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61)

본문 : 마 7:20-21

제목 :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제가 평신도 때 생각하기를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것은 담임 목사 한 사람 잘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담임목사가 어떤 신학을 가지고 어떤 목적으로 목회에 임하는가에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제가 그 담임 목사가 된 후에 스스로 자문자답을 해봅니다.

나는 성도들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목회를 하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해봅니다.

 

그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얻기 위해서 훈련원도 만들어서 스스로 훈련을 받기도 하고 계속해서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해보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바른 성경의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에 관한 진리를 바로 알고 진리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기꾼들이 많아질수록 이단들이 많아지고 교회 내에 거짓선지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성도들이 그들에게 속지 않고 바른 진리의 길로 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천국에 가는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도 그 천국을 미리 맛보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천국을 이 세상에서도 미리 맛보면서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는 천국의 삶을 더 누리면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있고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짐을 우리 주님과 함께 지고 가면 쉽고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더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 길로 여러분을 안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저에게 있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염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천국에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우리 중에 혹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다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했는데 천국 문 앞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주여 주여 하면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제 설교의 목적입니다.

말씀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다시 한 번 살펴보셔서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오해하여서 주여 주여 부른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행함이 있어야 가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행함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주여 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여 라고 부르는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이 소용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은 다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첫째 조건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탈락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자 안에서 천국에 들어갈 자를 뽑는데 그 기준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우선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지 그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마음도 없이 그냥 아무리 주여 주여 소리를 질러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주님의 의미

구약성경에서는 성부 하나님을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대신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이 때 주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우주만물의 주인이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우리 예수님을 부를 때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이때는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사역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를 때 나를 구원해 주신 분임을 고백하면서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성부하나님이시든지 성자 예수님이든지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의 구원의 주체가 되시며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내 인생의 나의 것이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시며 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왜 내 인생이 하나님의 것이야?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인데 왜 간섭을 하려고 하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하고 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주종관계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서 종을 다룰 때는 정말 문자 그대로 종처럼 부려먹습니다.

주인을 위해서 힘든 일을 하게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는 것이 인간들에게 있어서 주종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면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여 주셨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하는 것이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에게 일을 시키고 착취하고 하는 그런 주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주로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가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도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다시 일어서게 해 주시고

상처뿐인 내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내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료해 주시고

방황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인생의 참된 길을 가게 해 주시고

무의미한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삶의 목표를 정해 주시고

영원히 멸망하고 말 비참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종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거룩한 무리인 성도라고 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고 예수님의 친구요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고 예수님과 한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혜택을 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아 누리는 종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종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복된 이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이름을 잘 못 부르는 것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인데 그렇게 불러도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라고 부르기는 부르는데 잘 못 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잘 못 부르는 것은 우선 앞서 말씀 드린 주님의 의미를 잘 모르고 그냥 주님이라고 부르는 경우일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님이라는 뜻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무엇의 주님인지 잘 모르고 그냥 남들이 주여 주여 하니까 그냥 같이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알기는 알지만 실제로 주인임을 고백하지 않고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없는데 겉으로만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 인생의 주인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말만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말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자기 것은 하나도 희생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도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주님의 날인 주일도 지키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도 자기의 것처럼 교회를 위해서 쓰지 않습니다.

물질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도 희생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주님을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은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실제로는 주인을 종처럼 부리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이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인에게 뭘 자꾸 달라고 합니다.

주님이라고 불렀으면 제가 뭘 해드릴까요 라고 해야 하는데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주인에게 뭘 해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모든 만물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을 성자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2.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라는 말보다 “행하는”이라는 말에 중점을 두어서 믿음보다는 행동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믿음이라는 말보다는 선을 행하고 율법을 행하는 일에 더 중점을 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보다는 행함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이 말씀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말들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뒤엎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강하게 성경 여러 곳에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행함을 강조하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능력을 약화시킨다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우리가 행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자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선한 일을 많이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4-5절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는 일들의 원칙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에서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어버렸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천국 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천국에 가게 되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아주 쉽게 우리에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무엇을 어렵게 만들어서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잘라버리는 그런 분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애를 쓰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어떤 율법을 지키거나 선을 행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명한 강해설교가인 아더 핑크는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분명히 그것은 그 뜻을 따라 온전하고 결함 없이 실천하는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온전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기는 하지만 현세의 삶에서 그처럼 탁원한 경지에 도달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마음과 뜻을 그리스도의 주장에 굴복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며 진실로 그가 나의 왕이 되시어 나의 생활을 주관하시기를 열망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리스도의 주장에 굴복시키는 것이며 진실로 예수님이 나의 왕이요 주인이 되셔서 나의 삶을 주관해 주시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고백할 때 우리가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3.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고 주님이라고 부르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하면 천국백성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님을 부르는 부름이 그 주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 정말로 그렇게 부르고 고백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 거짓으로 부르고 고백하는 것인지를 분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더 핑크의 주장대로 내가 진정으로 우리 주님의 뜻에 굴복했는가, 진정으로 그분의 나의 왕의로 나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그 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사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양의 탈을 쓴 이리나 거짓선지자를 구별하는 것처럼 열매를 보고 그것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삶의 목적이자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주여 라고 부르면서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지만 삶의 목표가 그 고백과 다르다면 그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내 삶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과 구별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인용한 아더 핑크의 강해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처럼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많았던 적도 없었으며 오늘날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적었던 적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큰 교회에 가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중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너무나 적다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힐링 캠프라는 텔레비전 프로에 가수 박진영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 하는 것을 잠간 보았습니다.

 

그는 아주 유명한 가수가 되어서 돈도 많이 벌어봤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아 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도 많이 도와주면서 살아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참 운이 좋게 억수로 재수가 좋게 살았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었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적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라도 잘 못되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다 이룬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인도하고 도와주는 손길이 있었기에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내가 주인이 아니고 어떤 분이 주인이 되셔서 주도하고 계심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도 자신 스스로 움직이면서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100조개의 세포를 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손과 팔 이런 것은 내가 명령해서 스스로 움직이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고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움직이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심장이나 위장이나 모든 내부 기관들은 나의 명령이나 의지에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나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연히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그 창조품인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만드시고 지금도 나를 움직이면서 살게 해 주시는 그 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오늘도 이렇게 살아 있게 하시고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의 주인이시고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십니까?

그 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십니까?

그분만이 나의 구주가 되시며 그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만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삶의 증거가 있습니까?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 분의 뜻을 따르십니까?

 

모든 것을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나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여 주여 하는 것은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참된 의미를 알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 죄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알고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 그 열매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열매가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