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2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20)
본문 : 마 5:43-45
제목 : 원수를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만약에 우리 기독교가 도덕적인 삶을 위한 종교라면 오늘 말씀이 성경에서 최고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교훈이라고 한다면 또 본문 말씀대로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말씀에 우리에게 최고의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세상인데 어떻게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핍박을 하는 사람까지 사랑을 하면서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이렇게 도덕적인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최종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이런 도덕적인 삶을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원수까지 사랑할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원수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른 노력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성품을 닮아갈 때 우리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1.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43절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했습니다.

사실 성경에 원수를 미워하라고 직접적으로 가르친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인용되었다고 생각되는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지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말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들에게는 미워하고 대적해야 할 원수 즉 이방인이 뚜렷하게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선민의식이 뚜렷했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방인들이 미워해야할 원수이고 그들을 대적하면서 사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그런 적대관계에 있는 이방 원수들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원수는 누구일까요?
성경에서 원수라고 하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대강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 가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대적을 하거나, 거기에 대해 항상 고통스럽고 곤란스러운 일을, 말로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을 통괄해서 원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잘 살고 있는데 우리 앞에 나타나서 방해를 하고 시비를 하고 돈 내놓으라고 하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을 원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우리가 사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뭘 잘못하면 어디선가에서 나타나서 고발을 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공갈을 칩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나누자고 협박을 합니다.
이런 원수가 있으면 사는 것이 참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렇게 괴롭히는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원수가 있을 때 우리 인생은 참 피곤한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 원수를 갚으려고 애를 쓰게 될 것이고 그 원수는 또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정말로 악하고 힘든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원수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원수 사랑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적들이 많이 생깁니다.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내고 자기의 뜻을 이루어나가려고 하면 주변에 적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더러는 양보도 할 줄 알고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서로 잘 되게 해 주려고 하면 원수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뜻이 항상 옳은 줄 아는 교만한 사람에게도 적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다 옳지 않다는 것도 알고 나보다 더 잘 알고 잘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 비교적 나를 대적하는 자가 적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대적 자는 적어질 것입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들을 잘 되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원수가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 잘한다고 해서 원수가 생기지 않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원수는 우리가 하는 일과 관계가 없이 나타나서 괴롭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노력으로서 스스로 원수를 만들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원수가 될 만한 일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도 평생 원수로 지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없도록 늘 자신을 살피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원수를 만들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은 상대방이 나의 삶을 방해할 때 원수로 여기지 않고 피해나가는 방법입니다.
나의 앞길을 막으면 왜 내 앞길을 막느냐고 시비하지 말고 돌아서 가는 길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사사건건 시비에 따져서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 보다는 양보하고 이해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고 넘어가다가 보면 마땅히 원수가 될 일도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늘 조심을 해야 합니다.
속고 나서 원통하고 분하다 이 원수를 꼭 찾아서 갚고 말겠다고 하지 말고 속지 않도록 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별별 사기수법들이 많습니다.
맹물에다가 소금 좀 넣어서 만병통치약으로 파는 현대판 봉이 김 선달도 있고. 돈 빌려 줄 테니까 스마트폰 보내라고 해서 보냈더니 돈은 안 보내고 거기 있는 정보들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고.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작은 선물 하나 주고 나중에 더 큰 선물 준다고 해서 주민등록번호 적어가서 그것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나온 신종 사기수법 하나 알려드릴게요.
은행에 현금 인출기 앞에 가면 지갑하나가 버려져 있답니다.
그 때 혹시 거기 뭐가 들었나 싶어서 가지고 나가거나 아니면 착한 마음으로 주인을 찾아줘야지 하고 우체통에 넣거나 경찰서에 가지고 가지 말랍니다.

사기꾼이 거기에 만 원짜리 하나 넣어놓고는 몇 백만 원 들었었다고 우긴다고 합니다.
어떤 착한 아주머니가 잘 모르고 지갑 주어서 우체통에 넣었다가 400만원 들었다고 해서 400만원을 물어줬답니다.
고급스러운 지갑이 떨어져 있으면 주인이 와서 가져가겠지 하고 그 자리에 두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앞에 원수가 생기면 무척이나 괴롭습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원수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을 하고 신경을 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혹 원수가 될 만한 일이 우리 앞에 닥쳐와도 돌아가고 피해감으로 원수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2.악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44절 말씀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원수가 저지른 그 악한 행동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박해를 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밉지만 죄를 짓는 그 인간은 불쌍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원수가 되어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그 원수도 사실은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할 때에는 한 인간으로서 그 존재를 사랑하라는 말이지 그가 가진 그의 죄악 된 사상이나 행위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된 행동은 악한 행동은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잘못된 사상에 동조하고 그 죄 자체를 옹호해서는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어야 하는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의 눈길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위해서 기도할 때 먼저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 그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된 행동이 죄악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떠나서 혼자 사는 인생들이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서 무엇이 착한 일인지 무엇이 악한 일인지를 잘 모르고 세상 나쁜 친구들이 하는 짓을 따라하면서 살다가 나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원칙들을 알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악한 길로 빠지고 멸망의 길로 빠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 나쁜 사람이 되었느냐고 비웃지 말고,
왜 그렇게 악하게 사느냐고 욕하지 말고,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바른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우리에게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되고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하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악한 원수가 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들이 평생 원수가 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서로를 사랑하고 돕고 살아야 할 부부가 평생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나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 책임은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지 않으면 자식이 원수가 되고 맙니다.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자녀들이 신앙생활 잘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돈이고 출세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원수가 되지 말고 사랑하는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줄 아는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적극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제일 큰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악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벌을 받고 선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악을 행하지 않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바라보면 출세한 사람, 돈 많은 사람, 잘 나가는 사람들 중에 악한 사람들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은 늘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불쌍하게 사는데 악한 사람들은 반대로 더 잘 사는 것이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는 바르게 착하게 신앙생활도 잘 하면서 사는데 이렇게 고생만 하고 살고 아무개는 교회도 잘 안 나오고 온갖 나쁜 짓은 혼자 다하는데 저렇게 잘 살고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에게 다 벌을 주고 남을 힘들게 하고 앞을 가로막는 원수 같은 인간들을 다 벌을 내려버리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도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같이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태양도 착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만 비추고 비도 말 잘 듣고 순종 잘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만 내리고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다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한번 그런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0장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 흑암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애굽 땅에는 사흘 동안 빛이 비치지 않게 하여서 깜깜하게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곳에만 태양이 비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애굽의 바로가 완전하게 항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복을 하는 척 하다가 다시 마음이 완악해져서 악을 행합니다.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도 뉘우치지 않고 바른 사람이 되지 않고 더 악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다 아시니까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그대로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악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 벼락이나 맞아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를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럴 때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는 알아서 적당한 시기에 그 사람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볼 때 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 같은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악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저주하면 내가 더 큰 저주를 받아야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 벌인지 무엇이 복인지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잘 먹고 잘산다고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벼락을 맞을 짓을 했는데도 벼락을 맞지 않고 건재하다고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그런 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만 징계를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못 사는 것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난도 복이고 고난도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렵게 사는 것이 복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붙잡고 있는 생명줄입니다.
그것이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너무나 고귀한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고 선한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시기와 방법을 우리가 잘 모를 뿐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공의의 하나님께 원수 갚는 것을 맡기는 일이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수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회개케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일은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