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06)
본문 : 벧후 1:8-9
제목 : 이런 것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흡족이라는 말은 “아주 넉넉하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라는 말입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풍성하다, 넉넉해지다. 라고 번역을 했고 영어성경에서는 quality로 번역을 하여 그 품질 혹은 품격이 우수해지는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사람은 흡족하게 넉넉하게 그 품격이 아주 우수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타고 다니는 차도 어떤 차는 아주 성능도 좋고 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을 태우는 넉넉함도 있는 반면에 어떤 차는 자주 고장도 나고 가끔은 사람이 밀어야 가는 차도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 신앙도 보기에도 좋고 능력도 있고 남에게 덕을 베풀기도 하는 그런 신앙이 있는가 하면 늘 어렵고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겨우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신앙도 있습니다.

“흡족하다.” 라는 말씀 앞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흡족한 상태가 되는 것은 이런 것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이런 것”이란 앞서서 우리가 배운 믿음에 더해야 할 일곱 가지 덕목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음에 더해야 할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이 일곱 가지가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믿음 즉 1절에 말씀하고 있는 “보배로운 믿음” 그리고 4절에 그 보배로운 믿음으로 받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과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흡족하게 있고 그 품격이 점점 너 좋아지고 넉넉하게 되는 자는 이 땅에 살면서도 열매를 많이 맺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아주 넉넉하게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말로 하면 재수가 좋아서 운수대통해서 복이 터져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택받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믿음이라는 위대한 것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보배로운 믿음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래서 힘들게 살수도 있고 아주 귀하게 여기고 잘 사용하여 능력 있고 보람되고 멋있는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것, 즉 믿음에서 사랑으로 연결되는 신앙생활에 관한 것들이 흡족하게 있는 사람과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을 비교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이런 것이 흡족하게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이런 것이 없는 자
본문 9절 말씀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이런 것이 없는 자란 믿음이 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칭의의 믿음까지 없는 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있으되 5-7절에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을 하셔서 고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는데 그 믿음대로 살지 못해서 점점 자라야 할 성화의 믿음이 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좋은 차를 선물로 받았는데 아까워서 몰고나가지도 못하고 차고에 넣어두고 썩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셨는데 아끼려고 꽁꽁 묻어놓고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는데 그 지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잔꾀만 가지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삽니다.
차나 돈이나 이런 것들은 쓰면 닳고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아끼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이 믿음은 이 믿음과 함께 있는 능력이나 지혜들은 쓰면 쓸수록 더 품격이 높아지고 더 성능이 좋아지는 것들인데 왜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1)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합니다.
육신의 장애를 가진 장애우들 중에 가장 불우한 사람은 맹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듣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걷지 못하는 사람 다 나름대로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이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답답할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로 다 잘하지는 못해서 영적인 불구자들도 있습니다.
그 영적인 불구 중에서 가장 답답한 불구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귀한 진리를 바르게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그 귀한 약속들을 바르게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어영부영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 보배로운 믿음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보배롭다고 하는지,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어떤 약속인지, 그 약속을 받게 되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바르게 알았다면 적어도 그 믿음을 버리고 딴 길로 가려는 마음도 먹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가 모르니까 뚜렷하게 볼 수 없으니까 이렇게 귀한 것을 받고 이렇게 귀한 신분을 가졌음에도 이렇게 한심하게 사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텔레비전 보느라고 컴퓨터에서 오락하느라고 시력들이 다 나빠졌습니다.
안경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안경도 없었더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영안이 흐려진 것도 이 세상에 재미난 것 보느라고 흐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눈에 보이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은 대부분 다 신앙과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그 세상사는 재미에 빠져서 영안이 점점 흐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안경이라도 있는데 영적시력은 안경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일도 바로 눈앞의 일만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보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먼 장래를 본다면 그 장래를 위해서 공부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할 것입니다. 
실력도 없고 학력도 없어서 좋은 회사들 좋은 직장들이 나를 외면하고 힘들게 어렵게 살아보면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후회를 하게 될 텐데 그 미래를 보지 못하니까 아무렇게나 하루하루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음 앞에 서 보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보면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라고 후회를 하게 될 텐데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맹인이라 보지 못하고 근시안이라 멀리보지 못하니까 아무렇게나 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실시해서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서 멀리 보게 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눈앞에 것만 보고 사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좀 더 멀리 보게 하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해서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해주려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 멘토를 시작했는데 아동센터에서도 이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멘토링 라이프 코치” 라는 사업인데 야간보호 아동을 중심으로 16명이 선발이 되어서 한 사람 한 사람 학습이나 인생전반에 걸친 지도를 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인생에 관한 눈을 많이 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눈먼 맹인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진리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엉터리 같은 것을 신앙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눈을 떠서 진리를 보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복음 믿음의 능력을 보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옵소서.
우리교회 성도들의 기도 제목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대로 여러분의 영안이 열리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이런 것이 없는 자는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조상이 그랬고 나 자신도 그렇습니다.
그런 흉악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흉악한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고 내가 지금 깨끗하게 씻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된 후에 다시 그 죄에 얽매이고 거룩한 명령을 어기는 자들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2)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다시 그 죄를 짓는 것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고 돼지에게 목욕을 시켜줬더니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함을 입은 사람은 과거의 우리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 죄임을 늘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요 다시는 그런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사는 것입니다.

