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07)
본문 : 벧후 1:10-11
제목 :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베드로후서를 통해서 교회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약속을 통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 보배로운 믿음만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 믿음의 위력이 너무나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고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도 넉넉하게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믿음이 없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이렇게 교회에 나올 수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믿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행동하는 것을 봐서 살아가는 모습을 봐서 도무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입으로만 믿는다고 고백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 따라 사는 삶이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력이 있어서 하루하루 성장하게 되어 있는데 도무지 그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손쉬운 믿음’(easy believism)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신자의 삶은 편안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라고 하셨는데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쉬운 길로 넓은 길로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힘들고 어렵고 좁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참된 신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믿음의 소중함을 먼저 말하고 믿는 자는 그 믿음을 따라 힘써 행하여야 된다고 했습니다.

5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여러 가지 덕목들을 더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믿음이라는 이 고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소중한 것으로 알고 그냥 보관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굳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 믿음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감도 얻는다는 것입니다.

1.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칭의의 믿음과 또 하나는 성화의 믿음 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해를 하면 쉽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은 칭의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의롭다 칭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고 천국백성이 되는 믿음입니다.
이 칭의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입니다.
칭의의 믿음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우리가 그 믿음을 우리의 삶에 실천하고 더 점점 변화된 모습으로 살게 하는 믿음을 성화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성화의 믿음도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고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칭의의 믿음과 대조해서 설명을 할 때 이 성화의 믿음은 칭의의 믿음과 달리 우리 편에서 우리가 힘써 행하여야 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믿음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두 믿음이 하나로 존재합니다.
칭의의 믿음은 없고 성화의 믿음만 있다고 하든지 반대로 성화의 믿음만 있고 칭의의 믿음만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칭의의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성화의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성화의 믿음은 칭의의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성화의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가졌다고 하는 믿음은 사실 상 죽은 믿음이고 없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칭의의 믿음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굳게 하라는 말씀은 그 믿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라는 것이고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께 선택하심을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 선택을 받은 사람인지 알 수가 없고 그 증거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재수가 좋아서 좋은 가족 좋은 친구 만나서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셔서 우리가 성도라는 이 거룩한 무리 가운데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면서 창세전에 선택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창세전이라는 말씀 속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사탄이 우리를 불러가기 전에 너는 내 것이라고 선택을 해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님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가족을 통하여 친구를 통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을 통하여 부름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을 통하여 또는 기쁜 일을 통하여 부름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불려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어렵게 어렵게 불려오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 택한 백성을 교회로 그리스도의 품으로 부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선택을 하시고 때가 되어서 성령님을 통한 부르심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부름도 받지 못한 사람이 그냥 와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거나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사실은 믿지 못하고 아무런 삶의 변화도 없다면 그냥 구경꾼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인지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불평이나 하면서 원망이나 하면서 억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즉, 확실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의 믿음에 반드시 있어야 할 덕목들이 행동에 옮겨져야 합니다.

믿음에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좋은 사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늘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남에게 덕을 베풀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거나 가짜 믿음입니다.

덕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늘 자신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그 덕이 올바른 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식에는 절제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아는 알량한 지식가지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다가 가다가 얻어들은 알량한 성경지식가지고 날마다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교만한 사람이요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절제에는 인내가 있어야 되고
인내에는 경건이 있어야 됩니다.
경건에는 형제우애가 있어야 되고
형제우애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적인 사랑 자기희생과 헌신이 있는 사랑이 믿음 속에 나타날 때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가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냥 교회에 다니면 좋다고 하니까 심심풀이삼아서 교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합니다.
교회가 체육고한 만들어서 공짜로 제공하니까 운동하는 재미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 
목사가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 주니까 그 연설 듣는 재미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
사람 많은데 가서 장사나 해 보려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취미생활이나 해보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그렇게 교회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그런 모습으로 교회에 다닌다면 취미생활 장사에 도움이 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에 와서 이렇게 엄청난 신분을 받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원한 나라의 소유권을 받는데 그 옆에서 부스러기나 얻어먹는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 따라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는 참된 행복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행함으로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역시 오늘 본문 10절 말씀 하반 절에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실족이라는 말은 원래 말이 디딤돌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적용을 할 때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고 주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해서 작은 죄도 짓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 실족이란 그런 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아주 흉악한 죄는 짓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죄를 자꾸 반복해서 짓는다든지 성령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극단적인 죄는 짓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넘어집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만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넘어지지 않습니다다.
어떠한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잠시 죄를 짓고 낙망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금방 일어서서 주님의 품으로 오게 됩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로 진리의 길이고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든지 이 길에서 낙오가 되거나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할지라도 이 좋은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무리 부럽다고 해도 이 영원한 생명의 길을 버리고 그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실족해서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 천국 길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만약에 세상에 눈에 보이는 일이 좋아보여서 이 길을 떠나게 된다면 차라리 그 눈을 뽑아버리고라도 이 길에서 실족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 때문에 이 길에서 실족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손을 잘라 버리고서라도 이 길을 계속해서 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라도 방해를 받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친구이건 그것이 가족이건 그것이 부부라고 해도 심지어 내 몸의 일부라고 해도 방해가 되면 잘라내서라도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족하지 않는 방법은 구경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더 한층 우리의 믿음을 향상시키고 성화시키는 것입니다.

3.이같이 하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자에게 주시는 그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그 믿음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라고 한다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든지 결국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영광스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겨우 부끄럽게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확실하게 들어가야지 이왕이면 넉넉하게 들어가야지 그렇게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서야 되겠습니까?

넉넉하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고 있는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가도 그만이고 안 가도 그만인 나라라고 하면 아슬아슬하게 가든지 그러다가 못가면 그만이겠지만 
그 나라가 너무나 좋은 나라라고 한다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갈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한다면 
그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반드시 꼭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고 뭘 하든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몇 년 살고 마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세월이 계속되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가서 살게 하려고 만드신 나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나라와 차원이 다른 완전한 나라가 그 나라입니다.

“우리 주”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나라 
영광과 권세가 가득 찬 나라 완전한 나라가 우리가 가서 살게 될 나라입니다.

이렇게 좋은 나라라고 한다면 넉넉하게 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슬아슬하게 말고 확실하게 들어가고도 주리가 남게 들어가도록 해야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넉넉하게 들어간다고 했습니까?
행하면 더욱 힘써 믿음에다가 덕목들을 더하여 행하면 넉넉하게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흡족하게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면 그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소중한 믿음 보배로운 믿음을 보관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대로 힘써 행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도 넉넉히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이 택하심과 부르심이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 것임을 알고 확실한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더해야 할 덕목들을 열심히 실천하심으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실족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