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09)
본문 : 벧후 1:16-18
제목 :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요즘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참 편리한 것이 하나 있는데 네비게이션(navigation)이라고 하는 차량자동항법장치(車輛自動航法裝置)입니다.
저같이 길눈이 어두워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좋은 기계입니다.
어디를 갈 때 목적지를 지정해 주면 거기까지 잘 가도록 안내를 해 줍니다.
혹시 길을 잃어버리고 딴 길로 가도 다시 탐색을 해서 목적지로 가도록 유도를 해 줍니다.

우리 인생길에도 이런 네비게이션과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를 입력하고 살아가다가 잘못된 길로 가면 얼른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장치가 있으면 정말로 편리할 것 같습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남을 속여서 이익을 좀 챙기려고 하면 주인님 악인의 꾀를 따르시면 안 됩니다.
어쩌다가 회식자리가 있어서 함께 한잔 하려고 하면 네비가 옆에 있다가 주인님 이 길은 죄인의 길입니다.
좀 교만하게 뭘 자랑하려고 하면 주인님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시면 안 됩니다. 라고 안내를 해 주면 정신을 차리고 바른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런 장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자동이 아니라서 좀 사용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인생수동항법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주 성경책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를 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 이렇게 교회에 와서 설교말씀을 듣는 것도 인생네비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지금 목적지를 향하여 잘 가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잘 가고 있는 것이 확인이 되면 기쁨으로 그 길을 가면 되고 잘 못 가고 있으면 얼른 수정을 해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정을 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비에 목적지를 분명히 입력을 해야 합니다.
가끔 목적지를 잘 확인하지 않고 그냥 비슷하게 입력을 했다가 아주 엉뚱한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 우리 노회 목사님들이 수련회를 다녀왔는데 분명히 숙소인 무슨 호텔 이름을 잘 입력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이름을 가진 호텔이 여러 개가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기도 어딘데 저 강원도까지 아주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도 목적지를 분명하게 입력을 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적지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니까 비슷하게 입력은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입력을 한 사람도 있고 아예 엉뚱한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적지는 어디로 설정이 되어 있습니까?
학생들은 신앙생활 잘 하고 기도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지로 정해놓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처녀총각들은 좋은 배우자 만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좀 부자가 되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혹 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면서 경유해야 하는 작은 목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가야하는 최후의 목적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최후의 목적지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시점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이 우리가 기다리는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순교를 앞두고 교회 안에 성도들이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것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진리에 대해서 구체적인 것 하나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 성도들에게 알게 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난 소리를 직접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의 가장 큰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재림은 분명히 일어나 확실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우리 인생의 목적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
본문 16절 말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능력들을 말씀하기 보다는 강림하심과 연결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나타날 특별한 능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 “강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언젠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최고의 목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치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죽음을 통해서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참 좋은 일인데 죽음을 통해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천국 가는 길이 슬픔의 길이고 고통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죽기 전에 다시 오시면 우리가 죽음의 고통을 죽음의 이별을 맞보기 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되기 때문에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시시한 이 세상의 일 가지고 금식하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 예수님의 강림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고 기다려야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실 때 그 때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까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앞서 인용한 데살로니가전서 4장 말씀에 의하면 호령소리가 나고 천사장의 소리가 나고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께서 강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잘 모르기는 해도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지 못했던 정말로 장엄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 호령소리 그 나팔소리 앞에 감히 누가 고개를 들고 대항을 할 엄두도 못내는 엄청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 능력 앞에 그 위력 앞에 사람들은 초죽음이 되어서 사시나무 떨듯이 떨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 14:62).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다시 오십니다(마 24: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오셔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 신랑이 더디 온다고 졸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오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오실 것입니다.
