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5.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5)

본문 : 마 6:24

제목 :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작년부터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도들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산상보훈의 말씀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보여주신 그 삶의 원리들은 너무나 귀하고 좋은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기쁨으로 따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마땅한 삶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는 삶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말은 쉽지만 그렇게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쉽게 따라갈 수 있겠지만 지금 세상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편에서 살고 있고 그 반대편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이 참 어려운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을 것인지 땅에 보물을 쌓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데 아직 오지 않은 세상,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에다가 보물을 쌓으면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오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댄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속옷을 가지고자 송사를 하는 자에게 겉옷도 벗어준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을 하지 말라니요

살림 거덜 날 일이 있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우리가 해야 한다니 이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돈을 사랑하고 탐내고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돈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돈이 많으면 대접을 받고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당장 죽어야 하는 세상인데 어찌 돈을 마다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혹시 돈도 벌고 하나님도 섬기고 하면 괜찮겠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일하라고 한다면 몹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돈을 벌어보려고 물질의 축복을 받아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 안 된다고 하고 오히려 돈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르라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 길을 갈까요?

 

그렇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확실하게 마음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 확정이 없는 한 우리는 아직 신앙에 있어서는 미성숙한 어린아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말씀 앞에서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라는 물음 앞에서 확실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1.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본문 말씀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우리가 부모님이나 가족들을 섬기는 것처럼 단순히 뭘 좀 잘해드리고 좋은 것 드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그 말씀에 순종하고 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순종이란 종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인의 노예가 되어서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인이 둘이라는 말은 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말입니다.

헬라어에서 다른 두 개를 나타낼 때 쓰는 두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똑 같은 것 같은 종류의 것 두 개를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과를 살 때 사과 두 개를 달라고 하면 다른 두 개지만 같은 종류의 두 개를 말합니다.

좀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하나를 산다고 해도 좀 다르긴 해도 종류는 같은 종류라는 것입니다.

 

또 한 경우는 아주 다른 두 개를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과 하나와 사과를 담을 쟁반 한 개를 샀다면 두 개이기는 하지만 아주 다른 종류 두 개인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는 후자에 속합니다.

두 주인이라고 했을 때 비슷한 사람으로 두 주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전적으로 다른 두 주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주인을 구별할 때 이 보다 더 강하게 구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먹을 것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두 개가 다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먹으면 좋은 보약이고 또 하나는 먹으면 죽는 독약입니다.

이 둘을 선택해서 먹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를 먹으면 영생이고 어느 하나를 먹으면 죽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 열매와 죽음의 나무 열매 이 두 종류의 과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먹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보기는 비슷했습니다. 오히려 먹지 말아야 할 과실이 보기에는 더 먹음직스럽고 좋아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만 먹고 살았으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 수 있었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간 그들은 죽음을 향하여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 이런 말입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전적으로 섬겨야 하고 그 결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 두 주인은 하나님과 재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과 재물의 종이 되어서 전적으로 재물을 섬기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둘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아니고 오히려 세상보다 더 악하고 타락한 단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교회가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가르칠 때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재물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오히려 재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재물을 얻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척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재물이 우상이 되어 있고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되어 있습니다.

재물을 모으는 것이 삶의 이유이고, 재물을 모으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고, 재물을 모으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철저한 사상으로 무장이 되어 있고,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맞춰주기 위해서 목사들은 강단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재물의 복을 받고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 즉,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는 생각,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재물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성도들은 타락을 하게 되고 교회도 부패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수련회에 아주 유능한 강사가 와서 전도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중요성을 강조하고 성경말씀에 전도를 하라는 말이 1500여회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면서 성도들은 이 명령을 어명으로 알고 전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명자로 불러 주셨고 전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전도를 하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전도를 해서 상을 받아야 하는데 왜 전도를 안 하느냐는 것입니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매 맞기 전에 전도해라....

