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1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32)
본문 : 롬 12:6-8
제목 : 다양한 은사들.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마(καρισμ)라고 하는데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은사란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특별히 받은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받은 은사대로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다양햔 은사들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언
예언이라는 말의 뜻은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내일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가 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미리 아는 것에 대하여 큰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주팔자를 본다 토정비결을 본다 쪽집게 도사에게 장래의 일을 알아본다 신문마다 오늘의 운세란이 있고 주택가에는 절이라는 표시를 하고 장래의 운세를 봐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입시 철이 되면 어느 대학에 지원을 하면 합격할까를 봐준다고 합니다. 결혼시즌이 되면 궁합이라는 것을 봐주고 부부가 장래에 잘 살수 있는가를 미리 봐준다고 합니다. 인생들이 얼마나 장래의 일을 미리 알고 싶어하는가 하는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기독교 내에도 이런 무당이나 점쟁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장래의 일을 점쳐 주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예언의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미리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 또 사람들에게 일어날 어떤 특별한 일에 대해서 미리 말씀을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은 성경말씀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그 구속사와 관계가 있는 특별한 일에 사용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도 우리가 사는 보편적인 일에 대해서는 내일의 일을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전9: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그래서 오늘날 전통적인 신학자들에 의하면 "예언은 주로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관이었고 계시의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 바로 그것이었다(출 4:12;7:1, 2;렘 23:16, 18, 22, 28). 한편 성경의 기록이 끝난 시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에게서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성된 이후에는 새로운 계시를 위한 예언자도 필요없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이 예언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그 기록된 범위 내에서 알려 주는 것을 예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닌 인간의 사사로운 장래의 일이 아닌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가 가는 궁극적인 미래를 말씀하는 것이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도 그러한 뜻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라고 했습니다.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예언을 하되 자기가 받은 실력대로 해야 한다는 말로 잘못 이해를 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수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 텐 아날로기안'인데 '아날로기아'는 수학 용어로 '바른 관계' 혹은 '조화,비례'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아날로기안'은 '적당하게', '...에 비례하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 의하면 '믿음의 분수대로'는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대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해놓은 규범에 따라 예언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교회가 정해놓은 규범이라는 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기록된 말씀의 범위 내에서 예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이란 나에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누구와 결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대학을 지원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려 주는 것이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 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로 우리의 자유 의지로 판단하며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인격을 가지고 우리의 길을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타락하여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이르게 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이 세사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그 길은 외길이 아니라 여러 길이 있어서 때로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삶을 살다가도 다시 돌아서 가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에언 몇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반드시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 진리의 길에서 떠나 보십시오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범죄하십시오 반드시 형벌을 받습니다.
선한일 많이 하십시오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우리 인간은 꼭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든지 한번은 죽고 죽은 후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 심판대 앞에서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 세상은 최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보다도 더 확실하고 더 중요한 예언은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니까 엉뚱한데 관심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시시한 이 세상의 일에 그렇게 목을 매고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구제활동과 사랑하면서 사는 것과 선한 일을 많이 하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천국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그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있을지도 모르는 내세에 대해서 너무 관심을 갖지 말고 눈에 보이는 지금 이 세상에서 서로 잘 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확실히 있다고 믿는다면 불쌍한 것은 그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거지처럼 살아도 천국에 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너무나도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 완전한 나라, 우리 주님이 함께 계시는 행복한 나라, 그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의 소망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 이것이 최고의 예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섬기는 일
섬기는 일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섬기다, 봉사하다 라는 뜻이고 이 말에서 하인, 일꾼, 사역자, 수종 드는 자 등의 말이 나왔습니다. 특별히 이 말에서 집사(디큰,deacon)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집사의 직분과 관련해서 이 섬기는 은사를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가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원래 집사의 직분은 구제에 관한 일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 내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돌봐 줌에 있어서 여러 가지 말이 많기 때문에 공정한 나눔을 위해서 집사를 뽑아 그 일에 봉사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각각 다른 은사들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각각 자기가 받은 것만 가지고 개성있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로에게 나누어주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남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다면 나에게 그 무엇이 더 있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며칠 전에 목사님들과 모임이 있어서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모였기 대문에 상을 서너 상 따로 받았는데 한 것에 반찬이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저쪽 상에는 그 반찬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이 은사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으니까 얼른 이런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목사님 나에게 뭔가 하나가 더 있으면 아 다른 사람에게 이것이 없겠구나 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를 더 가지니까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지지 못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다 먹고 살 수 있도록 공평하게 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욕심을 내어서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대편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이 이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많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섬김의 은사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섬김이라는 말은 단순히 나누어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는 이 섬김이라는 말속에도 "모시어 받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섬기는 자이면 섬기는 일로 라고 했는데 섬기는 일로 라는 말에는 그 섬김을 충성스럽게 이행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먹을 것 좀 던져 주는 것이 섬김이 아닙니다. 남는 것 좀 나누어주는 것이 섬김이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받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면서 지극하게 대접을 하는 것이 섬김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토요일마다 국수를 대접해 드리는데 대접을 해 드리면서 성의 없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강조합니다. 국수지만 최고 좋은 칼국수로 재료도 가장 좋은 것을 쓰고 오시면 아주 정성껏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없어서 못 먹어서 오는 거지 대하는 것처럼 하면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또 섬김이라는 말은 남는 것을 나누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는 오히려 희생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사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20:28)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버려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 하시려는 것 그것이 섬김의 모범이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사는 삶입니다. 이런 섬김의 은사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가르치는 자
본문 7절 말씀에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말씀하기를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삼분의 일은 이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 여러 분야에서 남을 가르치는 일이 교회 안에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르침의 주제는 물론 성경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진리의 말씀들과 삶의 지혜의 말씀들을 우리가 먼저 배우고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침의 한계가 꼭 성경으로 국한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배운 경험들 지혜들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이 세상의 문화도 바르게 해석을 하고 바른 문화활동을 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의 지식들도 우리가 바로 배워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학교의 교육은 이 사회의 교육은 기독교의 정신 위에 있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와 반대되는 지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기독교의 정신 위에 성경의 정신 위에 바로 세워서 옳 바른 지식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명목상의 미션스쿨이 아닌 정말로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 중심의 바른 토대 위에서 일반 학문도 가르치는 그런 학교들이 많이 생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은사 중에서 예언과 섬김 그리고 가르치는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바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는 그런 보람있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