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2.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17)
본문 : 마 5:27-32
제목 : 간음하지 말라.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성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심을 읽다가 보면 이중적인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무서운 분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랑이 넘치는 분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정말로 엄격하십니다.
살인을 해야 꼭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미련하다고 멸시하는 것도 지옥 불에 들어가는 큰 죄라고 하셨습니다.

간음을 해야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도 이미 마음에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실행해야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는 타락한 성품 그 자체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죄를 범하면 뽑아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손이 죄를 범하면 찍어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까지 철저하게 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산상보훈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보면 그렇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고 결국 우리는 다 지옥에 가야하는 신세라고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그렇게 하셨음에도 예수님은 너그럽게도 그런 죄를 많이 지은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과 함께 잡수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잡아서 예수님 앞에 끌고 왔습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 죄를 지은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모든 사람이 돌로 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이 상산보훈의 교훈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율법의 원래 정신이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 때 정말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가졌고 세상이 너무나 완악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만 바르게 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죄에 노출된 채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십자가의 복음을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죄 사함을 받는 길을 마련해 주셨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몇몇 가지 선한 일을 하고 그 의를 내세워서 의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에 의지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시고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을 때 부족하고 연약한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1.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지 말라
오늘 본문 27-28절 말씀에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제 칠 계명이 간음하지 말라. 입니다.
여기 간음이란 결혼한 남자나 여자가 다른 남자나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남자들이 권리가 강했기 때문에 간음은 남의 아내를 도적질 하는 차원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임자가 있는 즉 남편이 있는 여자를 훔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아내 남의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이웃 사랑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을 넓은 의미로 확대를 하셨습니다.
결혼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라고 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대를 하셨습니다. 
또 결혼을 한 여자이든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이든지 다 성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성행위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음욕을 품는 것까지도 간음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옛날성경(개정한글)에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예쁜 여자를 보면 이상한 마음이 생길까봐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눈을 가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로 번역된 성경(개역개정)에서는 의도적인지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이상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이상한 마음을 품고 즉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사람을 마음에 이미 간음한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든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든지 어쨌든지 음욕 그 자체가 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적당한 욕심들일 것입니다.
식욕이나 성욕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적당한 것은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식욕이 없다면 밥을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데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지나친 식욕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사람도 있지만 식욕은 좋은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도 조금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돈에 대한 욕심이 없이 놀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문제점이 많이 있지만 적당한 욕심은 좋은 것입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욕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자녀를 낳아서 가정을 이루게 하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그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이 지나친 욕심입니다.
특별히 성적인 욕심이 강한 것은 우리가 바르게 사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모든 것 다 잘하고도 이 이성 관계에 잘못되어서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요즘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성폭행 미수'라는 죄 때문에 국가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고 그의 앞날도 끝이 나 버렸습니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이런 섹스 스캔들 때문에 하루아침에 모든 명예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런 성욕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건전한 스포츠나 오락을 통해서 그런 나쁜 생각에 바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몸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신앙심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통해서 성에 건전한 마음을 가지고 순결을 지키도록 노력을 하고 그런 성적욕망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결혼의 중요성을 알라
본문 31-32절에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자가 원하면 언제나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명기 24: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결혼을 하고서 상대방에 하자가 있으면 이혼을 해도 된다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하자를 어디까지 인정을 하는가가 서로 이견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여 여자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아무렇게나 여자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의 중요성을 알고 한번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자에게 결정적인 하자가 있을 때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보내라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하자 즉 “수치 되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할 때 두 가지의 견해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그룹 가운데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는 오직 이혼 조건이 부정과 율법적인 위반에 국한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법을 어기거나 성적으로 부정한 일을 저질렀을 때 이혼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반해 상당히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힐렐 학파는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어느 한 쪽에서 이혼 의사가 있을 때에는 이혼을 허락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의 주장에 가까운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상대방에게 성적인 부정이 있을 때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혼은 타락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결혼의 중요성을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인륜지대사라고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는 일 중에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겉만 보고 결혼을 해서 한평생을 고생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심중하게 생각하고 기도도 많이 해서 서로 맞는 짝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조심해서 잘 살펴보고 결혼을 했는데 도저히 뜻이 맞지 않아서 못살겠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참고 살아야지요. 참고 사는 것도 어지간해야 참고 살지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 같은 데 남의 이야기니까 참고 살라고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혼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려고 미워하고 욕하는 죄를 날마다 짓는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못된 남편 못된 아내를 보면서 귀신은 뭐하나 저런 것 안 잡아가고 라고 하면서 만날 미워하고 욕하고 흉보고 그렇게 죄를 지으나 차라리 이혼하고 죄를 지으나 그것이 그것입니다.

