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1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19)
본문 : 마 5:38-42
제목 :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을 때 별다른 피해가 없으면 남편의 청구대로 재판을 통해서 벌금을 내야 되고 다른 피해가 있을 때는 그 피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 보상 방법을 말할 때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라고 합니다.
어떤 피해를 입고 보복을 할 때 피해를 입은 만큼만 보복을 해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이 법은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할 때 피해를 입은 것 보다 더 많이 피해를 주는 일을 막기 위해서 제정한 법칙입니다.

둘이 싸우다가 한 사람 이를 한 대 부러뜨렸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가 부러진 사람이 화가 나서 너도 당해보아라 하고 세게 치니까 이번에는 두 대가 부러졌습니다. 
어라 나는 한 대인데 너는 두 대 그럼 너도 더 맞아보아라 하고 복수를 하기 시작하면 두 사람 이가 다 빠져야 싸움이 끝이 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법칙이 동해보복법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복수가 아니라 재판을 통해서 재판장의 명령에 따라 같은 손해만큼만 복을 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렇게 동해보복법을 가르쳤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을 대적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런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
고발을 해서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면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참아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나쁜 일을 하고서도 우리가 좀 따지면 이 말씀을 둘러 대면서 우리들보고 보복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법을 주신 것이 참 억울하게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악한 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피해를 당하면 당당하게 보상을 받게 해 주시고 통쾌하게 복수를 하도록 해 주셔야 되는데 이렇게 참는 것도 부족해서 더 많이 해 주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실천을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본문 38절 말씀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서론에서 언급한 출애굽기 21장의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원래 목적은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지나친 보복을 금지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 가해자는 피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요즘에도 교통사고가 나면 피해자는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합의금으로 돈을 더 받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가해자는 어떻게 하든지 보상을 덜 해주고 손해를 덜 보려고 할 것입니다.

이럴 때 피해자는 손해 본 만큼만 보상을 받게 하고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며 가해자는 피해자가 손해가 가지 않도록 적당한 보상을 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 법은 이렇게 양면성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해자 입장에서 반드시 피해자에게 그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입고 산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는 늘 바르게 잘 하는데 남들이 나에게 해를 입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나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바르게 착하게 잘 살려고 노력을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아서 내가 잘 살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서 국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부모가 가족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서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것이 무엇이냐고 원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내가 가해자입니다.
부지런하지 못해서 지혜롭지 못해서 나 자신도 피해를 입고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주면서 사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구약의 말씀 특별히 이런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가해자였습니다. 
보상도 해 주지 못한 가해자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뺨을 많이 때린 사람들입니다.
뺨을 때린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 막말을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 가해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은 세계에서 고발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치사하게 남의 속옷 한 벌 빼앗아 입으려고 그 사람을 법에 고발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법에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해도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뭐 좀 같이 하지 같이 놀자 하기 싫은 일을 자꾸만 시킵니다.
권력을 가지고 돈을 가지고 남에게 힘든 일을 시킵니다.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입니다.
뭐 좀 달라고 하고 꿔달라고 하고 그래서 피해를 입힙니다.
가져가면 갚지도 못하면서 평생 남의 것만 달라고 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목사가 되어서 남에게 많은 것을 얻어다가 썼습니다.
복지사까지 되니까 더 많이 얻어 와야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오해하실지 몰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데 오죽하면 목사가 회사를 차리려고 하겠습니까?
누구에게 맡겨둔 것도 아닌데 항상 달라고만 하니까 미안해서 제 노력으로 좀 달라는 말 덜 하고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피해를 입히면 반드시 갚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더 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하고 남에게 도와줄 것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2.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39절 말씀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할 때 여기 악한 자가 누구일까요?
단어의 뜻만을 볼 때 악한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앞뒤 문장을 살펴보면 여기 악한 자는 피해를 입힌 가해자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자를 만일 사탄의 세력이나 그를 따르는 자들을 가리킨다면 우리는 악한 자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사탄의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항을 하고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이 진리의 대열에서 천국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유혹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는 당당히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그들에게 양보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멸시하는 세력들과는 죽을힘을 다하여 대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하나님을 야훼시여 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예수가 라고 호칭을 하고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 자리 비슷한데서 하나님을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자기들은 교수님 목사님 꼬박꼬막 직책에다가 님짜 까지 붙이면서 감히 하나님께는 어법이 어쩠느니 미국식은 어쩠느니 하면서 존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윤리적으로 깨끗해야 한다고 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의인화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당당하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적을 해야 합니다.
이단 사상을 가지고 우리를 이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력들에게도 당당하게 대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악한 자란 그런 영적으로 악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에게 육신적인 피해를 입힌 가해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옥으로 빠지게 하는 세력이 아니라 살다가 보니까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도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착하게 산다고 하지만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기 때문에 사사건건 시비를 하고 고소를 하고 보상을 받으려면 나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역시 가해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끼리는 특별히 복수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참된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적하지 말라는 말은 복수를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전체의 흐름이 복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대적하지 말라는 말을 보복을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복수를 하지 않는 길은 앞서서 보장이 된 피해보상을 받지 않는 것으로도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대 맞으면 나도 한 대를 때리고 그러면 상대방이 또 복수를 하고 그래서 피의 보복이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보상을 받지 않는 것만 해도 복수를 하지 않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정도로 만족을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해자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 때 복수가 끝이 나고 서로 더 사랑하는 참된 형제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또 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 가해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가해자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 39절 하반절 이하에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뺨을 때리기도 하고, 고발을 하기도 하고, 억지로 일을 시키기도 하고, 뭘 달라고 요구를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는 것 즉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뺨을 때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인의 법으로 하면 일곱 대를 때리면 됩니다.
가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법은 그 벌을 일곱 배로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일곱 대를 때리면 됩니다.

