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5.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32)

본문 : 마 6:11

제목 :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저는 어려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홀로 서울로 올라와서 청계천 끝자락인 용두동 왕십리 쪽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 동네가 잘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 때는 판자로 지은 집이 많은 판자촌이었고 사는 것도 형편없이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오면서 손에 연탄 한 장과 쌀 한 되를 사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그 날 하루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하루 품을 팔아서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들이었습니다.

연탄을 백장 단위로 사서 재어놓고 쌀을 가마니로 사 먹고 사는 것이 소원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하루하루 일당을 받으면서 살지는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아서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월급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고 요즘처럼 날짜가 되면 꼭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라서 집 옆 가게에 가면 외상장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월급날이 지났는데 아직 월급을 못 받아서 그러는데 외상을 쌀 몇 되만 주시면 월급 나오면 갚아 드리겠습니다. 라고 사정을 하고 금액을 적어놓고 오는 것이 외상장부입니다.

 

 

그래서 옛날엔 월급봉투라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을 하다가 월급날은 남몰래 쓸쓸해진다.

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빈 봉투 한숨으로 봉투 속을 채워나 볼까.”

월급날이 되면 기뻐야 되는데 오히려 쓸쓸해진다는 것입니다.

가불금 제하고 가게에 외상값 주고 남는 것은 빈 봉투더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처자식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릴 수만 있으면 일등 남자였습니다.

선을 볼 때 총각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말이 “저는 처자식 먹여 살릴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하면 신부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그러면 됐네.” 하고 딸을 주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오늘 이 기도가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만 있다면 굶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큰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잘 이해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밥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고 라면 없으면 피자라도 시켜 먹으면 되지 왜 굶어 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요즘은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먹는 문제는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화생활을 더 하지 못하고 과외를 더 시키지 못하고 여행을 다니지 못해서 걱정이지 먹는 문제만 가지고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시대를 만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렇게 일용할 양식 그것도 오늘 하루분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좀 이상한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이미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사는 세상인데 그런 것 가지고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루하루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좋아져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사고 카드라는 것이 있어서 외상으로 마음대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어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외상인생이고 다 빚쟁이 인생입니다.

하루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돈을 벌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비단 육신의 생명을 위한 양식뿐만 아니라 더 깊은 의미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일용할 양식의 의미를 알고 진심으로 이 기도를 하면서 사시는 성도님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일용할 양식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을 앞에서 살펴 본대로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양식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양식으로 해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도 하루하루 먹을 양식 때문에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육신의 생명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기도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매일매일 먹고 살아야 할 육신의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일용할”이라는 말은 '필요한' 또는 '충분한'이라는 의미로 봅니다.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양식”이라는 말은 성찬이나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우리 육신이 생명을 위해서 먹어야 하는 식물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이란 직접적으로 우리 육신이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 먹고 살아야 할 음식을 말합니다.

좀 더 확대를 하면 식료품과 식료품을 조리하기 위한 연료나 더 나아가면 입어야 하는 옷이나 잠을 자야 하는 공간 등에 까지 확대해서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 육신이 이 세상에서 생명을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 의식주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의식주도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 육신의 생명이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흔히 육신은 악한 것이고 영혼은 선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육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영혼을 무시하고 육신의 생명만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무시하고 등한히 여겨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만 살아있으면 되고 이 육신의 생명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생각을 옳지 않습니다.

우리 육신 속에 영혼이 있고 이 세상의 삶은 보이는 육신을 따라 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육신 속에 있는 영혼이 죽어 있느냐 살아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우리 육신이 살아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 속에는 살아 있는 영혼이 있습니다.

비록 이 육신은 죽어가고 있지만 이 육신도 다시 살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육신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육신의 삶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이 너무 가난해지면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서 하나님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싶어도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도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가난해지지 않도록 먹을 것 때문에 입을 것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이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육신이 너무 부자로 잘 살게 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루하루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육신의 생명에 꼭 필요한 것들을 허락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쌀이나 필요한 식료품을 가게에서 사 오지만 이 식료품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농사를 농부가 짓는 것 같지만 농사는 농부가 짓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나 바람이나 비나 이런 자연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농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나 공기나 비나 바람이나 이런 것을 창조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운행해 나가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슈퍼마켓 사장님 덕분도 아니고 농부님 덕분도 아니고 태양덕분도 아니고 우리 하나님 덕분으로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고 있습니다.

