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28)
본문 : 벧전 2:24b-25
제목 : 내 영혼의 목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을 많이 키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의 성격도 잘 알고 양을 키우는 목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양을 우리 인생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목자와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목동으로 지냈던 다윗왕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시작되는 유명한 시를 남겼습니다.

양은 대단한 근시입니다. 
멀리를 내다보지 못합니다. 단지 눈앞의 것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냇물을 찾는다든지, 길을 잃었을 때 우리를 찾아 올 수가 없습니다. 

또 양은 철저한 무방비 상태의 동물입니다. 
동물들은 저마다 적들로부터 자기를 방어할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스컹크처럼 방귀를 뀐다든지, 사슴처럼 도망을 잘 친다든지, 아니면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으로 적의 시선을 따돌린다든지 그런 기술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 양은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거나 머리라도 좋아야 살아남을 텐데 양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도 IQ가 낮은 동물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똑똑한 척 하고 강한 척 하지만 사실 영적인 면에서 보면 볼 수 없는 장님과도 같고 자기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무능력하고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입니다.

그런 우리 인생에게 영혼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양이 목자의 품 안에 있어야 안전이 보장이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품 안에 있어야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생들이 길 잃고 헤맬 때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우리들은 바른 인생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양과 목자에 비유해서 하나님과 우리 인생들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길을 잃은 양과 같은 신세였는데 지금은 우리의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항상 한결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르게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양처럼 잘 보지도 못하고, 무능력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목자이신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시는 하나님 품으로 더 깊이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1.받은 상처로 길을 잃은 인생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너희가 나음을 입었나니”라고 했고 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들이 과거에는 상처가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양과 같이 길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올바른 정신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끊지 못하고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자신도 바르게 살지 못하고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내나 자식을 구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유 없이 화를 내고 그 분풀이를 가족에게 합니다.
아내를 구타하고 자식들을 구타해서 온 가족이 불행하게 사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의심이 많아서 심지어 한 몸처럼 살아야 하는 아내를 의심하고 남편을 의심해서 감시를 하고 꼼짝도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노예가 되어서 정말로 구두쇠처럼 살고 억척같이 돈을 모으기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바른 삶을 살지 못하고 자신도 불행하고 가족도 불행해 하는 그런 삶을 살까요? 

현대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다 과거에 받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거나, 구타를 당하고 살았거나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그 상처 때문에 바른 삶을 살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나쁜 삶을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전서서신이 기록된 시대의 사람들은 특별히 노예출신의 성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노예 그러니까 노예겠지 하지만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가슴에는 참으로 엄청난 상처들을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사업이 실패해서 그 빚 때문에 노예가 되기도 하고 
어쩌다가 전쟁터에 끌려가서 포로로 잡혀와 노예가 된 사람도 있고
어쩌다가 노예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날 때부터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짐승과 같은, 일하는 기계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주인이 휘두르는 채찍이었을 것입니다.
그 채찍에 맞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도 순종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분노 속에서 절망가운데서 그저 죽지 못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늘 속기는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좀 나을 것이다 올해만 고생을 하면 내년에는 좋아질 것이다. 라는 소망이라도 가지고 살지만 그들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절망감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버림받고 천대받고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던 그들에게 나를 대신하여 채찍을 맞으신 분이 계신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을 때 그들은 엄청나게 감격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가 맞을 채찍을 대신 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에게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노예로서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면 머지않아 내가 주님의 나라로 가면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아도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다 나름대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그 상처 때문에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성경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니까 이 정도이지 우리도 세상에 나가서 우리 생각대로 산다면 엉망으로 살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노예요 종들입니다.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사탄의 종이 되어서 사탄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면서 사는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요즘 사탄의 손에는 채찍이 없습니다.
그들 손에는 당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먹게 해 주고 잘 살게 해주고 그 대가로 그들을 바르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이 땅에서 쾌락을 맛보게 하여서 참된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 모르게 만들어 버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게 만들어 버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한 상처들 때문에 바른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늙고 병들고 죽고 멸망해야 한다는 그 고통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오래 살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삽니다.
사탄은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길을 잃고 헤매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상처 때문에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서 세상 욕심에 빠져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신 예수님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예수님을 우리의 영혼의 목자와 감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처럼 눈이 멀고 힘이 없고 미련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목자와 같은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양 같은 우리에게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목자라고 할 때 그 앞을 수식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목자는 목자이신데 “선한 목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선한 목자라고 할 때 삯꾼 목자와 비교해서 선한 목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10:11-12) 라고 했습니다.

