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45)
본문 : 벧전 4:17-19
제목 :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든 것이 시험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 들어갈 때도 시험 회사에 취직을 할 때도 시험 진급을 할 때나 어떤 자격증을 딸 때도 시험을 보아야 합니다.
꼭 시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직접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라는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의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시험도 안 보고 평가도 안 받고 하면 참 좋을 것 같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할수록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려고 할수록 시험이나 평가는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시험이나 평가를 받기 싫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그때는 편할지 모르지만 내 삶은 그만큼 뒤쳐지는 삶을 사는 것이고 스스로 잘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시험도 보고 평가도 받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교회도 그런 시험이나 평가와 같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니까 이런저런 시험도 없이 평가도 없이 심판도 받지 않고 무조건 잘 살게 해 주고 무조건 천국에 가게 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런 심판이 있다고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국 문 앞에 가서 들어갈 자격시험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에 우리가 천국 문 앞에 가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행위들을 내어놓고 잘 잘못을 따지는 심판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에 우리 주님께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때 우리도 그 앞에 서서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자격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정말로 있다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문제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문제이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사람이라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8:1-2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심판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절과 뒤이어 나오는 말씀인 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셨고 그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우리가 예수님을 바르게 잘 믿으면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이란 무엇일까요?
그 의미를 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말합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성전이나 성도들을 포함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심판”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이지만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고난이나 연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앞선 12절 말씀에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불 시험을 심판과 연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아주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그 불로 인해서 더 순수한 정금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고 
믿음을 가지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완전히 타서 없어져 버리는 불순물들과도 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1)성도들도 일반적인 죄의 심판은 받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땀을 흘려서 일을 해야 먹고 살고 세상 사람들처럼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들고 병이 들고 늙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욕심도 있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국법이나 도덕적인 법들을 어기면서 삽니다.
그래서 그런 죄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실패를 당하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의 죄악들 때문에 우리도 이 세상을 살 동안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더 잘살기도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죄를 지으면 더 많은 벌을 받으면서 살기도 합니다.
그것을 교회에서 시작된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니까 대강 적당히 살아도 기도만 잘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법칙을 따릅니다.
이 세상의 바른 질서나 법들도 사실은 다 하나님께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노력이나 힘씀이 없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다른 사람들은 성공도 하고 부자가 되어서 잘 사는데 나는 이 모양으로 살게 하십니까? 라고 하나님을 원망을 합니다.
또 부모님이나 형제들이나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원망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은 바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죄도 짓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살았는데 순전히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나의 게으름 때문에 나가 더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지 못해서 내가 노력 없이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욕심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그 허영심을 따라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 죄성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2)성도들은 더 많은 연단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더 성공하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많은 훈련들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의 성공보다도 더 귀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더 많은 훈령의 과정들을 거쳐야 합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을 해야 되는데 하물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그렇게 쉽기만 하겠습니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누가 그 길로 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가 너무 쉽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바른 믿음을 가지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참된 믿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험과 시련이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인간관계를 말할 때도 그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돈 거래를 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이익 앞에서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점검해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교회에 나와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하지만 정말로 나의 이익 앞에서 나를 희생하고 헌신하면서까지 그런 믿음을 고백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보고, 고난이 닥쳐와 보고, 손해를 당해보고, 어려움을 겪어 보아야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거짓믿음이지를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을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을 때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에도 그런 심판이 시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에 마음이 끌려서 이 땅에서 잘 살아 보려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병을 고치려 교회에 온 사람들은 병을 다 잘 고치는 병원이 생기고 병원에 갈 돈이 생기면 교회에 올 필요가 없어집니다.
가난이 지겨워서 어떻게 하든지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교회에 다닌 사람은 그 꿈이 이루어지면 교회를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천국을 향해서 가게하기 위해서 부스러기로 준 것인데 반응이 좋으니까 그것만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야기 안 하면 교인들이 떠날까봐 그 이야기는 차마 못하고 가끔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고 천국은 덤으로 얻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엉터리들을 그런 이기주의자들을 세상에 미련을 두고 세상에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을 그대로 천국에 데리고 가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고난 한번 당해보지 않고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잘 사는 사람입니다.
그 짧은 세상 잘 사는 것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불쌍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천국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기를 쓰고 사는 사람입니다.
더 더욱 불쌍한 사람은 고생 고생하면서 살다가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죄임임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교만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고 연단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당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큰 믿음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너무나 강조하기 때문에 이 구원이 얼마나 어렵고 또 귀한 것인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또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너무나 강조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참 쉬운 일이구나 라고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구원은 죄와 사망과 영원한 멸망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 때문에 죽게 되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사람들입니다.
거기에서 건짐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을 받게 해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실 이런 아주 특별하고 아주 엄청난 특혜를 주는 교회에 아무나 불러 모아서는 안 됩니다.
무슨 안 팔려서 썩어나는 물건을 파는 것처럼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오라고 하면 아이들도 뭐 목사 사정 봐주려고 교회에 가 준다고 합니다.
성도들도 요즘은 교회에 와 주는 것이 무슨 큰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요즘 교회가 잘 운영이 안 되니까 목사의 입장에서는 내가 담임하는 교회에 와 주면 고맙고 헌금이라도 좀 해 주면 고맙지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이 걸린 곳이고 여러분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여러분이 사정해서 와야 하는 곳이지 제가 아쉬워서 여러분에게 오세요. 오세요. 라고 하는 그런 곳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충성을 하고 그 믿음을 따라 산다고 해서 당연히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당연한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답답해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겠습니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은혜란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거저주시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실은 안 되는데 그런 것을 받을만한 가치도 없는데 그냥 데리고 가시려고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억지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구원입니다.

그런 구원 즉 겨우 아슬아슬하게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자기가 잘나서 구원을 받는 사람처럼 교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겨우 교회에 좀 다니면서 신앙생활 한답시고 큰소리치거나 겨우 조금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흉내나 내면서 당당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을 하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귀한 구원을 믿음이라는 최소한의 것으로 받으면서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치고 교만해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겨우 부끄럽게나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줄을 알고 늘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고기는 알을 낳을 때 수 천, 수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 많은 알을 낳고도 아무 소리도 안하고 눈만 끔벅끔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닭은 알을 낳으면 겨우 한 개 낳으면서도 큰 소리는 어떻게 치는지 꼬꼬댁 꼬꼬댁하고 되게 잘난 척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닭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의 공로는 조금도 자랑 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 귀한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를 바르게 알고 그 은혜와 사랑 앞에서 감격하고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최선을 다하고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바르게 살려고 하고 더 열심히 살아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 일에 더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에는 충분한 대가가 주어지는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이 세상 사람들은 엄청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어찌 될 것이며 
우리가 겨우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경건치 않는 자들과 죄인들은 심판 때 설 자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심판으로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영원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자부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영혼을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운명을 하실 때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스데반도 순교하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우리의 영혼을 맡길 만 한 분은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받아 주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른 믿음이 무엇인줄 알고 그 믿음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행하고 난 후에야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여 후회함이 없는 멋있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당하는 고난이라면 즉 믿음 생활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기쁘게 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고난으로 인해서 우리의 믿음이 정금 같은 믿음이 되며 그 믿음을 통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이 세상의 일만 바라보지 마시고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의 길로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