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09)
본문 : 벧전 1:14-16
제목 :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가 같은 성경을 가지고 같은 믿음생활을 하지만 그 형태는 참으로 여러 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것들을 참 좋아합니다.
믿음으로 귀신을 좇아내고 믿음으로 병을 고치고 믿음으로 성공을 하고 믿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믿음만 있으면 뭐든지 자기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성공담을 듣고 있으면 믿음만 있으면 이 세상은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만 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어떤 목사님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그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이 세상에서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아멘을 하고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면서 야 저분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구나 우리와 다른 그 무엇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 미국에 있는 사람이 자기와 전화통화만 했는데 병이 나아버렸다고 자랑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참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건한 삶을 자랑합니다.
술 담배 안하는 것은 기본이고 노래나 오락이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까지 금하면서 오래 기도하고 금식하고 고행을 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재미를 끊어버리고 심지어 기본적인 가족 관계마저 등 뒤로 하고 작은 실수도 허점도 없이 깨끗한 삶을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는 새벽기도로 성공한 교회라고 말할 정도로 새벽기도에 중점을 많이 둡니다.
그 교회의 새벽기도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방송 됩니다.
수 천, 수만의 사람들이 그 꼭두새벽에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모든 일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엄청난 혼란과 차이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대하면서 이 말씀을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하나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에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을 하셨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을 하고 설교를 해야 할까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보통 성도들의 삶을 생각하면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해서 기적을 일으키거나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렇게 고행을 하고 선행을 많이 해서 사람들에게라도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기적 속에서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방향을 좀 수정을 해야 될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고행이나 선행을 하거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도 모든 일에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거룩한 사람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거룩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 그 이유입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선택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자녀라고 한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상속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권리를 가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라고 할 때 또 하나는 ‘부모님의 인격이나 성품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성품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이 세상 사라들과 다른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신분이라면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그들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그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엄청나게 다른 신분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종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은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죄인이지만 우리는 의인입니다.
그들의 속에는 사탄이 들어가 있어서 사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속에는 성령님께서 들어오셔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노의 대상이고 심판의 대상이고 형벌의 대상이고 멸망의 대상이지만 우리는 사랑을 받는 자들이고 칭찬과 상급을 받을 사람들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아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열매들을 맺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그 아름다운 성품을 닮아서 그 성품을 나타내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특별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동화되어서 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특별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아 뭔가 좀 다르다 좀 특별한 사람들이다 라고 느낄 수 있도록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표시도 없이 똑 같이 세상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특별한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2.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본문 말씀에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특별하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생각하고 아는 것만큼만 행동에 옮기면서 삽니다.
모르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따라 바르게 산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면서 왜 우리가 천주교에서 나와서 이렇게 따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옛날 귀신을 섬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귀신에게 기도했던 방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무당에게 앞날을 물어보고 굿을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종교개혁을 하기 이전의 타락한 교회처럼 오직 믿음으로가 아닌 고행과 선행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칼빈이나 루터 같은 사람들이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목숨을 걸고 개혁을 했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개혁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강조한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 살지 않고 복음이 아닌 엉뚱한 것을 진리라고 가르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단처럼 보일정도로 엉뚱한 것들이 복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바르게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줄을 알고 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그들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우리가 진리를 알지 못했을 때는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는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욕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의 그 욕심을 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천당에서 예수 축복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교회에서 쓰는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축복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복 받아라, 복 받고 살아라, 복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복 복 복 축복에 미친 사람들처럼 복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축복들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이 세상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도 이 세상의 욕심을 따르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부자가 되는 복만 받기를 원합니다. 무조건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복만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이 욕심에서 나온다고 말씀을 하셨는데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나친 욕심만 버리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데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따라 살다가 보니까 평생을 불행하게 삽니다.

물론 우리가 가져야 할 선한 욕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은 욕심, 진리를 더 바르게 알고 싶은 욕심,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선한 욕심들이 있습니다.
그런 선한 욕심들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한 욕심들을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만 행복하기 위해서 살았던 모든 나쁜 욕심들을 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버리면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오늘 본문 말씀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의 말입니다. 
깨끗한 하나님과 더러운 세상과의 구별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이 세상과는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와 너무나 다르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고 완전한 분이시고 한 점 흠도 없으신 깨끗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것은 세상의 것들과 구별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성도도 거룩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가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의 성품을 따라서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거룩한 사람으로 바뀌라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으로서 그 거룩함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라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복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미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거룩함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거룩한 자가 되라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1)바른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공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출세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세상 욕심을 이루기 위한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빼고는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바른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무리로 삼아주신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거룩한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쓰여진 작은 도구들까지도 거룩한 물건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도 거룩한 전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바쳐진 예물도 성물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 때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우리가 바른 예배 즉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행 중에 가장 악한 행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그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장 악한 행위는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예배일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릴 바엔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배의 참된 의미를 알고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실 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가장 중요한 성품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면서도 이기심 때문에 참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거룩한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4)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세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출세하는데 그 소망을 두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다가 소망을 두고 삽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욕심을 내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우리의 거룩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위대한 신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무리답게 거룩한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른 믿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