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34)
본문 : 벧전 3:10-12
제목 :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다윗이 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은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시34:12)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참으로 귀한 것임을 알고 장수하는 것이 축복인 줄 알고 또 사는 날 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이 생명입니다.
이 귀한 생명을 가진 우리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장수하고 좋은 날을 보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생명이란 단순히 이 세상의 육신의 생명을 말하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좋은 날이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고난속의 소망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고난을 당하지만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하십니다.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나그네요 행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잠시 나그네처럼 사는 이 세상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생명이요 삶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건강하고 장수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의 삶으로 만족을 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행복하고 좋은날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그저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뭔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보다나은 내일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공부를 하든지 기술을 배우든지 장사를 하든지 돈을 벌어서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애를 쓰면서 살았습니다.
월세 방에 사는 사람은 전세방에 살기 위해서 전세방에 사는 사람은 내 집 마련을 위해서 먹을 것 마음대로 못 먹고 저축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주어진 형편대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형편이 그대로 변함이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퇴보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날마다 변화를 거듭해야 합니다.
나쁘게 변질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더 나은 신앙으로 늘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더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서는 더 나은 내일의 신앙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퇴보합니다.
성경공부도 해야 되고 기도생활도 더 많이 해야 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책도 보고 연구도 하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안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입니다.
게으르거나 나태하지 않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더 나은 생명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바른 언어생활을 하라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
본무 말씀에서 혀를 금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부정적인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 땅을 들어갈 때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어서 정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들어갈 땅이 어떤 땅인지를 먼저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각 지파를 대표하는 12명의 정탐꾼을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되었습니다.
40일 동안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보았는데 과연 참으로 좋은 땅이었습니다.
포도를 메고 가는데 두 사람이 포도 한 송이를 나무에 메고 갈 정도로 농사가 잘 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온 사람들이 그런 좋은 면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을 강조해서 불평을 했습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민14:1)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정적인 말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냥 들어가면 될 것을 가지고 38년이나 광야를 더 돌면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말한 대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안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시34:12)“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사모하는 사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부정적인 언어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해서 더 깊은 의미의 교훈을 전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좋은 날 보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언어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어는 참으로 묘한 것이라서 말하는 대로 되어 지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옛말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화가 난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늘 부정적입니다. 
항상 입에서 "아이고 죽겠다", "죽지 못해 삽니다.", "큰일 났습니다"하고 탄식의 말, 불평의 말을 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잘사는 법이 없고,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감사하는 대신 불만의 조건 만 찾습니다. 밝은 면을 보지 않고, 굳이 어두운 면만 찾아내서 투정을 합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람, 복 받은 사람은 그 말이 긍정적입니다.
아이고 좋다, 잘 될 것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하면 되겠다, 이런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말을 합니다. 
할 수 있다, 좋다, 잘 된다, 이런 긍정적인 말이 우리를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세미나에 강사로 오신 이화수목사님은 교회나 가정에나 이런 표어를 써 붙이고 사신다고 했습니다.
“원망이나 불평의 말을 하려거든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마시오.”
“원망이나 불평의 말을 하려거든 우리교회에 들어오지 마시오.”
원망이나 불평의 말은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 원망이나 불평을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은 늘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가족에게 다른 교육을 하기 전에 바른 언어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도록 교육을 해야 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망하게 하는 위험한 것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을 해야 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은 점염성이 강해서 금방 다른 사람에게 옮겨갑니다.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한 한 사람의 원망이나 불평이 온 교회를 감염시켜버립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되고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든지 긍정적인 면이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 입술의 열매대로 그렇게 됩니다.
긍정적인 면을 보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그 입술의 열매대로 일이 잘 되고 감사가 더욱 넘치게 됩니다.

