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세례1)
본문 : 골 2:12
제목 :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가 부활승천하심으로 하나님나라로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행하여야 할 예식 두 가지를 말씀하시고 가셨습니다.
이 두 가지의 예식을 우리는 성례식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는 세례식입니다.
마태복음 28:19-20절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성찬예식입니다.
고전 11장 23-26절에 성찬예식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우리 예수님께 받은 성찬예식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예식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행하여야 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오늘 우리는 이렇게 세례식과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 예식을 행하면서 우리는 이 예식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 우리 고신대의 유명하신 교수님이 쓴 글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려면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글 중에 하나가 세례를 바르게 주는 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했습니다.

참된 교회의 지표 중에 하나가 바른 성례를 베푸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아니면 가짜교회인가를 가리는 요소 중에 하나가 세례식을 바르게 행하는가, 성찬식을 바르게 행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세례를 베풀면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자세하게 교육하고 설명하지 못하고 대강 교육시킨 후에 예수님 믿습니까? 라고 질문하고 예라고 대답하면 세례를 베푼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 다 세례를 베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의 진위를 잘 가려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은 구태여 진실여부를 가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고백 하나가 자신의 지위 재산 목숨까지도 빼앗길 각오를 하고 하는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별 생각 없이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고백을 했을 때나 하자 않았을 때나 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 것인지 그냥 대답만 예라고 하는 것인지 가릴 길이 없습니다.

세례란 진심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것이 진심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죄책감이 드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것도 그 의미를 바르게 안다면 우리는 이 예식을 행하면서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찬예식에 그저 의미 없이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부터라고 세례를 바르게 베풀고 성찬예식을 바르게 베풀고 싶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분들도 세례의 참된 의미를 늘 되새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시면서도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이 예식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은 물론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도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라고 했습니다.

세례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장사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죽음의 더 완벽한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죽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무덤에 묻어서 장사까지 다 치러버린 상태 즉 완전하게 죽은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죄에 대한 죽음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은 먼저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그 자리에 바로 내가 있었다는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그렇게 비참하게 사형을 당해야 할 죄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나의 죄가 깨끗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인간인지라 가끔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아 나는 죽일 놈이야 죽어야 마땅해 라는 생각이 드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아 내가 이미 죽었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때 나도 이미 사형을 당했지 라고 생각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이미 다 계산이 끝나고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지을 죄에 관한 것도 이미 다 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고 다 그 형이 만료된 상태입니다.

죽은 정도가 아니라 장사까지 지내버린 아주 완전하게 용서를 받아버린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미 죄 문제에 대해서 완전하게 해결을 받아 버리고 다시는 죄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2)죄를 지을 생각의 죽음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은 먼저 죄에 대한 형벌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죄를 지을 생각에 대한 것도 죽은 자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죄 지을 일이 앞에 나타날 때 마치 죽은 사람처럼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도 우리 앞에는 죄를 지을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 자신의 마음에도 욕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들이 우리 앞에 많이 다가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으로 죄를 멀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만한 일이 있는 곳은 피해서 다니고 미리 미리 죄를 짓지 않도록 예방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죄의 유혹을 받을 만한 곳으로 다녀서는 안 됩니다.

3)내 뜻과 자존심의 죽음
세례를 받기 전에 우리는 내 뜻과 내 생각대로만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이후에는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내 뜻과 내 생각 내 자존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삽니다.
성경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에 맞추어서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되 바르게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바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또 우리도 이제는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처럼 죄질 생각도 하지 말고 살아야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자존심도 다 버리고 살아야 됩니다.

2.부활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산다고 했습니다.
세례 자체가 그런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례에 포함된 믿음이 그렇게 해 주십니다.

세례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적으로 선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예식입니다.
세례 의식 속에 포함된 그 믿음의 고백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되살림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약속을 합니다.
앞으로 주일성수를 잘 하겠습니까?
앞으로 십일조를 바치겠습니까?
앞으로 교회의 치리에 복종하겠습니까?
이런 약속들을 합니다.

이런 약속들을 하는 것은 믿음을 가졌는가를 점검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문답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정말로 그렇게 고백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고백이 진실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삶 속에 이런 정도의 모습은 보여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생활 이런 기본마저 하지 않는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희생도 헌신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 백성이 되는 이런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게 하심과 그 죽음에서 다시 부활시키신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져야 세례를 받고 세례를 통한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주일마다 손을 들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도들이 고백했던 신앙의 고백을 정리해서 우리가 믿어야 할 기본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고백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가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이런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중에서 특별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그저 죽었던 한 사람이 어쩌다가 깨어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정말로 소중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세상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사심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 성공을 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또 우리도 그와 같이 죽음에서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특별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 그 계획하신대로 순종을 하셔서 우리로 믿고 영생을 얻게 하신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믿음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세상의 일들도 믿음을 가지고 하는 일과 믿음을 갖지 못하고 하는 일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를 믿을 수 있는가 믿지 못하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말씀대로 살면 성공한다는 믿음 하나님께 충성하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이런 믿음도 때로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중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 믿음만큼은 꼭 간직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성경은 기록이 되었고
이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부스러기 복들도 주시는 것이고
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적의 역사들도 때로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스러기만 주어먹고 진짜를 놓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참된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 즉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면 우리의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우리가 다시 예수님처럼 살리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으키신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예수님처럼 우리의 몸도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이런 몸이 아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서 새롭게 가지셨던 그 몸과 같은 몸으로 다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과학으로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는 아주 신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다시 아픔이나 죽음이 없는 영원한 몸으로 신비하게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일으킴을 받은 것을 과거적인 의미로 씀으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이미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부활할 것이지만 이미 특별한 몸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신앙을 고백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부활할 수 있는 신비한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적인 의미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새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미래에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역사하심을 말해줍니다.

본문에서 일으키심을 받는다는 단어를 영어에서는 raise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단어의 뜻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리다. 라는 뜻도 있지만 끌어 올리다 일으켜 세우다 이런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You raise me up,” 이라는 노래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주님께서 나을 일으켜 세워주시면 나는 높은 산에도 올라갈 수 있고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주님께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면 험한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주님께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면 나는 더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마태복음 28:19-20절에 세례를 베풀고 받는 자들에 대한 약속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끝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이미 새 생명으로 거듭났고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끝까지 변함없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