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35)

본문 : 마 6:12

제목 :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들이 용서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미래에 지을 모든 죄까지도 이미 다 용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배울 때도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하면서 믿음이 좋다 나쁘다. 라고 하면서 마치 우리 편에서 잘 믿어야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혼동이 올 때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래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 은혜로 선물로 거저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가진 믿음은 동일합니다.

능력에 있어서 작용하는 역사에 있어서 동일한 믿음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 칭의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이 믿음생활을 하는 것을 또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 약하다고 하는 것은 이 믿음생활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믿음을 받았지만 그 믿음 따라 잘 사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같은 믿음을 받았지만 그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이 믿음생활을 성화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죄를 용서 받는데 있어서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용서를 받는 죄는 근본적인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최고의 법정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그 죄의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용서를 받아야만 하는 근본적인 죄의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는 믿음처럼 이 용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로 용서를 해 주시는 법적인 용서 근본적인 용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한 하나님께 이미 모든 죄를 다 용서를 받고 더 이상 죄에 대해서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를 받았어도 타락한 우리의 습성에는 죄로 오염이 되어 있어서 날마다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받은 자들이 믿음생활을 하는 것처럼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도 늘 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어쩔 수 없이 짖는 죄들에 대해서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는 근본적인 죄 사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근본적인 죄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죄 사함의 기도는 근본적인 죄 사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짓는 죄들에 대해서 사죄함을 받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런 죄들은 용서를 받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을 취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거역하거나 모독하는 죄 즉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죄만 다시 짓지 않으면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성화 즉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거룩한 삶을 사는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데 이 죄의 용서가 없으면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흉악한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대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죄를 지으면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죄에 노예가 되어서 방탕한 삶을 살거나 불행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시 죄를 돌아보면서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우리의 지은 죄들을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를 받고 다시는 그런 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기도문에서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그 기도문에 함께 붙어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면서 조건이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우리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할 때 사람들은 얼른 “아 이것이 죄 용서의 조건이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주기도문이 끝난 바로 다음절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14,15절)

 

 

우리가 용서를 받은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때로는 앞의 말씀처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서로 용서 하여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하십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용서를 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씀이고 또 우리가 서로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도 용서하신다는 말씀도 맞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때 이 의미는 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특별한 의미는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를 비교해 볼 때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우리의 용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는 용서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의 죄를 사하여 주는 것 즉 서로의 빚을 탕감하여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우리는 서로 같은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은 다 같은 죄를 늘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깨끗하니까 당신도 깨끗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용서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는 더 추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덜 추한 남을 흉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남에게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복수할 힘이 없어서 그냥 용서하는 것이 속편하니까 억지로 용서를 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원수를 갚고 싶은데 그럴 권력이 없습니다.

용서해주지 않고 한번 해 보자고 덤비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억울하지만 아니꼽고 치사하지만 눈 감고 넘어가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용서는 한다만 두고 보자 내게 힘이 생기면 너는 나에게 한번 무릎 꿇고 빌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용서 아닌 용서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죄인가를 확실히 몰라서 혹시 잘못 판단하여 의로운 사람을 죄인이라고 오판할까봐 정죄하지 못하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법관이 되어서 재판을 해도 억울한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경우들이 흔히 있는 것을 봅니다.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다가 알곡을 뽑을까봐 그냥 두고 용서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용서는 어쩔 수 없이 용서를 해야 되니까 용서하지 않고 징벌할 힘이 없으니까 그냥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용서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빚진 일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부채를 탕감해줄 의무나 이유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죄를 지으시거나 실수를 하시는 일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말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죄라는 것은 조금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남을 용서하실 이유가 조금도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를 엄벌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미 죄지은 자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죄를 지은 자들을 처벌하시는 일은 조금도 문제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구석구석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고 무엇이 죄인 줄을 확실히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잘못 판단할 것이 두려워서 정죄를 못하실 이유가 없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냥 정죄해서 벌을 내리신다고 해도 우리가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시지만 용서할 수밖에 없는 우리처럼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가 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었으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용서를 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비는 기도입니다.

