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32)
본문 : 벧전 3:7
제목 : 남편들아 아내를 귀히 여기라.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들이 남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3시간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내들이 믿지 않는 남편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에게 순종하고 또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을 하고 정결한 행실을 보여주면 남편도 감동을 받아 신앙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아내들은 외모로 단장을 하기보다는 속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마음으로 단장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아내가 된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둔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단장을 하고 남편을 주라고 부르고 선을 행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어떤 두려운 일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말고 끝까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남편들이 아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본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된다고 했습니다.
귀하게 여겨야 된다고 하면서 “이와 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1절에서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할 때도 “이와 같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1절 말씀과 같이 “이와 같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1절의 이와 같이는 바로 앞 2장 끝부분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제도들이 다소 불합리하다고 해도 그 제도 자체를 뜯어고치는 것 보다는 나그네 인생을 얼른 살고 다 완벽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그 나라에 오는 일에 열중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을 하듯이 아내들은 이 세상의 제도나 질서에 따라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환들에게 그들의 주인에게 순종을 할 때도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러하라고 하신 것처럼 선하고 관용하는 좋은 남편에게만 수종할 것이 아니라 못되고 까다로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을 할 때 이와 같이 순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처럼 순종하고, 못된 주인에게도 순종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헌신하신 것처럼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아내에게 이와 같이 순종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남편에게 “이와 같이“라고 했을 때 이 세 가지의 경우를 생각하고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아내들이 그런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종한 것처럼 하라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들을 살펴볼 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정신도 그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내들이 그렇게 남편을 주인으로 생각하면서 까지 순종을 하는데 남편들이 그것을 오히려 이용해서 큰 소리나 치면서 더 순종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별 볼일이 없는 남편인데도 너무 못난 남편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을 하시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지극정성으로 대하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더 아내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굽실대면서 잘 해주면 잘 해 주는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고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텐데 오히려 더 천덕꾸러기처럼 생각합니다.
내가 잘났으니까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나에게 잘 해줄수록 더 겸손하게 그 사람을 높여주고 존경하면서 잘 대하여야 합니다.
아내가 잘 해주면 야 나는 좋은 남편이라고 이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해 하고 하지 말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남편이라고 이렇게 잘 대우해 주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1.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
오늘 본문 말씀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남편들마다 물어보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아내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이 제일 나쁜 남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을 해야 되는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옛날 남편들은 무조건 남편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 돈을 많이 벌어 와서 좋은 집에 살게 하는 것이 제일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돈 벌고 출세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출세를 하고 그렇게 돈을 벌어서 좋은 집에서 살게 됐는데 그 좋은 청춘은 없어졌고 그저 남남 같은 사람이 한 집에서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황혼이혼이라는 것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제라도 사람답게 사랑하면서 살아본다고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돈벌어주는 기계는 그 수명이 다하면 버림을 받습니다.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살다가 수명 다하면 버림을 받을 것인지 끝까지 사랑받고 존경받는 남편으로 남을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멋진 남편으로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멋진 아버지로서 사는 것인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부부교실 아버지교실에 가서 많이 배워야 합니다.

물론 단순히 그런 지식만 배운다고 멋있는 남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으로서 꼭 가져야할 지식은 신앙에 관한 지식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의 진리를 아는 지식, 이런 지식을 먼저 갖추어야 정말 가정을 하나님나라로 이끌고 가는 멋진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보통 보면 가정에서 아내들의 신앙이 더 좋습니다.
성경을 알고 진리를 알아야 큰 소리를 칠 텐데 알아야 영적인 가장을 하지 모르니까 늘 아내에게 기가 죽어서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가지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내와 동거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별거하지 말고 동거하라는 정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가정은 몸은 하나로 사는데 마음은 다론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몸만 붙어서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은 하나인데 몸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사는 가정도 있습니다.
마음만 맞으면 되지 뭘 더 바라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동가하라는 이 단어는 마음보다는 몸에 더 근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동거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하나로 해서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그 일을 해 나가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취미가 무엇인지 아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함께 즐거워하면서 사는 것이 동거하는 것입니다.

