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24)
본문 : 벧전 2:18-20
제목 : 순종과 선행의 삶.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 전서를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소망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고난 가운데 소망입니다.

현실은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 살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고통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그 목적지에 도착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행인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너무 집착하지 말고 주어진 삶에 따라서 살다가 보면 이 세상은 하룻밤 꿈처럼 그렇게 지나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절 이하에 계속해서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잘못 이해를 하면 우리 기독교가 참 무기력한 종교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나 왕이나 총독이라고 할지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항의를 하고 개혁을 해서 바르게 잡아야지 무조건 잘하나 못하나 왕이니까 총독이니까 순종을 하고 제도이니까 따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절망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사환들아 주인들에게 순종을 하라 순종을 하되 선한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롭게 구는 자들에게도 순종을 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참으면 아름답다. 라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참 답답해할 것입니다. 시대에 너무 뒤떨어지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환들아 맨날 종노릇만 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사장이나 회장이나 높은 사람이 되어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고 울고 있지 말고 당당하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권리를 되찾아서 인간답게 살아라. 라고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요즘은 순종하면서 살아라,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살아라, 선을 행하면서 살아라. 라고 하기 보다는 기도하고 노력하고 쟁취해서 성도답게 떵떵거리고 살라고 설교를 합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옛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니까 우리는 무시를 해도 되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오늘날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말씀일까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은 우리가 순종하면서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특별히 신약의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가 그대로 지켜야 할 말씀들입니다.

전제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우리가 살 본향이 아니라 나그네와 같이 행인과 같이 살아야 할 세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좀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개혁하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순응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선한 일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더 나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더 행복한 삶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순종하는 삶.
오늘 본문 18절 말씀에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라고 했습니다.
사환들은 주인들에게 순종을 하되 선하고 관용을 베푸는 착한 주인에게만 순종을 할 것이 아니라 아주 까다롭게 구는 나쁜 주인에게도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환’이라고 번역된 말은 종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말입니다. 
종은 아무런 권리도 없고 심지어는 목숨도 주인에게 맡겨진 신분입니다.
그러나 사환은 좀 다릅니다.
종은 종이지만 그렇게 비참한 상태의 종은 아니고 가정에서 여러 가지의 일들을 맡아서 하는 일꾼을 말할 때 사환이라고 합니다.

사환들은 일반적으로 괜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책임감 있는 위치에 있거나 전문적인 일을 담당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교육의 정도에 따라 교사나 궁중의 관리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약간의 월급도 받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돈을 모아서 자신들의 자유를 살수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사환들에게 주인의 하는 말에 순종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존경을 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순종을 하라고 했습니다.

주인들에게 순복하라고 하면서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 뿐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까다로운 자들’이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합리적으로 일을 지시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지시합니다. 
도대체가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하라고 하고 또 어떤 때는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에 순종을 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순종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사환이란 오늘날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남의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든 손님들이 주인 같은 사람이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회사의 사장이 주인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남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요즘 같은 인권이 중요시되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무조건 남의 말에 순종하라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순종을 강요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위에서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순종을 하기 싫어합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누구의 말이든 듣지 않고 다 자기의 생각대로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만 행동을 한다면 이 세상은 생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질서에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정도의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옳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윗사람의 말에 순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에 순종이 결국은 하나님께 순종을 하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순종을 하지 못하고 반항을 하기 시작을 하면 하나님께도 반항을 하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도 다소 불합리한 일로 생각이 되는 일에도 순종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서로에게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사업체에서 윗사람이 말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선을 행하는 삶
본문 20절 말씀에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을 닮아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전에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보다 더 선하게 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선을 행하며 사는 세 단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가 있어서 매를 맞고 참는 사람이 있고
부당하게 고난을 받았으면서도 참는 사람이 있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1)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불행한 일들의 원인은 죄가 그 원입니다.
나는 바르게 살았는데 억울하다. 라고 항변을 하지만 잘 따지고 보면 내가 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지나쳤든지, 법을 어겼든지, 남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줬던지, 내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든지, 게을렀든지, 무엇이라도 나에게 잘 못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 때 천주교에서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구호를 붙이고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남의 탓만 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런 구호를 붙이고 다니면서 자기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잘 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남의 탓만 하면 이런 속담까지 생겼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잘못을 해서 벌을 받아 고통을 당하면서 나는 참는다. 라고 하면 누가 칭찬을 해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참고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펴보고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고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선을 행하는 기초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후에야 선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선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부당하게 고난을 받고 슬픔을 참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19절 말씀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특별히 잘못을 한 것이 없으나 부당하게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매를 맞아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제도가 잘못되어서 어려운 가정에 어려운 환경에 태어나서 본의 아니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평생 감옥살이를 했다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평생을 고생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로 태어나서 한 평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자포자기 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아니면 평생 세상을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픔을 참으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슬픔을 참으면서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부당하게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억울하게 해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믿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후일 형제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해를 할 수가 없지만 우리 주면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나쁜 일이든지 좋은 일이든지 그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원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해도 참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부모님이나 자녀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이런 가족을 구성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형편이 어렵다고 원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이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감사하면서 그 일을 헤쳐 나갈 때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번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시고 역사하시게 할 아주 좋은 길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
감사생활 바르게 해 보십시오 거기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있습니다.

3)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했습니다.

죄를 짓고 매를 맞고 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정말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좋은 일 하다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냥 자기를 위해서 살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인데 괜히 남을 도와주다가 좋은 일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런 어려움을 당했다고 해서 선한 일을 한 것을 후회하거나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일이고 상을 주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오늘 제가 하는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어떤 경우에라도 순종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여러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뭐가 잘 안 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감사생활이 어떠했는가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선한 일을 많이 하시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는 일, 남을 잘 되게 해 주는 일
특별히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 하는 일
이런 일에 한번 관심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복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두 가지의 주제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순종하는 삶에 관한 것과 또 하나는 선한 일을 하는 삶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주인에게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부당하고 까다롭게 생각되는 일에까지 순종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선한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교회 앞에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며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