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종합09)

본문 : 마 7:1-2

제목 : 비판하지 말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산상보훈 설교를 처음시작하면서 교회의 표어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도들의 행복”이라고 정했습니다.

그 때는 대강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그냥 정한 것인데 산상보훈의 말씀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볼수록 표어를 참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가장 먼저 우리의 신분이 바뀝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거듭나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상속자가 됩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살게 될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분이 바뀐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그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전에 가졌던 가치관이나 생각들 목표들이나 살아가는 방법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사는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탄의 종으로 이 세상에 살 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 때 변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남을 비판하려고 하는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이 본문을 설교할 때 “우리의 눈을 바꿉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눈이 진리를 볼 줄 아는 눈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이 그동안에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분별하는데 열심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진리를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남의 단점을 보고 비판하는 눈에서 남의 장점을 보고 칭찬하는 눈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과거에 우리의 눈은 남의 잘못을 보고 비판하는데 익숙해 있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생각을 했고 남을 비판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눈을 바꾸어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잘되게 해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남을 보고 비판하는 눈에서 나 자신의 잘못을 보고 고칠 줄 아는 눈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빼려고 하지 말고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이 비판하지 말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남에게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비판하지 않는 것 보다 더 나아가서 비판하지 않고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할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의 무게를 재기에는 너무나 낡은 저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장 난 저울, 정확하지 않은 저울로 사물의 무게를 잰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판단 능력이 잘 못되어 있는데 그런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14장에도 비판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많은 구절들이 할애되어 있음을 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14:1)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채소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어도 된다고 주장을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생각은 고기 즉 제사 드린 음식을 먹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고 제사 드린 음식은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다니엘과 세 친구의 예)

 

또 어떤 사람은 특별한 절기의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은 날로 취급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특별한 날 즉 주일이나 안식일을 구별하여 잘 지키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모든 날을 같은 날로 취급을 하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는 채소만 먹는 사람 특별한 날을 구별하여 지키는 사람을 믿음이 약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음식이 다 좋은 음식이고 모든 날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 다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거나 깊이 이해를 하지 못하면 의나 불의 선이나 악에 대해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본 후에야 남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다 구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고 비판할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남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의 생각이 바르게 된 생각인지를 항상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구약에서 신약으로

구약성경이 더 중요한가, 신약성경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는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은 구약성경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고 신약성경은 신약성경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지식이 구약성경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만 보고 설교를 하면 다분히 율법적인 설교가 되기 쉽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설교가 되기 쉽습니다.

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기가 쉽습니다.

성도님들도 구약성경만 읽고 거기 나온 말씀대로만 생각을 하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이 옳은 일이고 무엇이 그른 일인지를 잘 구별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성경전체의 가르침을 볼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알아야 하고 그 율법을 바르게 해석해 주신 예수님의 교훈의 뜻도 알아야 하고 실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도 알아야 합니다.

 

2)율법에서 복음으로(몽학선생에서 그리스도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바른 지식을 가져야 되는데 그 바른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율법도 알고 복음도 알아야 할 것이지만 특별히 율법보다는 복음을 바르게 알고 복음을 더 깊이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율법은 율법대로의 기능이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삶의 기준이고 축복의 통로이며 그렇게 살 때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율법에 비추어보면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비판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이며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결국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율법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우리를 안내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안에서 우리 서로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의의 기준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3)인간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일반적인 종교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종교란 사람들이 행복하고 사람들이 잘 살게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런 사람 중심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받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무엇을 먹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면 그렇게 사는 모든 날이 다 거룩한 날이고 복된 날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은 다 좋은 일이요 칭찬받을 일이요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나 자신을 더 잘 살펴야 한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일은 없어야 되겠지만 꼭 비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실을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은 남을 비판하려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교훈이 많이 기록된 로마서 14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14:10-11)

 

1)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비판하느냐고 했습니다.

형제를 비판하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잘남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사실 남을 판단할만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2)내가 비판하려는 형제가 누구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네가 비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라는 말입니다

네가 비판을 하는 그 사람도 네 형제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었는데 네가 그 사람을 비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선택하셔서 부르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고 그런 우리를 위해주시고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런 자이듯이 우리 주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도 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형제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고 정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3)비판할 능력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인데 어찌 너희가 자격이 없는 너희가 내가 사랑하여 내 자녀로 삼은 사람을 비판하려 드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지식 그리고 내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다른 생각과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 서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만 판단을 합니다.

그 사람과 똑 같은 위치에 서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보모님 품안에서 자란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사람들의 그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끼니를 굶는 사람의 그 서글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가족과 사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가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배반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배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도가 나고 사업이 망하고 사고가 나서 불구가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연약하여 범죄를 한 다양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다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얇은 지식과 적은 경험으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형편을 비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을 우리가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헤아리면 그 헤아림으로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비판하면 나도 비판을 받고 내가 남을 헤아리면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제일 기분이 나쁜 것이 남에게 평가를 받고 헤아림을 받고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 평가가 좋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좋게 평가해주려고 하지 않고 잘못만을 지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평가를 받고 비판을 받는 것도 기분이 나쁘겠지만 문제는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각 사람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들이니까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헤아리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혼란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심판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고 다시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했습니다.(2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고(33절) 누가 정죄하겠느냐고 했습니다.(34절)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사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시는데 우리를 고발하거나 정죄하거나 심판을 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자비를 베풀지 않고 긍휼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남에게 행한 대로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심판이 없다했는데 남을 비판하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남을 비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엄격하게 생각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너무나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십자가를 붙들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남의 죄에 대해서 정죄하고 심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헤아리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아직도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자신도 율법에 따라서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느냐. 천국으로 가느냐 하는 그런 심판은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심판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할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정말로 아무런 평가도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즉 죄인으로 지옥에 가느냐. 의인으로 천국으로 가느냐. 하는 이런 심판은 성도들에게 없는 것이지만 그 외에 심판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여러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심판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심판이라는 말은 재판 석에 앉아서 쓰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기 때문에 그 심판들은 정죄의 심판이요 피고석에서 죄인으로 받는 심판을 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심판이라는 말을 재판 석에서가 아닌 운동경기장에서 심판이 서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말로 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죄인이 아닌 운동경기를 하는 자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잘못하면 바르게 하게하고 경기가 끝이 나면 그 거둔 성적대로 상을 주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판 석에 피고로 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점검을 받고 그 행한 대로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피고석에 서서 그들이 이 땅에 살 때 바르게 살지 못했음에 대하여 낱낱이 정죄를 받고 영원한 형벌로 끌려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 앞에 서서 우리의 아주 작은 선행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준 일까지도 그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복음을 바로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멸시하고 때로는 나 자신도 내가 믿는 이 복음이 참 별 볼일이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되었고 많은 것들이 나를 유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이 믿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소중한 믿음을 주신 우리 주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했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행한 대로 상을 주시는 그 심판대 앞에서 내가 행한 것에 비해 분에 넘치는 상을 받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주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볼 때 남을 비판할만한 자격이 우리에게 없음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비판하려는 그 형제 또한 하나님의 자녀 된 특별한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남을 비판하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에서 나도 율법대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