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8.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4)

본문 : 마 6:22-23

제목 :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의 눈이 밝은 눈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그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인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9:2)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일을 행한 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맹인을 고쳐주신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니까 하나님께로 온 분이라는 사람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안식일을 범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고 논쟁을 한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어떻게 병을 고치셨는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침을 땅에 뱉어서 그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고 실로암이란 연못에 가서 씻어서 낫게 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대로 흉내를 내 본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소경을 고쳐주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 9:39)

자신이 볼 수 없는 맹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하러 오신 예수님을 보여주어서 알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하고

볼 수 없는 맹인과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아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보지 못하게 하여 멸망의 길을 가도록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마무리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

 

사실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맹인이라는 것입니다.

뭘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맹인인 사람은 즉 맹인인 줄 아는 사람은 죄가 없지만 사실은 맹인이면서도 자신이 맹인 줄 모르고 모든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 진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 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깜깜한 세상에 빛이 있는가, 없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성한 눈을 가졌다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고 내가 진짜 맹인은 아닌가를 점검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본문 22절 말씀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1)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눈이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 몸의 눈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육신을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맹인으로 태어났거나 실명을 해서 이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볼 수 없다면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좋은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은 보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사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사는 것이 어디인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볼 수 있는 것을 보는데 만족하지 않고 볼 수 없는 세계를 보려고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현미경을 발견하여 아주 작은 물체도 볼 수 있게 했고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발명하여 저 멀리 있는 우주도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많이 편리해지고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무엇을 본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런 다양한 눈 가운데서 특별히 영적인 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말씀합니다.

 

단순히 육신의 눈이 성해도 좋다는 말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성하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눈은 몸을 바르게 인도하지만 영적인 눈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2)눈이 성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고 했을 때 “성하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하면’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플루스(ἁπλους)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건강한’, ‘진실한’, ‘단순한’, ‘풍부한’, ‘관대한’ 등의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눈이 건강해야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진실해야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눈이 단순해야 바른 것을 봅니다.

눈이 풍부해야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이 관대해야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이 성하다는 말은 이런 뜻으로 다 해석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건강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하면서 단순하고 풍부하면서 관대한 눈을 가질 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눈이 성하다고 하신 것은 이 말씀은 바로 앞에 있는 21절의 말씀 즉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하신 말씀과 연관해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외형적인 것 보다 은밀한 가운데 있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보물이 중요한 것은 그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우리의 마음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마음이 성하다는 것이요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눈이 성하다는 것은 바른 식별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은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눈이 성하다고 하는 것은 눈이 바른 분별력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을 판단할 때 바르게 판단을 합니다.

마음 자체가 바르지 못한 사람의 판단은 그 사람이 바르게 판단했다고 자부할수록 그 판단은 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엉터리 잣대를 가지고 사물을 재면 잘 잰다는 것이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잘못된 경험들 때문에, 잘못된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의 분별력이 흐려져서 무엇이 참된 것인지 무엇이 거짓된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바른 목표나 의도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눈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향합니다.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곧장 갈 때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눈이 바른 목적지를 보지 못하고 또 그 목적지를 향하지 않고 엉뚱한데 시선을 빼앗긴다면 우리의 몸도 엉뚱한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눈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나 이 세상의 쾌락으로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을 향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고정되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④눈이 성하다는 것은 영적인 진리를 바르게 아는 지혜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눈이라고 할 때 진리를 바르게 아는 지혜를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보는 눈이 정확해야 합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사선생님이 계십니다. 마음씨도 착하고 무척 친절합니다.

병원에 가면 병원비도 할인을 해 주고 아주 자상하게 대해주어서 너무나 좋은 의사선생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의사선생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 의사선생님은 실력이 부족해서 진찰을 잘 하지 못합니다.

내가 아프다고 해도 그 원인을 잘 알아내지 못하고 처방을 해 줘도 병이 잘 낫지를 않습니다.

 

의사는 착하고 친절한 것 보다는 병을 볼 줄 아는 눈이 밝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의사가 가져야 할 성한 눈일 것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마음이 착하고, 사랑이 많고, 일을 잘 할 줄 알고, 모든 면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에게 취약점이 있는데 진리의 핵심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야할 바른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성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목사는 마음착한 목사이기는 하겠지만 진짜 목사는 아닙니다.

목사는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를 바르게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눈은 영적인 눈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고 하는 것은 이런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건강한 눈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바른 분별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목표나 의도가 바른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진리를 바로 아는 지혜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2.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본문 23절 상반 절에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은 온 몸이 밝을 것이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눈이 성하면 즉 진리를 바르게 알아서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인생의 목적지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삶이나 행동들이 밝은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처럼 바른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이 성하지 못하고 나쁘면 즉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바른 목적지를 볼 수 없다면 그의 몸은 어두운데서 행하는 사람처럼 넘어지고 다치고 엉뚱한 길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눈이 나쁜 사람이란 거듭나지 않은 모든 인생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담의 타락을 통하여 모든 인생들은 죄를 짓게 되었고 그 죄의 오염으로 인해서 더럽혀진 마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는 진리를 볼 수 없습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데서 사는데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더렵혀지고 눈이 어두워진 상태인데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구원에 이르는 길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도 이신칭의의 교리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어두움 속에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 나쁘면 몸이 고생을 합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우리 몸이 고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가고 힘들게 가고 결국은 엉뚱한 길로 가고 마는 것이 타락한 인생 거듭나지 못한 인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 인생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3.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본문 23절 하반절 말씀에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과 눈이 나쁜 사람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밝은 빛 가운데서 걸어간다고 해도 때로는 모든 것을 보면서도 엉뚱한 길을 가기도 하는데 그 빛이 없어져버리고 깜깜한데서 걸어간다고 한다면 얼마나 치명적이고 절망적이겠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밝은 대낮에 길을 갑니다.

가야 할 길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했다고 컴퓨터에서 네이버 지도 검색을 통해서 지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하고 복사를 해서 가지고 갑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차에 있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그 지시를 따르면서 갑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스마트폰에서 길 찾기를 켜고 내비게이션이 혹시 틀리지 않는가를 비교하면서 목적지로 갑니다.

 

어떤 사람은 반대로 눈이 나쁩니다.

이 사람은 밤에 길을 떠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인데 가다가 보면 목적지가 나오겠지 모르면 가다가 물어보면서 가지하고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스마트폰도 없이 길을 갑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가 눈이 성한 사람과 눈이 나쁜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향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지로 삼고 그 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 목적지를 향하여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들이 아직도 성한 눈이 되지 못하고 나쁜 눈 그대로 이 세상을 살고 있으면 그래서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으면 그대로 살지 말고 그대로 엉뚱한 길로 가지 말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서 성한 눈을 만들어서 밝은 빛 가운데서 바른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성한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른 분별력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볼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바른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바른 목적지를 향하여 바르게 걸어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