죽을 때 까지 미워하고 욕하고 그래서 살인죄를 짓는 것 보다는 서로 죄짓지 않도록 갈라서는 것도 오히려 죄를 줄이는 방법도 될 것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냥 조금 참으면 살만한 사람들보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참아도 참아도 노력해도 노력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그로 인해 더 큰 죄를 지어야 할 때 그런 죄 속에 있지 않고 바르게 사는 방법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결혼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부부관계는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너무나 귀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관계입니다.

가정의 자녀들을 보면 가정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이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자녀를 낳은 어머니는 자녀를 떠나면 안 됩니다. 
자녀가 장성할 때까지는 죽어도 안 됩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가정을 자녀를 지키려는 마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마음입니다.

3. 내 육신이 나를 실족하게 내버려 두지 말라.
본문 29-30절 말씀에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오른 눈이 우리를 죄 짓게 만들면 빼어 내버리라고 했습니다.
두 눈 다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 보다 한 눈이 없어도 천국에 가는 것이 유익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 죄를 짓게 만들면 그 오른 손도 찍어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두 손 다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이 없어도 천국에 가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노름꾼이 이 말씀을 들었는가봅니다.
너무 노름에 빠져서 집 팔고 논밭 팔아서 노름으로 다 날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번만 하고 그만해야지 다시는 안 해야지 마음을 먹지만 중독이 되어서 도저히 끊지 못해서 재산을 다 팔아서 노름판에 다 바친 것입니다.

다시는 안 해야지 하고 오늘 말씀대로 오른 손을 찍어버렸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왼손 한 손으로 그 짓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 왼손마저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발에다가 화투를 끼고 그 짓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한번 중독이 되면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중독이 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을 해야 합니다.
술이든지, 담배든지, 노름이든지, 마약이든지, 성적인 중독이든지, 중독만 되면 정말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죄에 물이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 금하고 있는 음행한 일에 중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냥 우리 눈이 가는대로 우리 손발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도 그런 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잘 지켜야 합니다.
무엇을 보면서 사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보는 것에 다라서 행동이 결정이 되고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영화 음란한 서적 음란한 것들은 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싸움이나 하고 나쁜 짓이나 하고 사람의 목숨을 비참하게 죽이는 책이나 영화를 멀리 해야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좋은 것을 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더라도 아름답고 선한 영화를 많이 보고
책을 읽더라도 성경이나 유익한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사람들의 모습 좋은 일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가도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우리의 발로 가는 곳이 어디인지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발이 아무데나 가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합니다.
눈을 뽑아 가면서 손을 잘라 가면서 말씀대로 한번 살아보시겠습니까?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말씀대로 살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시다면 염려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서 실천하지 못하고 사시는 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립니다.
열심힌 노력을 하시고 그래도 잘 안되실 때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실수하고 넘어지고 바르게 살지 못하는 나를 아시고 미리 대신 죄 값을 치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율법을 바르게 해석을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더 철저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바르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율법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으로 형식적으로 지키면서 마치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자신의 죄를 깨달으라고 하신 말씀이 산상보훈의 말씀의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죄를 짓지 않아 나는 바르게 살아 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죄에 대한 의식이 우리에게 더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간음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을 뽑고 손을 자르는 심정으로 철저하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안 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