동거하는 것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하는 것입니다.
기쁜 일도 함께 하고 고통스러운 일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고(同苦)는 하는데 동락(同樂)은 못한다고 합니다.
같이 고생은 했는데 즐거움은 따로 즐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동락(同樂)은 하는데 동고(同苦)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참된 부부는 슬픈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기쁜 일이나 다 함께 나누면서 함께 사는 부부입니다.
어려운 일을 함께 참고 견디면서 그 고개를 넘어보면 거기에 참된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그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귀하게 여기라.
오늘 본문 말씀에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는 연약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그릇으로 표현한 것은 아마 육신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강한 것 같지만 질그릇처럼 쉽게 깨어지는 한없이 연약한 것이고 특별히 여자의 몸은 남자의 몸보다 더 연약합니다.

또 어떤 분은 아내를 연약한 그릇이라고 표현한 것은 여자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릇이 깨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듯이 여자의 감정도 한번 상하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그것이 육신이든 마음의 감정이든 여자가 남자보다 더 연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 연약합니다.
한없이 강할 것 같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어떤 한계에 부닥치면 한없이 연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믿었던 육신의 힘도 마음의 강직함도 사라지고 연약하고 볼품없는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참 연약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강하면서도 마음 좋은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에나 신문에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하게 강하고 좋은 사람이 소개가 되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도 뒤를 조사해 보면 그렇게 좋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그 한 분야에서는 좋은 사람이고 강한 사람일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쁜 사람이고 약한 사람이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질그릇처럼 연약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작은 세균 한 마리에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하고 원인도 모르는 병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기도 합니다.

특별히 여자들은 남자들 보다 더 연약합니다.
육신도 연약하고 마음은 더 연약합니다.
별 것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별 것 아닌 말 한마디 때문에 토라져서 평생을 원수처럼 지내기도 하는 것이 여자들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신사들은 레디 퍼스트라고 하면서 늘 숙녀를 먼저 우대하고 보호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이렇게 연약한 아내를 사랑으로 보호하는 일입니다.
연약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알고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는 것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도리입니다.

3.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고 귀하게 여기라.
본문 말씀에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란 아내도 남편과 동등하게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자이고 그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함께 상속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그것이 뭐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강조하느냐고 하시겠지만 당시에는 여자들을 사람의 숫자에 넣지 않을 정도로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남자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남자만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의 자녀요 다 천국백성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잘 못 건드렸다가는 나중에 하나님께 혼 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함께 바는 이 일에 부부가 합심을 해서 서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남편이 좀 믿음이 떨어지려고 하면 아내가 붙잡아주고 아내가 좀 딴 길로 가려는 눈치가 보이면 남편이 강하게 붙잡아 주고 서로 합심해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부부가 합심해서 은혜를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이 은혜를 우리 자녀에게도 나누어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부부가 합심해서 하도록 하십니다.
부부가 함께 해서 이루는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은 한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은 참으로 고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으니까 별 것 아니구나, 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어떻게 한 생명을 그것도 천하보다 귀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생명을 우리 힘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키우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아이 낳아 키워놔도 효도하는 아들이 없어서 아이 낳는 것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한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이 일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그 귀한 일을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 귀한 은혜를 하나님께 함께 받았다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자신을 낳아주신 보무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날 유명한 맹인가수 이용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람이 불던 그 어느 날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낙엽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내 눈에 보이던 세상 잊을 수가 없어 어머니,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물론 이분은 맹인으로 이 세상을 살려고 하니까 너무 힘이 들어서 이런 노래를 불렀겠지만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이렇게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빈손으로 왔다고 해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에 생명이 사람뿐입니까 개도 있고 소도 있고 바퀴벌레도 있고 파리도 있는데 이런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그 자체만 해도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아이를 신앙으로 키우는 일을 부부가 함께 받은 일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아서 단순히 이 세상에서만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도 참으로 귀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영원한 생명을 이어받을 자로 키우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이제는 공부 공부 하지 말고 아이를 신앙으로 키우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사상에서만 잘 사는 것 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인 너무나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의 은혜를 우리 자녀들에게 이어받게 하는 일 참으로 부부가 함께 할 가장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 말씀에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또 함께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이어받을 자로 알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자체만 가지고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그 응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말합니다.
살아가면서 호흡은 별로 중요한 것 같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기도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도는 호흡처럼 생명을 좌우하는 것 같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은혜의 통로를 막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수시로 무시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성도인 우리가 세상을 잘사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내를 소중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요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 기도를 막히지 않게 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통로가 막히지 않고 언제나 수시로 기도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영육 간에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남편 된 성도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아내와 고와 낙을 같이하면서 동거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지만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귀한 사람으로 알고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도가 막히지 않고 은혜의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하는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