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06)
본문 : 마 5:8
제목 :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산상보훈의 팔복의 말씀을 배우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사실 예수님의 성품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늘 부자 편에 마음을 두고 살고 교만하고 자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살았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애통하는 일보다는 웃고 즐기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화내고 성질내고 악하게 살았습니다.
정말로 화를 내어야 할 진리에 관한 일에는 침묵하면서 삽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의가 아닌 이 세상의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살았습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가난한 자 불쌍한 자들 편에 서는 것보다는 부한 자 강한 자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기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말씀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복이 있답니다.
마음이 순결하고 깨끗해야 복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지저분하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 가득 자리를 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한 마음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겉모습이야 어떻게 해서 옷이라도 차려입고 화장이라도 해서 가꾸어본다고 하겠지만 속마음까지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교회에 잘 오지 않는 것은 또 교회에 와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까지 보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내어놓기가 부끄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씀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쟁취하고 이루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한 것들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 그들이, 그들만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꼭 가져야 될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1.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우선 마음이 청결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은 헬라어로 카르디아(καρδα)라고 하는데 심장, 마음, 중심, 생각, 등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마음은 인격체의 중심으로 간주되며 정신(Mind)으로도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두뇌로 생각을 하는 일, 선악을 분별하는 힘, 느끼는 기분이 다 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청결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깨끗한 것 순결한 것 정결한 것을 말합니다.
죄로 물들어 더럽고 지저분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청결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미 타락하여 죄로 물들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정도로 좀 깨끗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완전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아시는 주님께서 완전하게 깨끗한 마음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나아가야 할 바를 바르게 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월리엄 제임즈 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 즉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인생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정신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1)겉모습 보다 속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일하게 화를 내시며 욕설을 퍼부으신 일이 있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아주 강하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잘 실행하기 위해서 세밀한 행동규칙을 만들고 하나하나 다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에 가깝도록 잘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잘못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겉으로만 그런 척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외식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아주 강하게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없는 행동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하심만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우리의 중심 우리의 속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는 그 속마음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 마음을 청경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
야고보서 4: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에는 두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그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선한행동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사탄의 음성을 듣고 따름으로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이냐 사탄의 유혹을 따라 살 것이냐, 
죄악 된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 것이냐, 
선을 행하고 살 것이냐 악을 행하고 살 것이냐,
분명하게 양자택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셨고 
그 둘은 언제나 반대편에 있다는 것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께서 용기를 내서 대형교회 목사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한국교회의 설교는 쇼라는 책을 출판했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쇼가 아니라 사기를 치는 내용의 설교들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두 마음을 품고 살고 있고 두 마음을 가지도록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도 누리고 천국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 사는 법을 가르쳐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천국의 소망을 빼앗아 버리는 아주 나쁜 것을 설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사랑하여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천국 복음을 외쳐야 할 목사들이 잿밥에 마음을 두고 부귀와 영화 명예 쾌락에 도취되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을 설교라고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가시면 사탄이 뒤따라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순수한 복음을 심어주시면 사탄의 세력이 뒤따라와서 다른복음을 심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잡동사니 불순물들을 구별해서 없애버리는 것이 청결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직 주님만을 섬기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 한 마음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벗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
사도행전 15:8-9절에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이 모여서 한 문제를 두고 서로 의논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모세의 율법을 따라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문제를 가지고 신중하게 논의를 했습니다.

그 결론이 앞서 인용한 사도행전 15장 9절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않으셨느니라”

우리의 어떤 행동으로 마음이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할례를 받는다고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죄 사함을 받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피에 씻을 때 깨끗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를 잡을 때 우리의 마음이 정결한 마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받는 복은 하나님을 보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 성경에는 복을 받을 대상자들을 그들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헬라어에서는 좀 더 강하게 해석을 해야 하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들이, 그들 만이로 해석을 해야 되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들 만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다는 말의 헬라어 옵타노(οπτανω)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하는 말입니다.
하나는 우리말 번역 그대로 본다는 말과 또 하나는 알아채다 인식하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도 이렇게 두 가지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을 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이 무디어져버리고 더러워져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사람들 마음에는 하나님을 알만 한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고 온갖 불의를 행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진리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타락하고 미련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도 못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진리는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마음 속 보다 외형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두 마음을 품고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고치지 않는 한 그들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혹 진리를 안다고 해도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버리기도 합니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중요시 하고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기를 좋아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은 그 속에 있는 참된 믿음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도 볼 수 없고 회개하는 심령도 가질 수 없습니다.
가난해하지도 않고 애통해 하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타락한 세상과 하나님 나라 이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사는 사람 즉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신칭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행함으로 복을 받는 성구만 자꾸 보이기 때문에 정말로 보아야 하는 십자가의 복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에 세상 쾌락 세상 부귀영화 세상 영광을 향하는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그들의 눈에 십자가의 복음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2)하나님을 만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즉 속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두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하는 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짐으로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한 마음이 된다고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만남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런 만남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하는 그런 만남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시고 살펴보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 우리가 가진 근심걱정 모든 일에 관여하십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시고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삶이 마감이 되고 종말이 오면 정말로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을 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 수 있다는 것은 영원한 멸망을 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깨끗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즉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는 그 순간이 죽음의 순간이요 멸망의 순간이요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외면하실 것이며 그들도 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타락한 죄인의 몸으로 그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님을 뵈옵는 영광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청결한 마음을 갖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외형적인 일 보다는 마음 중심 속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해 주시는 위대한 믿음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나의 마음속에서 강하게 역사하도록 힘쓰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기뻐하며 감격해 하는 그런 행복을 맛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