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11)
본문 : 벧전 1:18-19
제목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어떤 버스 운전기사가 있는데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마음씨도 착하고 얼굴도 잘 생겼고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알고 포근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만나면 참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에게 단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 사고를 자주 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버스운전기사로서는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계시는데 이분은 참 사람이 좋은 목사님이십니다.
유머도 있고 청렴결백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잘하고 희생과 헌신 사랑 어느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아주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에게 단점이 딱 하나가 있습니다.
설교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분은 좋은 사람일 뿐이지 좋은 목사는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은 주일도 잘 지키고 헌금도 많이 하고 충성도 봉사도 많이 하고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의 단점이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은 십자가의 복음 즉 그리스도의 대속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분은 교인이요 종교인일 뿐이지 거룩한 무리 성도는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친목도 도모할 수 있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정신 수양도 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핵심적임 목표는 그 중심에 자리를 바르게 잡고 있어야 합니다.
부스러기나 국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크게 두 가지로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 사람의 행위를 중심으로 하고 이 세상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사람의 행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믿음을 중심으로 하고 영원한 천국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사람의 행위가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다 믿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고 그것이 어우러져서 천국도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천국도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말들이 맞는 것도 같지만 그러나 알고 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을 받느냐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받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람의 행위가 구원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요 교만의 극치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과소평가하는 아주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상 때부터 잘못 저질러 온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즉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의미를 바로 알고 오직 그 보혈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따르는 것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너희가 알거니와”와 같은 표현이 나오면 주의를 기우려서 읽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에 대해 언급할 때나 표준이 되는 가르침을 언급할 때 이런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모든 성도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진리의 말씀임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진리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알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우리는 우리 조상들에게서 내려온 헛된 행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 가지고 있던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망령된 행실”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1)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은 우상숭배입니다.
이 망령된 행실 즉 헛된 행실은 주로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사용된 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요구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십계명도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이 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본토친척아버지의 집에서 불러내신 것도 그들 조상이 섬기던 우상숭배에서 격리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이주시키시면서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심지어 모든 짐승까지도 다 죽여 없애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을 아주 잔인한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멸절을 당한 가나안 원주민들 편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무자비하신 분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편에서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이방 신들을 완전히 제거시켜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무자비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가나안 땅 여기저기에 원주민들을 남겨두었습니다.
그 남겨두었던 사람들이 골리앗이 되고 드릴라가 되어서 그들을 괴롭혔고 나중에는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게 됨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던 것입니다.

2)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은 잘못된 제사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와 못지않게 악한 또 하나의 망령된 행실은 잘못된 제사를 드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 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제도를 주신 것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회개했을 때 용서를 받는 사실을 알게 함과 동시에 죄를 무서워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제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죄를 계속해서 지으면서 하나님께서 짐승이나 좋아하시는 분인 줄 알고 짐승만 잔뜩 잡아다가 바치고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쯤에는 이런 잘못된 제사에 대한 질책들이 아주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주 호되게 꾸짖는 장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을 대신 죽임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을 통해서 대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게 하는 것도 제사제도의 큰 목적이었지만 그런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3)오늘날의 망령된 행실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는 망령된 행실들도 그 중심은 옛날과 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보다도 훨씬 더 악하게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지만 그 악함 가운데 가장 악한 것은 우상숭배일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방신들을 섬깁니다.
온갖 잡신들을 섬기면서 바른 신을 섬기는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삽니다.
지기들도 나름대로 신을 섬기고 착하게 산다고 자부심을 가집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자기가 섬기는 신을 잡신으로 생각을 하겠습니까?
다 자기가 섬기는 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나면 그들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 앞에서 아주 나쁜 죄를 짓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차라리 신을 섬기지 않고 사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다 우상이라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는 이 세상을 이 세상의 가족들을 이 세상의 돈을 이 세상의 쾌락을 하나님 보다 더 좋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신칭의의 진리 즉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양목사는 선하게 사는 삶을 무시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이상한 목사라고 오해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절대오해입니다.
이신칭의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한 다리는 세상에 걸치고 한 다리는 교회에 걸치고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세상의 최고로 알고 하나님의 일에 온몸을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을 다 집중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신칭의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니까 믿음으로 구원만 받으려고 하지 그 진리를 바르게 알고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고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쓰다 남은 돈 좀 헌금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교회에 한두 번 오고 취미삼아 교회 일 좀 하고 그런 것 가지고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섬긴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런 마음으로 평생 교회에 다녀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를 다녀도 1년을 믿어도 아주 전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한번 믿어보십시오
아주 열정적으로 한번 하나님을 섬겨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우리가 범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잘못된 옛날 조상들처럼 잘못된 제사 즉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예배드리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자세로 그렇게 성의 없게 앉아서 구경이나 하듯이 예배에 참석을 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정성을 다하여서 온 맘을 다하여서 아주 진정으로 진지하게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감히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날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보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혈의 의미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과거나 현재나 모든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이런 죄인들이 자기 스스로 의로운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죄를 짓는 결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고
바울 같은 사람도 자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요 하고 싶은 선을 행하기보다 하기 싫은 악을 행하고 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아라고 고백을 했는데도 아직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대속
오늘 본문 말씀에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1)대속(구속)이 필요합니다. 
대속이란 노예나 죄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대신 지불한 값을 말합니다.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소 임자는 당연히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정해진 속전을 냄으로써 죽임을 면하는 규례가 있었습니다(출 21:30). 
노예를 자유케 하기 위해 지불하는 값 역시 대속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레 19:20). 

죄 지은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빠진 이 죄악의 구덩이는 너무나 깊고 어둡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을 하면 된다든가,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다든가, 최선을 다하면 나아지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전적으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너무나 악하고 추하기 때문에 너무나 철저하게 파손이 되었기 때문에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과학이 좀 발달을 하고 사는 것이 좀 나아지고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하면서 살기 시작을 하면서 많이 건방져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잘 사니까 이 세상에서 영원히 그렇게 잘 살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연약한 사람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2)대속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 값은 은이나 금 같은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은이나 금은 이 세상의 가장 귀한 것 가장 값진 것을 상징합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학벌이나 재능이나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도 우리의 죄 값을 치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재벌이 되어서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봉사를 한다고 해도 죄의 값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해서 아주 높은 지위에 오르고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이 구원의 문제만큼은 그것으로 해결을 할 수가 없습니다.

3)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대속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잡아 죽여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대속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 때문에 그 짐승처럼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임을 깨닫지 못했고 제물이 흠 없고 점 없는 깨끗한 것을 골라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말라기 1: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런 타락한 이생을 향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제물입니다.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으시고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으신 깨끗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만이 우리를 구속할 수 있는 거룩한 보혈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거룩한 보혈을 두고 행여나 은이나 금 같은 없어질 것들이 나를 구원해 준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거룩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보혈을 두고 행여 나 스스로의 선행으로 죄의 값을 치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조상들처럼 망령되고 헛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이런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대속이 필요합니다.
그 대속은 은이나 금 같은 없어질 것들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값을 치러주신 대속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바르게 알고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