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7.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15)
본문 : 마 5:23-26
제목 :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으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분노하고, 욕을 하고, 무시하는 것도 살인죄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화도 내지 않고 욕도 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도 않고 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억제를 하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욕을 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남을 무시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이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나를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행동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피해를 주고 그래서 그 형제가 나를 원망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예물을 드리다가도 중지하고 먼저 가서 그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예물이란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던 제물을 말합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들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릴 때 그냥 짐승 한 마리 끌어다가 바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을 제물로 드릴 때는 먼저 흠 없고 좋은 짐승을 골라서 제사장에게 가지고 오면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그 짐승을 잡아서 제단에 피를 뿌리는 과정을 거쳐서 드리게 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짐승을 내가 죽임을 당할 대신에 죽임을 당하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을 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의인으로 만나 주시고 나와 원수 관계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로 회복을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다가 보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생각나게 될 것이고 그 삶 속에서 내가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을 한 것들이 생각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놓고 생각을 하니까 아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이 기분이 상했겠구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우리는 깊은 생각 없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상처를 받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생각 없이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때가 더러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다가도 제물을 드릴 때 짐승을 내가 받을 형벌 대신 죽이게 될 때 내가 지은 죄들이 생각이 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내가 죄 값으로 이렇게 제물을 바쳤으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면 그것으로 의무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무섭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게 하려는 것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형제와 먼저 화목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먼저 해야 할 일-형제와 화목
오늘 본문 말씀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했습니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제물을 드리는 일보다는 가서 형제와 화목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가지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이 우주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게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고 어떻게 해야 이 죽음에서 멸망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만 찾아오셨고 그들에게만 이 비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고 그들에게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런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바르게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참 뜻도 알지 못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근본적인 목적은 형제사랑입니다.
형제들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목숨 속에 있는 인격도 서로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라고 하신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런 잘못된 삶을 사는 그들을 위해서 주신 제사제도도 바르게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면서 까지도 제물을 바치면서 까지도 죄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죄를 더 범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실수 때문에 그렇게 좋은 특권들을 놓치고 오히려 하나님께 벌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짐승을 좋아하시고 짐승의 피를 좋아하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짐승만 많이 가지고 오면 칭찬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말라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잘못된 제사를 이렇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1:8)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흠 없는 것 순전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병들어서 죽게 된 것 사람도 잘 안 먹을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 자체보다 그 제물에 담고 있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 제물을 이렇게 형편없는 것을 드린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제물에 대한 잘못을 이렇게 말합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 

그들의 또 하나의 잘못은 화목제물을 드리면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헛된 제물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인데 그 제물을 드리면서 여전히 변함없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은 제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볼 때 제물을 드릴 때 그 제물자체보다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그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형제자매들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생각이 나면 먼저 가서 사과하고 서로 화목한 다음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제사는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형제자매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저들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원망을 들을만한 일을 했을 때는 먼저 가서 그것을 해결하고 와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2.더 중요한 일-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 제사 즉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을 잘 못 이해한 것입니다.
왜 형제와 화해를 해야 하느냐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우리의 마음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가지고 종교행위보다 도덕적인 선행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말씀으로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선행이 예배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게 하신 목적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다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복지선교를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공부한 아이들이 신앙을 가지게 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보너스로 이 복지관에서 일을 하시는 선생님이나 종사자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잘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직장에 가면 여러 가지 유혹들을 많이 받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복지관에서 일을 하면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할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센터에는 오면서 교회는 안 오려고 합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싫어합니다.
국가의 보조를 받으니까 강제로 전도를 할 수 없어서 말은 못하지만 마음은 좀 아픕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형제자매들과 가까운 이웃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가족들 친척들에게도 잘 하고 국법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친척이 주일날 결혼식이나 특별한 행사를 하면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없어야 된다고 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러 가면 예배가 뭐 중요하다고 오늘 하루 빠지면 어디가 덧나느냐고 화를 냅니다.
원망들을 일이 없게 하려고 주일에 세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아이들 성적 오르게 하려고 주일날 예배에 빠지게 하고 학교나 학원에 보냅니다.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아이보다 예배드리지 않고 학교에서 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성적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해 보십시오.
성적 올려서 출세시키겠다는데 목사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학생이 출세해서 교회에 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온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를 가졌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여기 이렇게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여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와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에 오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3.완전한 화목, 완전한 예배-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여러분들이 앞의 두 대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좀 혼란스러우실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형제와 화목 하는 일이라고 해 놓고 더 중요한 일이 예배를 드리는 일이라면 어떤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어야 할지 걱정이 되실 것입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고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예배를 드릴 수 없고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화해를 하다가 보면 예배드릴 시간도 없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조금도 원망들을 일이 없게 한 후에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면 한 번도 예배를 드릴 수가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언제 우리가 다 사과하고 다 화해하고 떳떳하게 부끄럼 없이 여기 앉아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원망을 들을만한 일들이 더 많습니다.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상대방은 오해를 했든지 나와 생각이 다르든지 해서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마음의 상처를 나로 인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는 드려야 되겠는데 형제자매들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많이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귀한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로마서 3:23-25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의로운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사람들처럼 짐승을 가지고 와서 잡아서 피를 흘리며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게 그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제물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완전한 화목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렇게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없도록 가서 다 화목하고 예배를 드리셔도 됩니다.
다만 오해를 하거나 착각을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연 다른 사람들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좋은 사람으로 원망 받을 일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시면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쉬운 길로 오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아무리 남에게 원망을 많이 듣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능히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실 수 있으며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받는 은혜가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완전한 예배를 위해서 완전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인은 큰 죄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나 욕을 하는 자나 무시하는 자는 살인죄를 지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형제자매들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기쁜 소식은
우리에게는 완전한 화목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 영광스런 자리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배려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노력해도 자신이 없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저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그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오니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인생들에게 가장 소중한 이 예배에 담대하게 나오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