동해보복법에 따르면 한 대만 때리면 됩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아까 맞은 강도만큼 잘 맞춰서 때려야 됩니다.
더 세게 때렸다간 더 세게 때린 만큼 다시 맞아야 하니까요

내가 참고말지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는데 재수에 옴 붙었다고 생각하고 참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참으면 될 것입니다.
참고 보복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아주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왼편 뺨까지 돌려대려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용서를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을 배려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야 함부로 뺨을 때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취했던지 아니면 정신이 나간 사람은 몰라도 제 정신으로 남의 뺨을 때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뺨을 맞고 다른 편까지 돌려대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뺨을 때리는 것처럼 우리의 인격을 모독하는 사람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같이 인격을 모독하지 말고 오히려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다른 편 뺨을 돌려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발을 하여서 속옷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치사하게 속옷 그까짓 것 때문에 법에 고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당장 변호사를 사서 작은 것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고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주고 말자고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겉옷가지 벗어서 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그것 빼앗으려고 하겠습니까? 
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줄 때 좋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킬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하기 싫고 힘들지만 그 사람과 함께 배나 더 많은 일들을 해 주면 그 사람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현대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 절대로 안 합니다.
특별히 남이 억지로 시키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도 시키기가 참 힘이 듭니다.
시켜서 안 하면 시킨 사람도 미안하고 안 한 사람도 찝찝하고 그래서 안 시키고 안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시킬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간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신앙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하는 사람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원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렇게 살기가 힘이 들고 또 바로 눈앞에서 손해를 보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 때 참된 행복이 임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얼마나 성질이 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해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참지 못하고 찾아가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서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내가 좋아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나만 더 나쁜 사람이 될 뿐입니다.

나이가 드니까 참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고 보면 대부분 참은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깨닫게 되니까 억울한 ㅇ리을 ㄷ아하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더 잘해주는 것이 정말로 잘 한 일이고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 주님의 성품을 따라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이 구약 율법의 정신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은혜를 베풀 때 서로가 행복해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