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08)
본문 : 벧전 1:13
제목 :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옛날에 그래도 뭔가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책상 앞에는 이런 속담 하나쯤은 써 붙여놓고 있었습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슈킨(Aleksndr Pushkin)의 시 한구절도 많이 붙여놓고 있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들을 참고 견디면/ 머잖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사실 저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백 명 중에 한두 사람, 수천 명 중에 한두 사람만 성공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삶을 사는데 괜히 한두 사람 잘 된 것 가지고 보통 사람 기분 나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뛰어나게 성공은 못한다고 해도 좀 나은 삶을 살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좀 배울 필요는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는 인내의 싸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얼마만큼 더 많이 참고 견디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 어려운 고비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고비가 없이 한평생 평온하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 때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는 사람은 실패하기 쉬운 사람이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은 성공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잘 없는 사람은 젊을 때 고생을 일부러 사서라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에도 많은 고비들이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정말로 신앙의 인내는 쓰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콤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되면 엄청난 것을 은혜의 선물로 받게 될 것인데 문제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참고 견디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참고 그 자리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 자리까지 가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도 있고, 내 자신의 마음도 강하지 못하고 세상은 너무나 하나님과 멀리 떠나고 있고, 타락을 해가고 있고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귀한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신 것처럼 구원, 은혜, 복음, 이런 너무나 귀한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에 따르면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엄청난 것을 받게 되는데 그 믿음을 어떻게 끝까지 지키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온전히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이 무엇이며, 근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시고 끝까지 견디셔서 그 귀한 은혜의 선물을 차지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오늘 본문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여야 된다는 명령을 내릴 때 “그러므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이유들을 충분히 설명을 하고 난 후에 그러므로 이렇게 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러므로”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그 은혜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죽 설명을 하고 그러므로 그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게 될 은혜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12절까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3절 말씀에 “산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4절), “칭찬과 영광과 존귀”(7절), “영혼의 구원”(9절), “너희에게 임할 은혜”(10절)라고 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뭘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손해나 보면서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 주면서 생색이나 내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고생을 하면 엄청난 것을 우리가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표준새번역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을 단단히 먹고”입니다.
대강 적당히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신앙을 지키려고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말은 성경에 여러 번 등장을 합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 나올 때 마지막 식사를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12:1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취할 자세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 성도들이 사탄과 대결하여 싸우는 자세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엡6:14)라고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이렇게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 입지 못했습니다.
그저 천을 걸치기도 하고 우리나라 두루마기 같은 옷을 걸쳐 입었습니다.
그대로 일을 하거나 빨리 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허리에 띠를 바짝 조여 묶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통으로 생각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악착같은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우리 자신의 중심입니다. 
마음이 가는 곳에는 모든 것이 다 따라 갑니다. 
또 마음은 우리의 몸과 영의 고리역할을 하고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참된 신앙은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마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마음은 우리 모든 인생들의 중심부가 됩니다. 

마음의 빛깔에 따라 인생의 이름이 달라지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인생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마음이 밝으면 밝은 인생이 되고, 인생이 어두우면 어두운 인생이 됩니다. 이렇게 마음은 인격의 핵이고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잠언 4장 23절에는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중요한데, 마음 하나만 잘 먹으면 모든 것이 오케이일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마음 하나 바르게 잡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까짓 것 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는데 별것 아니야 라고 마음 고쳐먹고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인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면 복을 받는데 그까짓 것 순종하는 것이 뭐 어렵습니까?
뭐 그렇게 힘든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죽으라는 것도 아닌데 순종해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쉬운 문제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해야지 오늘부터 똑바로 살아야지 각오를 하고 다짐을 해도 작심삼일이라고 금방 해이해지고 또 게을러지고 그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렇게 마음하나 다잡는 것이 힘이 들기 때문에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아준 단단하게 마음을 묶지 않으면 금방 마음이 다시 흐트러져버리기 때문에 자꾸 자꾸 허리를 동이듯이 마음을 붙잡아 매야 합니다.
어디에다가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매야 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에다가 우리의 마음을 묶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에 우리의 마음을 묶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질 그 은혜의 선물에다가 우리의 마음을 묶어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시시해서 우리의 마음을 묶어두지 못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가는 우리의 마음을 천국으로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영원한 나라의 산 소망만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근신하여
또 오늘 본문은 은혜를 온전히 바라기 위해서 “근신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근신하라'는 것은 '자기절제'를 뜻합니다.
혹자는 이 말이 술 취함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절제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래서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너무 악합니다.
이악한 마음이 제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려면 정신을 차리고 절제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제는 하지 못할망정 술을 한 잔 먹고 그나마 마음을 제 멋대로 놓아버리면 금방 엉뚱한 길로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한 사람이 어렵게 알코올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알코올로부터 해방 된지 3년이 지난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아파트 앞 상가를 지나가다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유혹을 절제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선 그에게 '딱 한 번 만'이라는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딱 한잔을 마신다는 것이 그만 다시 알코올 중독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알코올 중독으로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절제하지 못해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적당히 하고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적당히 하지를 못합니다.
무엇이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빠져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낚시에 빠져서 직장도 가정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박이나 오락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나친 욕심에 빠져서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다움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인생들은 이 세상의 욕심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까지도 이 세상의 축복 이 세상의 복락에 빠져서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을 향하여 가는 구원의 방주라고 했는데 세상을 향하여 가는 타락의 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행복에 대한 지나친 욕망들 때문에 신앙까지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야 할 것은 무엇보다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정신 차려 점검하고 살펴보고 바른 길로 가도록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욕심에 취해서 세상 쾌락에 취해서 혼란과 방탕 속에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강하게 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이 마음을 강하에 하는 것이고 우리가 정신을 바르게 차리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세상에 취해서 혼란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붙잡고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강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 저들처럼 변할지 모릅니다.
언제 저들처럼 엉뚱한 것을 따르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누기 뭐라고 해도 이 진리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십자가를 바르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통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취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까? 
그래서 절제하지 못하고 점점 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까? 
거룩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소는 없습니까?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5:8)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이 시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취미로,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오락으로, 때로는 돈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근신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도 저들의 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삽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들 가운데 우리가 바라고 살아야 할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주님께서 가지고 올 그 은혜를 바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끝이 나고 드디어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그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은혜가 있는데 그것이 진짜 은혜고 그것이 우리가 바라야 할 가장 귀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완성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은혜도 중요하고 좋은 것들이 많지만 우리가 바랄 궁극적인 은혜는 최종의 은혜는 최고의 은혜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온전히'라는 말은 그것만 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랄 때 오직 그 은혜만을 바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다 받고 또 그것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기를 영원한 천국도 가고 또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 세상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살라고 주신 땅인데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문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천국을 향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마다 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게 돈 좀 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쓰고 잘 살겠습니다.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교만한 삶을 살지 않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하나님만 섬기고 잘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거짓말 하는 사람 한두 명 본 줄 아십니까?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 다 아십니다.
돈 많으면 교만해지고 아예 걸음걸이가 달라집니다.
돈 많으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으로 더 나아가고 
돈 많으면 천국으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되 온전하게 바라라 오직 그 은혜만을 바라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 다 버리고 오직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에 주님께서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주실 그 은혜만을 소망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뭐 이것저것 달라고 하지 말고 있는 것마저 다 버리고 천국을 향하여만 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헛된 소망도 아니요 거짓된 소망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산 소망입니다. 
그 나라에 갈 때까지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리고 오직 그 은혜만을 바라며 나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