2.이런 것이 있어 흡족한 자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있을 뿐만 아니라 흡족하게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더 많이 더 크게 날마다 더 성화되는 믿음이 있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끝이 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와 같은 분도 자신을 늘 괴수 중에 죄인이라고 생각했고 날마다 죽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더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죽도록 충성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이런 것이 흡족하게 있는 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있는 자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내게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에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주님을 아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해서 열심을 내게 됩니다.

우리는 자연계시인 이 우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우주 만물의 기묘함을 통해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만물을 통하여 완전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특별계시인 성경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지 말고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그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단들은 성경의 한 부분을 가지고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이탈하게 만듭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합니다.
목적지를 항상 바르게 알고 그 목적지로 향해서 갈 때 우리가 이단에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 때 우리가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말합니다.
그 십자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일이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일입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 것인가를 바르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 때나 신앙생활을 할 때 게으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해 보면 게으른 사람은 잘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신앙생활도 잘 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부지런해야 된다는 말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언 12:24)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언 21:5)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언 10: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언 13:4)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부지런히 하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로마서 12:11)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일도 부지런히 하라고 했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7)

영육 간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사는 일도 부지런하면 잘 삽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부지런하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2)이런 것이 흡족하게 있는 자는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열매는 신앙생활의 결과를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뭔가 남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해 놓은 일이 없이 이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이 떠나게 된다면 참으로 부끄러울 것입니다.

열매란 어느 날 아침에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잎이 나고, 꽃이 핀 후에야 그 나무에 따라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열매만을 기다립니다.
열매 없는 것은 비웃으면서 열매를 맺는 과정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지 않습니다.
왜 세상을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느냐고 비웃기는 하지만 왜 잘 살지 못하게 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잘 못 하느냐고 비웃기는 하면서 왜 잘 못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열매를 맺게 해 주기 위해서 열매 맺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 육적인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교육하는 곳입니다. 

열매를 맺는 비결 두 가지만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의 삶에 열매를 맺는 비결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시편 1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사는 것이 열매를 맺는 비결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도덕성이 결여되면 나타나기 쉬운 현상이 꾀를 써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잔꾀를 써서 이익을 챙기면 잘 살 것 같지만 그 잔꾀가 자신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꾀를 써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 빨리 갈 것 같지만 그 잔꾀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험한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은 이런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 열매를 맺는 비결입니다.
죄를 짓는 일이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해도 거기 동조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교통신호나 가벼운 법규라고 해도 반드시 지킬 줄 아는 습관을 가져야 하고 작은 죄가 큰 죄가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이 열매를 맺는 비결입니다.
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겸손하면 다른 사람의 충고도 받아들이게 되고 겸손하면 섣불리 남에게 충고도 하지 않게 됩니다.
교만하면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받고 하나님께도 미움을 받습니다.
겸손하면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피로세운 새 언약에 참여한 성도들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의 삶의 원리는 성경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이고 삶의 열매를 많이 맺는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5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 성도들이 열매를 맺는 비결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약속 안에 거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살 때 신앙의 많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진 자들이 그 믿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 믿음에 더해야 할 덕목들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을 때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것이 있을 때 영육 간에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왕 신앙생활 하시면서 더 적극적으로 더 멋있게 보람 있게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