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3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02)

본문 : 골 1:9-14

제목 : 복음의 열매인 성도들을 위한 기도.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강해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로가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골로새에 와서 세운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골로새교회에 이단의 사상이 들어와서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자 바울이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설명함으로서 그들이 바른 신앙을 유지하도록 하게 해줄 목적으로 보낸 편지가 골로새서입니다.

1장 3절에서 8절까지에는 바울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골로새교회에 복음의 열매가 맺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은 그들이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결실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망으로 인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됨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복된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한 귀로 흘려버리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골로새서교인들은 바른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참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데 골로새서 교회의 성도들은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그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성도에 대한 사랑 그것도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소식을 듣고도 염려가 되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한 것은 그 기쁜 소식과 함께 나쁜 소식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나쁜 소식이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리 외에 다른 사상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성도들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점점 그 좋은 것을 잊어버립니다.

또 주변에 다른 좋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처음 은혜를 받을 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님이시고 죽어도 딴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세월이 흐르면 마음이 그 자리에 있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한번 먹은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번 좋게 생각한 것이 끝까지 변함이 없이 좋게 생각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상하게 못된 습관은 죽어도 변하지 않는데 좋은 마음은 금방 변해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갈 1:6)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복음의 진리 이렇게 좋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 그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을 쉽게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터키 지방의 에베소교회와 여러 교회들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은 그 말씀대로 터키 지방의 모든 교회들이 그들이 처음 받았던 복음의 진리를 버리고 딴 길로 갔기 때문에 교회는 문을 닫고 그 귀한 축복들은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받고 있는 우리들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의 열매들이 없어지지 않고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고 더 자라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골로새교회에게 바랬던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었고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그 소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그 소원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귀한 믿음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의 뜻을 알라(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라)

본문 9절 말씀에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또 본문 10절 말미에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이 변하지 않으려고 하면 우리가 가진 이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이 변하지 않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왜 구원해 주셨는지를 바르게 알면 알수록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을 버릴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알면 알수록 실망을 많이 하게 됩니다.

특별히 좋은 사람은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속을 알면 알수록 실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좀 멀리서 보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너무나 좋은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우리 하나님을 잘 모르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니까 교회에 좀 다니다가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하나님을 두고 딴 곳으로 갈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할 때 그 앞에 붙어 있는 수식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하면 세상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내가 어떤 학교를 들어가고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내가 누구와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이런 개인적인 일 같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런 개인적인 뜻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많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원칙에 따라서 개인적인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일들은 성경말씀의 원칙에 의해서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질 일이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는 분명히 이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영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말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결혼을 했는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왜 불행하게 하십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선언을 해버립니다.

자기 눈에 콩깍지가 끼여서 그게 하나님의 뜻인 줄 자기가 착각을 한 것이지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하면서 앞에다가 수식어를 붙여놓았습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뭔가 이 세상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지식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앞에 ‘신령한’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 한 번 더 강조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영적인 면에 있어서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골로새교회에 당면한 문제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부자로 살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출세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어떤 신을 섬겨야 하는가, 왜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당시에는 온갖 잡신들이 세상에 많았고 그 신들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에는 온갖 잡신을 섬기는 무당들이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사이비 잡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협박을 하고 돈을 바치게 하고 심지어는 자식까지 신에게 바치게 하고 온갖 음란한 일들이 신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참 신이신 우리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었고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때처럼 이상한 우상숭배는 많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이 높아져서 이제는 그런 엉터리 미신들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섬기는 사람들은 많아졌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 영적인 일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고 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의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 이 세상에서의 성공학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성공하면 떠납니다.

이 세상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 된 모습을 보면 교회를 떠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바른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바울이 우리가 알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령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복음의 진리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 신령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며 무엇을 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영원한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열매인 하늘나라에 쌓아둔 소망과 그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알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2.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라

본문 10절 말씀에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도들이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열매란 그 일을 함에 있어서 결과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고 아무런 결과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을 계획하고 시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그 결과물인 열매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그 선한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냥 착한 일 좋은 일을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 착하고 좋은 일이란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 보다는 어떻게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느냐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열매라고 하면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사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 보다는 신앙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 어떻게 성공하며 사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열매라고 하면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고 기도 많이 해서 이 세상에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살고 부자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열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선한 열매란 그런 세상적인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배운 6절에 있는 말씀대로 골로새서에 말하는 열매란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고 맺은 열매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쌓은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그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과 동시에 해야 할 일을 앞서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아시고 우리 죄 대신 십자가에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인을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나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손들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잘난 척 하고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을 하고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주께 합당하게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면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고 그로 인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것을 선포하시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아주 쉽고 정확한 길을 만들어 주시고 알려주셨는데 그 길을 가볍게 여기고 아직도 이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맺어야 할 선한 열매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 소망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선한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맺고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울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3.기쁨으로 참고 견디라

11절 말씀에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힘든 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기다리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했을 때 이루어지는 소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간에 예수님을 믿거나 나이 많이 들어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평생을 기다리면서 삽니다.

그러니 때로는 다른 길을 살펴보기도 하고 의심이나 불평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일평생을 한 결 같이 주님 한분만 바라보면서 삽니까?

눈앞에 펼쳐지는 이 화려한 세상이 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만 바라보면서 참고 기다리면서 살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 세상사는 사람들의 살이 다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것 같고 부러운 것 같지만 들어가 보면 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경쟁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늘 걱정해야 하고 살얼음판 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끝나면 심판을 받고 영원히 벌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아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참고 견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힘과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해주시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피할 길도 주시고 극복할 길도 주시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오늘밤 이 세상을 마친다고 해도 오히려 더 좋은 하나님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어려운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오늘날의 교회도 복음의 순수한 진리에서 떠나 이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그렇게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알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기쁨으로 참고 견디게 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 줄 늘 배우고 깨닫고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더 좋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선한 일에 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갖는 것이고 그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오래지 않습니다.

세월은 금방 흘러갑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너무나 좋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