2)악한 말을 하지 말라
악한 말이란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이 악한 말일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드러내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말이 악한 말일 것입니다.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가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결점을 들춰내기 좋아하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의 허물을 꼬집고, 결점을 들춰내며 비판하는 일은 조금도 유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지장을 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남을 비판하고 악한 말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을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선한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잘 보이는 사람은 나는 바르고 똑똑해서 다른 사람의 약점 단점을 잘 본다. 라고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자꾸 보이면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제 눈을 고쳐주옵소서 사람들의 단점보다 장점을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지 단점이 보인다고 그대로 부정적인 것을 말하면 안 됩니다. 

3)거짓말을 하지 말라
요즘 사람들은 거짓말이 몸에 배였습니다.
별 양심의 가책이 없이 거짓말을 잘 합니다.
과장되게 말하거나 핑계를 잘 댑니다.
물론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좀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거짓말들이 모여서 나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핑계는 거짓말 못지않게 나쁜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도 알고 보면 우리조상의 핑계 때문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으셨을 때 아담은 자신의 죄를 하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하와가 주어서 먹었습니다.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습니다. 라고 핑계를 댑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핑계를 댑니다.
그로인해서 순간적으로는 피할 길이 될지 몰라도 장래를 위해서는 악영향을 주는 나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신앙고백을 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 된 마음으로 진실 된 언어로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실 되기 위해서 평소의 우리의 언어가 진실 된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늘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신앙고백을 한다면 그 말도 거짓말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언제나 거짓을 버리고 진실 된 언어를 써야 합니다.

2.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1)악에서 떠나라
성도들은 바른 언어생활 뿐 아니라 그 삶이 악과는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 "악에서 떠나"라는 말은 "악에서 돌아서라"는 의미입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왜 악에서 떠나야 합니까?
악은 사단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그늘 아래 있는 자는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즐겨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머리에 쌓게 됩니다. 
사단은 항상 신자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틈만 보이면 여지없이 공격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악에게 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삶이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악에서 떠난 것으로 만족해 버린다면 신앙의 전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버리는 것이 있다면 찾아야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2)선을 행하라
악에서 떠나는 것은 소극적인 신앙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악에게 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악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둘 것이고,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9절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라고 하였고, 
2장 10절에서는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악에서 떠나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화평을 구하라
선을 행하면서 사는 사람은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화평은 구약에 나타나는 샬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시라고 말씀합니다(엡2:14).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은 화평케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참여하는 모든 모임에는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로서 내가 어떤 모임에 참여함으로 그 모임이 화목해지고 아름다운 모임으로 변화되어 간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그러나 신자라고 자처하는 내가 들어가는 모임마다 시끄럽고, 다툼이 생기고, 그 모임이 분열되어진다면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평해야 할 대상은 '모든 사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친분이 있는 사람과의 화평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나를 반대하는 사람과도 화평을 유지해야 합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화평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좇으며 그 분을 닮아 감으로 그의 생활 속에서 모든 이로 더불어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입니다.

3.주님의 관심을 끄는 자가 되라
본문 12절 말씀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눈은 어디로 향하여 있다고 하셨습니까?
의인을 향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귀는 누구를 향하여 있다고 하셨습니까?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감찰하심을 의미하며(출 2:25) '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필요한 간구를 들으심을 의미한다(출 3:7).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의인에게 있습니다.
의인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가 의인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선하게 바르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길은 희생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선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계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인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바르게 살고 선을 행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려고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주님의 얼굴은 누구를 대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신다고 했습니다.
'주의 얼굴'은 하나님께서 악행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진노의 모습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모르고 죄를 지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보일지 몰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노한 얼굴로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우리가 가고 있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좋은 날도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늘 악한 말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고 영원한 생명을 알고 천국의 그 화려함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그 아름다운 삶을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잊지 마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바른 삶을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혀를 금하라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악한 말을 하지 말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진실 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악에서 돌이켜 선한 행동을 하고 화평을 이루고 화평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 지를 바르게 알고 관심을 끄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의롭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눈과 귀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