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종후 1)
본문 : 벧후 1:3-4
제목 :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 속에 있는 진리의 핵심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사람들이 쓸데없는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꼭 필요한 지식은 가지지 못하고 삽니다.
또 많은 것을 알아도 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고 진실성이 불분명한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출처가 분명하고 영원불변하고 확고부동한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복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에 우리가 베드로후서를 공부하면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서 배우게 된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경건에 관한 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생명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하나님 안에만 있는 것을 우리가 받게 되는 영원불멸의 새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난후에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그대로 썩어 없어지지 않고 다시 부활하고 영생하는 그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영원한 생명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을 바르게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경건은 좋은 예배를 드린다는 어원에 따라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며 예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후서의 1장의 핵심어이며 베드로후서 전체의 대전재이며 성경말씀 전체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어떻게 주셨는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는지 그것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심
본문 3절 말씀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주심
여기 “신기한 능력”이란 놀랍고 신기한 능력을 말하기 보다는 “신적인 능력”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 말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때 어떤 때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헌신이나 충성을 요구하셔서 그 대가로 복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선을 행하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고행을 해서 득도를 하거나 그런 것을 요구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주심
우리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신적 능력이라고 할 때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 모든 인간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애를 써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3)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따라 주심
오늘 본문 말씀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과 경건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냥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주신 것이 아닙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따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 언약인 구약과 새 언약인 신약으로 나누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언약들을 통하여 그 많은 언약들 가운데서 가장 보배롭고 가장 큰 약속이 바로 그 약속이 생명과 경건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절에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25절은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보배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롭다"라고 번역된 헬라어(τιμιοs)는 “가치 있는, 귀중한, 진귀한” 등의 말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 대한 이 약속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고 귀중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2.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앎으로 받는 것
역시 3절 말씀에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셨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물건 같으면 우리의 눈에 받은 것이 보일 것인데 영원한 생명이고 경건생활에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받아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것을 받는 방법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앎으로” 받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알아나가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성경공부를 통해서 설교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가 받은 그 영원한 생명과 경건에 대해서 알아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깨달아야 얻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것을 알아 가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보면 내가 이미 받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으로 안다는 말과는 좀 다릅니다.
앞서 2절 말씀에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 안다는 말도 단순히 우리 주 예수님을 지식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그분과 교제하고 주님의 존재하심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일서를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들은 말씀입니다.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면 정말로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고 기쁘고 즐겁게 살게 됩니다.
한평생 그냥 구경꾼으로 교회 밖에서 서성거리면서 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이렇게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풀어보지도 않고 그냥 우울한 삶을 사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얼른 하나님의 선물꾸러미를 풀어헤쳐보세요 그리고 마음껏 사용을 하세요. 그 은혜의 선물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1)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셨음을 알라고 했습니다.
멍청하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나를 거기서 불러내어 주셨습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밝은 빛으로 나를 불러내어 주셨습니다.
더러운 곳 지저분한 곳 죄악이 넘치는 곳에서 이렇게 거룩한 곳으로 우리를 불러내어 주셨습니다.
냉정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이렇게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불러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저주받을 인생에서 축복받는 인생으로, 심판의 대상에서 상을 받을 사람으로, 영원한 멸망에서 영생의 삶으로,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2)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냥 지나가다가 한번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선택받은 사람만 불러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이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영광과 덕이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화려하고 좋은 것 가장 선하고 바른 것 좋은 의견 좋은 견해 미덕 명성 칭찬……. 이런 세상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영광과 선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덕이란 성부하나님의 영광과 덕이라기보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이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덕으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덕으로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 높아지신 신분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때 그 앞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양을 치는 목자들과 동방의 박사들이 부르심을 받고 그 일에 사용되고 그 일을 보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고난을 당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그의 행하심과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장사되실 때 그 현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들은 그런 낮아지신 신분일 때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온 세상의 주인으로 왕으로 다스리심으로 또 세상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시는 그 영광으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도 축하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을 하기도 하고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으로 승천의 영광으로 만왕의 왕이 되신 그 영광으로 만물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그 능력과 영광으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그 능력과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 능력과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천군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면서 화려한 영광으로 재림하시는 그 주님의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덕으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시는 것은 가장 도덕적이고 공정하고 바르게 우리를 선발하여 부르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주 공정하게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불의가 없이 바르게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아이고 하나님도 좀 실수하셨지 어째 저런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으로 불러주셨을까 그래도 나 정도는 돼야지 어째 저런 사람까지 불러주셨을까 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뭘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 보면 뭔가 다른 것이 있어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서 불러주신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좀 더 배워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 능력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3.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
본문 4절 말씀에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1)정욕 때문에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여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사람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지 못한 사람은 즉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욕심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의 삶뿐이라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잘 살아야할 것입니다.
매일 매일 즐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아깝습니까?
매일 매일 술 마시고 취하고 즐기면서 살려는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썩어서 없어지는 줄을 알면서도 그 썩어질 세상을 위하여 사는 것은 그것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라고 술 취하고 노래하고 즐기면서 살고 싶은 욕심이 없겠습니까?
우리라고 이 세상에 흥청망청 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느냐고요
존경도 받고 싶고 칭찬도 듣고 싶고 교만하게 의시대고도 싶습니다.
좋은 차도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화려하게 살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받지 못한 위대한 약속 영원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구름을 타시고 영광중에 다시 오시는 그날이 되면 그 약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존귀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살던 많은 사람들이 슬피 울며 가슴을 칠 때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서 당했던 고난을 꿈에 본 듯 잊게 될 것입니다.

2)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일개 사람이 신의 성품 혹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일부지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성품과 같은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영광일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성품과 같아지는 것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큰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영원한 생명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끝이 없는 다함이 없는 영원한 시간을 살 수 있는 그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지는 성품들도 우리 하나님을 많이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자비하심을 우리도 가지게 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고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어리석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을 보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았습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통해서 이 귀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자랑스럽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멋있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