 

 

2) 마음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육신의 생명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육신을 움직이는 마음도 참 중요합니다.

육신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마음의 건강도 참 중요합니다.

 

 

육신의 일용할 양식을 말할 때 이 마음의 양식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참 복잡한 세상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참 많이 있음을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육신적인 건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은 멀쩡한데 그 속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다 깨끗하고 착하고 순한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진한 마음속에 악한 생각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할 때 그 마음에 착한 마음이 자리 잡도록 해 주는 것이 부모 된 자의 의무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며 자라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정신세계가 정립이 되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일용할 좋은 양식을 하루하루 공급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죄악 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악한 사람들을 보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유혹을 늘 받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르게 잡고 살지 못하면 우리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착한 마음 바른 마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할 때 마음의 양식을 위한 기도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책을 읽거나 기도나 묵상을 통해서 마음의 양식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마음의 양심이 살아 있고 정직하고 바른 생각을 하면서 살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영혼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육신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따로 떼어내서 분리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고 또 영혼도 우리 몸과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알게 하는 일을 합니다.

 

 

육신도 중요하지만 이 영혼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 영혼의 생명이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우리의 영이 하루하루 살아갈 생명의 약식을 얻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비록 문자적으로는 우리의 육신이 일용할 약식을 구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이 영의 양식까지도 구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육이 함께 강건해야 정말로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육신이 잘 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 진실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 못되어 있는데 육신이 잘 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일이 잘 된다면 그것은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을 더 망치는 일이고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못되면 육신의 일이 망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리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의 일은 사기를 당하더라도 영적인 일에는 사기를 당하면 안 됩니다.

영혼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망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인 일에는 혹시 착각을 하더라도 영적인 일에는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육신적인 일은 잘 못 살면서도 잘 사는 것처럼 착각을 해도 괜찮습니다.

희미한 착각 속에 황홀한 오해를 한다고 해서 별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신앙 좋다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2.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오늘 우리에게”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오늘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6:34)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오늘 기도문을 연결해 보면 내일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거나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는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한 1년쯤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하시든지 이 세상 살 동안 먹고 살 것 걱정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하라고 하시지 않고 겨우 할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돈을 한꺼번에 많이 벌어서 평생 먹고 살 것을 창고에 가들 쌓아놓고 편안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보실 때 그렇게 되면 타락하기 쉽고 욕심이 더 많아질 뿐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평생 먹고 살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이제 만족하시죠? 이제 그만 쌓고 나머지는 나누어 주시지요?

아이고 그런 말 마세요. 이까짓 껌 값 가지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다 먹고 가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내고 죽도록 고생하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 이만하면 됐다 이제부터는 잘 먹고 잘 살 살아보자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불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해지면 거기가 우리의 삶이 끝인 줄 알아야 합니다.

 

 

내일 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일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로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땀 흘려 일해서 오늘 하루 먹고 살고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오늘도 땀 흘려 일하게 해 주시고 그로 인해 먹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이 도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 이전에 우리를 위한 기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도 나에게가 아니고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내 것을 가지고, 내가 노력해서, 나를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것이 없는 사람은 우리라고 하지만 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우리라고 하지 않고 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우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 성도들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밖에 모르고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살아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3. 이 기도를 하는 자의 태도

기도는 이렇게 하면서 삶을 다르게 살면 안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의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육신에 필요한 재물이나 정신세계에 필요한 지혜나 영혼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우리의 기도하는 태도가 바로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자비로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식량을 위해 마귀에게 가느니 굶어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해결을 하려고 하고 때로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차라리 굶어죽는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양식을 얻는 것도 마귀와 타협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라고 부추기고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에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시는 것을 싫증내지 않으시고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참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3)현세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위한 기도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

영적인 것을 위해 기도할 때는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죄의 용서, 하나님의 은총, 구원, 성령의 충만하심 이런 것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땅의 것을 위해 기도할 동안 하늘의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나 자신보다 이웃 사회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현세적인 것을 위해 기도할진대 영적인 것을 위해서는 더욱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일용할 양식 마음의 일용할 양식 그리고 영혼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필요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필요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적인 것을 우해서 기도할진대 영적인 것을 위해서는 더욱 많이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