이미 많은 징조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방심하지 말고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16절 말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교묘히 만든 이야기”라는 말은 '지어낸 말', '허구', '우화', '신화', '거짓말'을 뜻하는 고대 용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사도들이 전하여준 종말론적 교훈들이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강력하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사도들의 이런 주장이 성도들을 협박하여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강림은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도 어느 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어야 될지 혼동이 되실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야 이 세상이 살만하다 열심히 기도해서 부자도 되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있을지도 모르는 천국이야기는 그만하고 지금 우리와 함께 여기서 사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서로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반대로 어떤 목사들은 이 세상은 허무한 것이고 헛되고 헛된 곳이니 하룻밤 꿈과 같은 이 세상에 잘 살아보려고 버둥대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사람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면 그 사람의 말이 성경전체가 뜻하는 바대로 하는 말인지 성경 한 구절 인용해서 자기 자신의 뜻을 피력하는 것인지를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이 만든 이야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실제로 경험한 사실일지 몰라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니 교회 안에까지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묘히 속이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말들 가운데는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깜박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와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날 맨송맨송 이야기만 하는 저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기적을 일으키는 그 사람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기적을 일으키는 그 사람의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멋진 작품인 우리들에게는 노력에 따라서 기적 같은 일들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서 일류 마술사들의 기적 같은 마술들을 봅니다.
여기에 있던 사람이 감쪽같이 없어지기도 하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그들이 행하는 마술은 우리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그들의 마술을 보면서 이미 생각합니다.
야 참 잘 속인다. 재주가 참 좋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지선생들이 사기꾼들이 우리의 눈을 속일 때는 그것이 속임수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교묘히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앞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아무리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으로 향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교묘히 속이려고 하는 것임을 바르게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아무리 엄청난 기적을 행하였다고 해도 그들이 성경말씀의 핵심인 진리를 바르게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하늘에서 온 천사라고 해도 천사와 같은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해도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이 아니면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다시 강림하신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으로 교묘히 속여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는 신약 성경에만도 318회나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고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성경 구절로는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는 예수님의 말씀과,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계 1:7)라고 하신 사도요한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무한정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는 반드시 종말이 있고, 그리고 그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종말과 함께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소망스럽고 대망이 되는 날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교묘히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본문 17-18절 말씀에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의 공생애 3년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들었고 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다 직접 목격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들 중에서 잊지 못할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변화 산에 있었던 그 일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처음 인간 예수님이 아닌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이 변화산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 이 세 사람만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산에 올라가자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이 되었습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때 거기에 어느새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이정도만 기록이 되었지만 그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장엄한 아주 멋있는 아주 엄청나게 다른 그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보게 될 그런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인 모세가 엘리야 선지자가 예수님께 와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까 그동안 긴가민가했던 것들에 확신이 오기 시작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목격한 베드로가 너무 좋아서 내려가지 말고 여기에 집을 짓고 영원히 살자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 산에서 목격한 일이 베드로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관한 것은 다른 종교들처럼 단순히 사람들의 경험이나 철학이나 연구나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늘에서 책을 한권 던져주셔서 이렇게 믿고 살아라. 하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진행시키시고 그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나 엘리야나 예수님이나 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살았던 분들이고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끔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환상 가운데서 어떤 느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도 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체험들은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체험한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성경에 기록하기 위해서 있었던 사건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개인이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들은 확실성이 없고 공식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적인 느낌이나 개인적인 체험일 뿐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체험은 너무나 위험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것도 많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비슷한 일을 내가 체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 하늘로부터란 하나님으로부터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산한 현상을 체험했거나 그런 간증을 들었을 때 그것이 하늘로부터인지 땅에서 사람들이 한 이야기인지를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나온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교묘하게 만들어낸 그런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해주신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악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속이려는 악한 사람들은 사탄의 세력들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고 이 세상에 만족하면서 이 세상의 죄악가운데서 살라고 유혹을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유혹하는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유혹에 속아서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천국을 건설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면서 준비하면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오늘이라도 다시 오시면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정말로 기다렸습니다. 라고 반갑게 맞이하는 성도님들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