 

 

2. 용서의 어려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용서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도 어려운 것이고 죄를 사하여 주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어렵게 용서를 하는 모습을 보시고 어렵지만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이 쉬워서 용서이지 남을 용서한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말이 쉬워서 부채를 탕감해 주는 것이지 부채를 탕감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용서는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 어렵습니다.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릴 권리가 있는데 그것을 참고 포기한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힘들게 번 돈인데 빌려주고 못 받고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게 어떤 돈인데 나도 안 먹고 안 쓰고 아낀 돈인데 남이 가져가서 써버리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돈이 많으면 꼭 빌려다가 쓰려고 합니다.

돈 있으면서 안 빌려준다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돈 있는 사람이 그 돈이 거저 생긴 것이 아닙니다.

부자들을 살펴보니까 물론 어쩌다가 재수가 좋아서 돈을 모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먹고 안 쓰고 아껴서 모은 사람들입니다.

있는 대로 쓰는 사람은 돈이 모아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남들 놀 때 놀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남들처럼 호화롭게 살지 않고 어렵게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이런 말 저런 말로 유혹을 해서 금방 줄 것처럼 가지고 가서 갚지 않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가서 퍼붓고 창피를 당하게 해도 성이 안 풀릴 텐데 탕감을 해주다니요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서 빚을 많이 졌습니다.

갚기도 많이 갚았지만 탕감도 많이 받았습니다.

저에게 돈을 빌려주고 탕감을 해 준 그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기도하고 있습니다.

탕감해 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잘 해준 일은 금방 잊어버려도 나에게 잘 못한 일들은 절대 잊히지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생각이 나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또 생각이 나고 용서를 한다고 해도 또 괘씸한 마음이 들고 그래서 병이 나는 것입니다.

 

 

세상을 잘 못 산 사람들은 탕감을 해 주려고 해도 탕감을 해 줄 것이 없습니다.

남에게 탕감 받을 일만 있고 탕감을 해 줄 것이 없는 삶을 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어느 날 저 자신을 보니까 남에게 탕감을 받을 일만 많고 탕감을 해주고 싶어도 탕감해 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좋은 일을 해서 보답을 받기보다는 탕감해 줄 일을 만들어 보려고 좋은 일을 자꾸 하려고 노력합니다.

 

 

3. 용서의 축복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계명들을 주신 것은 우리를 억압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참된 자유의 길로 행복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면서 살 때 하나님께 뭐 득이 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벌하시기 전에 우리가 복수를 하는 것도 나쁠 게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복수를 금하고 용서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지 않는 것은 독소와 같은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증오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용서를 하지 않으면 삶을 바라보는 전체의 시각을 왜곡시킵니다. 판단을 흐리게 해서 엉뚱한 길로 가게 합니다.

용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차게 되고 자신의 육신을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반면에 용서는 해독제와 같습니다.

증오심 교만 온갖 나쁜 것들을 제거하는 해독제입니다.

용서는 기쁨이 넘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옵니다.

용서는 기독교의 특성 중 가장 수준 높은 특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존 맥아더 목사는 용서의 축복을 이렇게 몇 가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1) 용서는 자존심을 이긴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 일에는 도저히 용서를 하지 못합니다.

그 자존심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비참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용서는 이 자존심을 이기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서 하나님께 복 받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2) 용서는 기쁨을 회복시킨다.

죄는 우리 마음에 기쁨 말살합니다.

죄를 짓고 나면 기쁨이 사라지고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품고 있어도 기쁨이 사라집니다.

마음에 기쁨이 없다는 증거는 아직 증오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할 때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용서는 사랑을 확증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가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진정으로 용서를 하는가 하지 못하는가에 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용서가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용서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4) 용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입증한다.

하나님께서 용서를 명하셨습니다.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할 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됩니다.

용서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5) 용서는 교제를 회복시킨다.

용서는 용서 받은 사람과 교제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할 때 하나님과의 더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6) 용서는 사탄의 궤계를 파한다.

사탄은 서로 용서하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과의 평화를 파괴하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용서를 하는 것은 이런 사탄의 계략을 파괴하는 일이 됩니다.

용서를 할 때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사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도 죄 사함을 받고 죄 용서에 따르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고 탕감해 줌으로서 참된 평화와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