 

외국에서 전도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고 또 이런 말씀들이 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인데 당연히 우리가 그 말씀대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것은 그 사람의 예화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교회의 한 성도가 500만원을 헌금했는데 너무 기특해서 기도회 시간에 만 배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라고 특별 기도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남편이 하루 만에 진짜 만 배인 500억을 벌었더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연의 일치겠지, 혹은 목사가 거짓말을 하거나 뻥을 좀 친 것이겠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까 거짓말은 아닌 것 같고 사실인 것 같다 야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도 너무하시지 돈이 필요한 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인데 내가 기도할 때는 들은 척도 하시지 않으시더니 이 목사님이 기도하니까 들어 주시고 또 부자 동네 돈 많은 사람에게 또 그런 복을 주시다니 너무하십니다. 라는 불평이 나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하니까 여기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목사님이 전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실례를 들어서 설명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섬기는 것이 어느새 짬뽕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 재물이라고 하면 이 말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말 자체에도 재물과 반대되는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란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이 세상의 재물을 사랑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아니라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이 주는 잘못된 쾌락에 젖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재물만 따라가다가 이 세상 재물이 불 탈 때 너도 타겠구나. 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는 복이 세상 불탈 때 함께 타 버리고 마는 재물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도 많이 타락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명색이 로마서가 말하는 복음의 전문가라고 하면서 이런 말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혁주의 강해설교의 대가이신 아더 핑크 목사님이 이 본문을 설교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이 세상에서 이방인과 같이 또는 순례자와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옛날에나 있었지 지금은 없어졌고 이것은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우상으로 알고 최상으로 섬기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사치스럽게 꾸며진 집이며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이 그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더 나쁜 것은 화려하게 꾸민 목사관, 값 비싼 좋은 차, 주택을 소유한 목사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인데 그들이 사악한 방종과 재물숭배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를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 두 주인 즉 하나님과 재물은 서로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엄청나게 다른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섬긴다는 것도 대강 적당히 잘해드리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철저하게 복종하면서 섬기는 종과 같이 노예와 같이 전적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재물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도 거기에 맞추다가 보니까 타락을 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2.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앞서서 두 주인이 무엇을 말하는지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면 어떤 사람은 한편은 미워하고 다른 편은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한편은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편은 가볍게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보면 중요하게 여겨야 힐 것이 있고 가볍게 여겨도 될 것이 있습니다.

또 전적으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 있고 미워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할 대상과 미워할 대상이 뚜렷하게 구별이 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한 뚜렷한 구별이 없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즉, 거룩한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구별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별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대상을 거꾸로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착하고 바른 마음보다는 악하고 나쁜 마음이 더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그들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허락하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선택해서 하고 남의 간섭이나 억압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자신 스스로에게 유익한 길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면 나쁜 길로 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라고 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는 돈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 쾌락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유롭게 사는 것을 배 아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그런 잘못된 사상들을 버리고 진리 앞에 바로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가를 제시하시고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해서 살도록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귀중한 것인가 무엇이 무가치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이 거짓된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한 것이고 무엇이 외식하는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종류의 보물 즉 하늘에 쌓아두는 것과 이 세상에 쌓아두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종류의 눈 즉 성한 눈과 나쁜 눈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종류의 주인 즉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과 재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한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의 것들은 무가치하고 중요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쾌락에 취해 있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소중함을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외식적인 행동 보다는 마음의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섬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3.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 섬긴다는 것은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재물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재물을 멀리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없이 재물과 만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재물을 취하면서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일하게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만을 섬깁니다.

재물은 우리가 섬기는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종으로 삼아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재물을 종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하나는 돈을 버는 방법에 있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왜 공부하느냐를 가르치면서 제일 큰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쳤습니다.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려고 하면 돈이 있어야 사는데 공부를 안 하고 아무렇게나 살면 커서 돈을 벌기가 힘이 듭니다.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하고 그러다가 안 되면 다른 사람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하고 거짓말을 하든지 사기를 쳐야만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자격증이 있고 기술이 있고 좋은데 취직을 한 사람은 야 돈아 이리와 하면 비교적 쉽게 돈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리 돈에게 명령을 해도 돈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평생 돈만 따라다니면서 애걸하다가 돈에 노예가 되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힘들게 돈을 벌면 그 돈을 쓰는데 있어서도 마음대로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힘들게 돈을 모았습니다.

노동일을 하면서 힘들게 어렵게 돈을 모았습니다.

그 사람은 도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애착 때문에 그 돈을 쓰지 못합니다.

돈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계십시오. 라고 섬기기만 합니다.

돈이 교회에 좀 간다고 하면 절대 못 가게 막습니다.

돈이 좋은 일 좀 한다고 하면 절대로 못하게 합니다.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데도 보내지 못하고 가지고만 있으려고 합니다.

 

돈을 주인으로 삼지 말고 종처럼 부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돈에게 명령을 해서 많이 모이도록 하고, 명령을 내려서 좋은 일에 많이 쓰십시오.

그것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인이 되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기면서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면서 섬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재물에는 오히려 내가 주인이 되어서 종처럼 부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올바르게 돈을 모이시고 그 돈을 좋은 일에 많이 쓰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