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37)
본문 : 벧전 3:17-19
제목 :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가 다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어떤 사람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도 고난이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도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래도 고난을 당하고 저래도 고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고난이 같은 고난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쉽겠습니까?
선을 행하는 것보다 악을 행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법을 지키고 옳은 일을 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아무렇게나 불법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보다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과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그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은 그 고난 자체가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이 우리에게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주고 그 고난이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이 세상에서 화려한 삶을 삽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 앞에는 고난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하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잠시 고난을 당하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잠시 기쁨 때문에 영원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선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 “더 낫다“라는 말은 잘 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입니다.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선을 행하는 것이 좀 더 낫다. 라는 말로 이해를 하면 악을 행해도 되지만 선을 행하는 것이 더 좋다. 라는 말로 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에서 “더 낫다“라는 말은 아주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그 믿음에서 떨어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손이나 발이나 눈이 우리를 죄에 빠뜨리게 한다면 찍어 내 버리고 뽑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사지가 멀쩡한 채로 지옥에 가는 것 보다는 불구자가 되면서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선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살든지 악을 행하면서 살든지 마음대로 하되 될 수 있으면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된다. 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비록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나에게 있는 많은 것들을 빼앗긴다고 해도 설령 그것이 육신의 목숨이라고 해도 꼭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
오늘 본문 17절 말씀에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악을 행하는 것보다 필수적으로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먼저 알 것은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선을 행하면서 삽시다, 의롭게 삽시다, 복을 받읍시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막상 그 선이, 그 의가, 그 복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입니까?
기도를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기도가 무엇인지 기도를 통해서 받는 복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잘 말해주지 않습니다. 

전도를 해야 된다 복음을 전해야 된다. 라는 말도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해야 하는 도가 무엇인지 그 복음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잘 말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핵심을 살짝 바꾸어서 엉뚱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고 엉뚱한 것을 복이라고 따라가게 만들고 엉뚱한 것을 복음이라고 전하게 만드는 일이 허다합니다.

마치 장사꾼들이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상품을 허위로 선전을 하거나 과대선전을 하거나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 하는 쪽으로 설명을 하는 것처럼 교회도 복음을 교회의 이익을 위해서 욕심이 많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설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 선한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하심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 선하심으로 창조된 이 세상과 우리 인간들이 죄를 범함으로 변질이 되었고 악하게 되었습니다.

창조 이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선하신 일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18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일이란 의롭고 바른 일, 옳은 일, 좋은 일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옳고 바르고 좋은 일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칙을 정하시기를 죄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원칙에 의하면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고 의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다 죽임을 당하고 영원한 멸망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 일을 합법적으로 면하게 해 주신 이 대속의 죽음이야말로 우리들에게 너무나 바르고 의롭고 좋은 일일 것입니다.
원칙대로 하셨으니까 바르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좋은 이 일이 선한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남을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고 다른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이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을 가장 소중하게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고 믿고 따르고 전파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일보다 더 선한 일은 없고 더 우선적인 일은 없습니다.

교회가 선한 교회가 되려면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교회가 선한교회입니다.
교회가 구제 사업을 하고 복지선교를 하고 또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많이 하지만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선한 교회는 더욱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선한 일들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거나 따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성도가 아닙니다. 선한 성도는 더욱 아닙니다.

이런 선을 행함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게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복을 받게 되는데 그 복이 고난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는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이 선은 행하면 행할수록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복을 받고 싶으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런 선한 일들을 행하시면 됩니다.
남을 도와주고 질서를 지키고 바르게 살고 좋은 일 많이 하면 이 세상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에서의 복을 받고 싶으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대속의 십자가 그 복음을 사랑하고 믿고 따르며 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할 때 특별히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할 때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는 고난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
앞서 인용한 17절 말씀에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도 받지만 또 악을 행하는 자도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과는 다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유익한 고난이지만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무익할 뿐 아니라 엄청난 고통 영원한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듯이 악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한 일이 무엇인지는 대강 다 아실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의 예수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그 뻔한 교훈을 하시고자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선이 특별한 선 최고의 선을 말씀했듯이 오늘 본문의 악도 특별한 악 최고의 악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한일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일이라면 최고의 악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것이 최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셨는데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신다고 하셨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 연약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문제는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알량한 선행으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가장 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최고로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 최악으로 인해 그들은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최악만 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크고 작은 많은 악들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 남을 해치는 것 법을 지키지 않는 것 이런 저런 악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악한 일들은 그 악대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늘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완전범죄는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죄의 값을 이 세상에서도 받습니다.

하나님관계에 있어서의 죄는 이 세상에서 그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대까지 기다리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형벌은 엄청난 형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오늘 선과 악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최고의 선이 무엇인지 최고의 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최고의 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이고 최고의 악은 그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짐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 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을 감수하고 선을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선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는 그 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선도 행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들은 좋은 것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행하여야 할 선은 오늘 우리가 배운 이 최선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의미를 알고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욕망, 자신감, 자존심, 교만 이런 자기중심의 생각들을 다 십자가 앞에 내어놓는 삶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 선한 삶을 사는 사람은 지나친 육신의 욕심들을 버려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고 세상을 좀 더 편하고 화려하게 살려고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나의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중심으로 그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입니다.

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없다면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한다면 교회의 일을 그렇게 등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려면 시간도 물질도 희생을 해야 합니다.
물질을 희생하는 일 시간을 빼앗기는 일 그 자체가 고난을 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제가 한 번도 강조한 일이 없는데도 꼬박꼬박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가지 헌금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감격할 때가 많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우리의 생명이요 삶입니다.
그 생명의 일부인 헌금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선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가끔은 헌금을 하시면서 아깝다 이 돈으로 다른 일을 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을 행함으로, 최고의 선한 일을 함으로 받는 고난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서 더 큰 상급으로 보답하실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알량한 지식으로 그 알량한 경험으로 하나님을 재어보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이 십자가의 복음을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진 이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와 지식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고 해도 십자가의 사랑을 영원한 천국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경험 우리의 생각들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무식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 같다고 해도 수 천 수만의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우리를 비웃는다고 해도 우리가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데 그런 평가에 흔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우리가 감히 따를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자기의 자존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 자신을 바라보면 나는 너무나 흉측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흉악한 죄인에게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큰 죄인이요 죄수 중에 괴수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질 때 비로소 십자가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존심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아직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나쁜 말을 할 때 그 가슴의 상처는 치유가 되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억울한 말을 할 때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내 자존심에 치유받기 힘든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것조차도 십자가의 복음 앞에 서면 내려놓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억울할 게 없습니다.
사실은 그 보다 더 흉악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 고난을 당하는 일입니다.
그것마저 내려놓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 사는 일이며 최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 선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께로 가는 최고의 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욕심 나의 지식 나의 자존심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최선의 삶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