가 생길 때 그것을 붙잡고 염려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의”라고 할 때 로마서를 공부한 우리들은 먼저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의가 생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의란 직접적으로 이신칭의의 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의란 칭의의 의가 아닌 성화의 의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염려하지 말라는 교훈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을 의로운 삶을 사는 것, 의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선한 삶을 사는 것을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산상보훈을 통해 배운 대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고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재물을 주인으로 섬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먹을 것으로 입을 것으로 걱정하고 염려할 때 공중의 새를 보며 들의 꽃을 보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의입니다.

 

이런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주신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의를 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살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성경에서는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도 덤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면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받는 것입니다.

거기서 영생을 얻고 거기서 참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덤으로 이 세상에서도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면 필요한 것들을 덤으로 보너스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건강의 축복, 장수의 축복, 재물의 축복,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축복, 가족들과 부부의 행복들, 성공적인 삶 이런 세상적인 복들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함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염려하는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으려 하고 진리를 알지 못하고 두 주인을 섬기려 하기 때문에 염려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염려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았고 일용할 양식도 보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해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염려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 일에 대한 염려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먼저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도 더하여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