삯꾼 목자란 돈을 벌기 위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월급쟁이 목자를 말합니다.
이런 목자는 양도 자기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나타나면 가서 이리와 싸워서 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도망을 가 버립니다.
돈 몇 푼 벌자고 목숨을 버리겠습니까 그까짓 양 또 사서 기르면 되고 별 소종하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양을 소중하게 여겨서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양의 목숨을 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목자가 양을 키우는 목적은 양을 키워서 털을 깎아서 수입을 올리기도 하고, 양을 키워서 팔아먹고, 양을 잡아서 먹기 위해서 키웁니다.
양의 주인이 힘도 없고 어리석은 양을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시비를 걸 사람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처럼 채찍을 때리시면서 부려먹던지 어떻게 하시든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종이요 당연히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으로 대하시거나 우리를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쓰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대신 채찍을 맞으시고 대신 죽어주시는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참 너무 하셨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되셨을 까?
무엇이 답답해서 이렇게 까지 우리에게 잘 대해 주시는 것일까?
정말로 이렇게 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사이비 이단들은 자신이 목자와 같은 일을 하는 목사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양 같은 성도들을 속이고 빼앗아 가려는 도둑 같은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일부 나쁜 목사들은 성도들을 양으로 생각하고 자기는 그 양을 키워서 잡아먹는 나쁜 목자 역할을 합니다.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고 영원한 하나님께서 인도해야 할 목사들이 성도들을 잡아서 먹으려고 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목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감독자가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감독'은 '목자'와 거의 같은 의미로 목자의 기능적인 면, 곧 돌보고 감찰하는 면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목자나 감독자나 우리를 돌봐 주신다는 것은 비슷한 의미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바르게 살도록 감시하고 지도해주는 일을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가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혼자 내버려 두어도 바르게 잘 산다면 누가 감독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내버려두면 죄를 지으니까, 내 버려두면 엉뚱한 길로 가니까 감시하고 감독해서 바르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혹시 바른 삶을 살고 싶으시면 교회 옆으로 오십시오.
여러분이 스스로 감시를 받고 감독을 받도록 교회 옆으로 목사가 잘 보이는 것으로 오십시오.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나쁜 길로 가기가 십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보는 곳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독이 되어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잘 못하면 벌을 주고 책망을 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쁜 길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 길로 가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나쁜 사탄의 손에서 지켜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감독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목자가 감독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3.나음을 얻고 주님께로 돌아온 성도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행하여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로 돌아와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주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나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왜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교회에 오지 않을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또 교회 운영을 위해서 교회의 일원으로 돈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수고로 이렇게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있는 상처 때문에 교회를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옛날 미신을 섬길 때 무당에게 많이 속았습니다.
절에 가서도 속고 유교의 그 많은 제사에도 속았습니다.
많은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많이도 속았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돈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당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당하고 많이 안다는 사람에게도 당했습니다.
하도 속이는 사람이 많고 거짓말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누가 진실을 말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결혼한 사람에게 5천만 원씩 준다고 했던 후보를 여러분은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그가 선거 끝난 후 법을 어겼다고 1년 반이나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출감하자마자 또 거짓말을 하고 다닙니다.
거짓말을 그렇게 하는 사람을 어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송에 나오게 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게 해 놓고 재미있다고 웃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되면 부부에게 각각 오천만원씩을 주니까 결혼만 하면 합해서 1억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했다가 또 결혼을 해도 1억씩 준답니다.

자기는 공중 부양을 하고 예수님처럼 물 위로 걸을 수가 있고 자기의 눈빛만 봐도 병이 치료가 되고 자기 이름만 부르면 힘이 생기고 뭐든지 다 할 수 있게 된답니다.

이런 예수님을 흉내 내는 사기꾼들이 많으니까 진짜 진실 된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고 그냥 웃기는 이야기로 듣고 코미디로 생각을 해버립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런 상처들을 다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압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그런 상처들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그런 의심들을 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찔림을 당하고 상함을 받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우리의 죄악을 사해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당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행하여 길을 잃고 헤맸지만 
주님이 맞으신 그 채찍으로 인해서 우리가 나음을 얻고 이제는 우리가 목자와 감독이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혼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자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를 진리의 길로 평화의 길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오셔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