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삼 07)
본문 : 요삼 1:13-15
제목 :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드디어 오늘 요한 일, 이, 삼서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요한서신을 공부하면서 신앙의 한층 높은 면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은 확고부동한 불변의 진리이고 유일한 진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반드시 사랑을 동반하는 것이고 사랑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후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계명 안에서 행하여야 참 사랑이 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제 편지로 말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대목입니다.
할 말이 많지만 편지로는 이만 줄입니다. 
만나서 맘껏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대와 함께하길 바라며, 
이곳에 있는 친구들이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그 곳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이런 내용의 인사입니다.

이 말씀 속에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제목으로 오늘은 제목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 성도님들 가정에 이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실 이 평강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날 때 마다 샬롬 즉 이 평강을 빌었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은 서로 다투고 싸우고 경쟁하는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이 평강을 빌면서 산 것은 그들의 삶 속에 늘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의역사가 그렇듯이 항상 서로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서로 늘 평강을 빈 것은 그들의 삶에도 전쟁 못지않은 고난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정착이 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기독교를 인정해 준 것도 아니고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로마인은 로마인대로 기독교를 적대시 하고 핍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삶은 그런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지만 마음만은 평강을 누리면서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거 그런 시대에 비하면 참으로 평강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가 우리를 예수님 믿는다고 핍박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편하면 편한 대로 늘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옛날 군대생활 하신 분들이 요즘 군대생활 하는 것을 보면 야 그것도 군대냐 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런 군대도 견디지 못하고 탈영을 하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군인도 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앙생활하려면 나는 누워서도 하겠다. 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참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평안한 시대에 살면서도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특별히 아이 엠 에프 시대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오늘을 사는 여러분들에게 참된 평강을 누리면서 사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주 안에서 참된 평강을 누리면서 사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내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인식하라.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고 
그런 내가 지금은 어떤 신분으로 변화되어 있는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마음의 평강을 누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 봐도 진정한 의인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방심을 하면 아주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삶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른 포기를 하고 나는 흉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인정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일을 포기 하고 자기 자랑을 포기 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일이 평화를 누리는 아주 빠른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든 후에 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 나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신분인가를 바르게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의 공로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으며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사람이 되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산 사람 중에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셨을 것입니다.
우리야 어차피 우리 부모님이 사람이니까 사람으로 태어났고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우리에게 참 다행이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개나 쥐나 바퀴벌레 같은 미물로 이 세상에 태어낫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 끔찍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사람으로 태어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실 필요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면 당연히 사람들이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대대적으로 환영을 하는 것이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고 환영은커녕 오히려 비웃고 조롱을 하고 멸시를 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 같으면 참 가소롭고 같잖은 것들을 당장 처리해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그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시거나 화를 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고 걱정하고 그들 편에 서시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충분히 그러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신 사람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똑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실 수 있으셨던 것은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인식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중압감에 시달리지 않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는 길은 내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르게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살 때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우연히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렇게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알고 내가 지금 처해 있는 모든 형편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알면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힘 있게 능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 그리고 여기에 오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이 어려운 가정으로 보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할 일 많은 광성교회로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이 어려운 형편으로 보내 주셨다. 
이런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처한 형편에 대해서 그것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오히려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기에 감사하면서 사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바르게 인식하라.
내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알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평강을 누리면서 사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바르게 아는 것도 더 큰 평강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잘 못했을 때 마음이 불안해합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하지 못했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내가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성공을 해야 하고 충성을 해야 되고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뭔가를 이루어 놓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면 평강을 누리면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이 되는가, 어떤 성공을 했는가,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 권력이 있느냐, 힘이 있느냐, 이런 것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든 간에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 세상을 향하고 있느냐 그것만을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한 우리가 무엇이 되었는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패자가 되었을 때,
오히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돈 한 푼도 없는 알거지기 되었을 때,
오히려 우리가 힘도 능력도 없는 불구자가 되었을 때,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더 큰 마음으로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더 큰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애통할 때
우리가 주리고 목마를 때
우리가 핍박을 받고 미움을 받을 때
오히려 주님께서는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할 때
저 인생은 왜 저렇게 밖에 못사느냐고 비웃을 때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을 때
하나님은 나를 이해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더욱 사랑해 주십니다.

그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편이 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동정과 사랑의 눈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실 때도 그가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힘을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가 혈기왕성했던 때도 아닙니다.
산골짜기에서 지팡이 하나로 처갓집의 양떼를 살피는 목동이 되었을 때 그를 찾아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꼴랑 지팡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 손에 든 그 지팡이 하나를 이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꼴랑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오병이어로 이만여명을 먹이고도 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공한 모습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형편이 되었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무조건 나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시고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나의 눈도 이해와 용서의 눈으로 만들라.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가 평강을 누리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착하고 바른 사람들이 있을 때 평강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주변에 좀 마음씨 착하고 선한 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우리 주변에 대해서 늘 불만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 부모님도 사랑이 많고 돈도 많고 그런 부모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서울대학교에 숙숙 합격하는 그런 똑똑한 자녀들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돈도 엄청 많아서 헌금도 많이 하고 신앙심도 좋아서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전도도 많이 하고 충성 잘하는 성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님들은 우리 목사가 설교도 엄청 재미있게 하고 능력도 많아서 기도만 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고, 출세도 하게 하고, 그런 목사였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늘 불평합니다.
왜 나의 주변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 없고 나쁜 사람들만 있을까
왜 나는 이렇게 복이 없을까 이런 불평을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남의 단점만 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 환경이 바뀌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착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하게 바뀔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처럼 이해와 용서의 눈으로 바라보시면 간단하게 해결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그것을 고치려고 비판을 하고 충고를 하려는 마음이 있는 한 진정한 평강은 누리지 못합니다.

잘못은 이해를 하고 불쌍히 여기고 작은 장점을 보기 시작을 하면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인지라 하나님과 같은 그런 마음은 가질 수 없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더 이해를 하고 조금만 더 동정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좋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기 시작을 한다면 우리의 삶이 엄청난 변화가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될 때 우리에게 임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신이 십자가의 은혜로 얼마나 귀한 신분이 되었는가를 인식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인식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도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변화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눈으로 성도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찬된 평강이 임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삶 속에 이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