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2.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종합03)

본문 : 마 5:17

제목 : 완전한 율법.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아이들이 영어공부를 하다가 선생님 도대체 영어는 누가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공부를 하기 싫은 아이들이 자주 생각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오락도 하고 밖에서 놀기도 하고 재미있게 살게 놔두지 누가 왜 이런 공부라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매일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가, 늘 불만일 것입니다.

 

 

우리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영어는 누가 만들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그리고 독일어가 섞이고 프랑스어가 섞여서 영국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온 것이 영어라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언어가 하나였는데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고 단체로 하나님께 도전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벌로 내리신 것이 언어의 혼잡입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함으로 만들어 진 것이 각국의 방언들이니까 영어를 만들어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원인은 인간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만들어서 우리 인간을 괴롭히시는 것일까 그냥 자유롭게 살도록 놔두시면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을 것인데 이것은 하지 마라 저것은 하라 이런 율법들을 만들어서 인간을 괴롭힌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우리 인간을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구분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형편이 없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귀하신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48절까지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대인들이 잘 못 생각해 온 율법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시고 율법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기록된 계명들을 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율법을 주신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고 억지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살인이나 간음이나 맹세나 이웃사랑에 관한 참된 원리들을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로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율법에 대한 편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율법 폐기론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상들 가운데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바른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율법에 관한 완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을 만만하게 보고 율법을 잘 지킴으로 구원을 받고 상급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서도 안 될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알고 율법을 온전하게 대하는 것이 율법을 재해석하시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니스트 케빈이라는 분이 청교도들의 신앙생활을 연구하고 쓴 “율법 그 황홀한 은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는 큰 죄이지만 구원받은 백성이 율법 따라 사는 것은 큰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개혁주의 교회에 속해있으면서 더 적극적으로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을 공부하면서 배운 “이신칭의”의 진리를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성경 유일한 구원의 가르침으로 알고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본의 아니게 구약의 율법을 경시하고 그 율법을 지킴으로 얻게 되는 또 다른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율법도 알고 보면 참 선한 것이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율법을 통해서 참된 인간의 도리를 발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율법이나 선지자’ 라고 하신 것은 구약성경을 일컬어 하시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모세오경을 가리키기도 하고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선지자’는 구약성경의 선지서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율법이나 선지자’라고 할 때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완전케 하다'라는 단어는 원래 '가득 채우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면서 ‘완성하다’ ‘성취하다.’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완전하게 채우시기 위해서 또 그 예언들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성취하신 부분도 있고 완전하게 하신 부분도 있습니다.

성취하신 부분은 제사와 절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약제사의 모든 부분은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절기들도 그 정신은 살아 있지만 구약시대의 백성들처럼 절기를 지키지는 않습니다.

절기들이 예표 하는 그 예수님께서 이미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 중에서 지금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율법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인간이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나님께서 규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율법에서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는 영적인 것 즉, 우리가 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이 세상에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우리 인간들에게 도덕적으로 필요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16-17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도덕적으로 참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나쁜 일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 바르게 살아 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말해서는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어떤 일이 착하고 바른 일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나쁜 짓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없고 잘못했다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욕을 하고 싸우고 남을 괴롭히고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휴지를 아무데나 버리고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는데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나무라면 왜 꾸중을 하냐고 오히려 반항을 합니다.

 

어른들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가 여자처럼 살려고 해도 그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을 해도 그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그것을 죄라고 하는 도덕의 기준이 없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기준을 세우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 기준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참된 도덕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성경말씀을 통해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율법을 통해서 축복의 통로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여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여러 가지 삶의 원리들을 말씀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비결은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들을 사람들을 옭아매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며 살라고 하면 굉장히 싫어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이고 선생님이고 목사님이고 하나님도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참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 같지만 사실은 죄의 종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이며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복을 위한 기복주의적인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거나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그 순종에 대한 보상의 약속에 의해서 복을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보람된 삶을 살고 싶으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바른 삶을 살 때 그 상으로 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세상적인 복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도 율법을 지킴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대로 가난한 사람이 되고 애통하는 자가 되고 온유한 자가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보시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참된 축복을 주시기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습니다.

로마서 7: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탐이 있는 사람도 있고 물질적인 면에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명예에 욕심이 있는 사람 쾌락에 욕심이 있는 사람 모두가 욕심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것이 죄라고 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마다 다 욕심이 있는 것이고 또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뭐가 죄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아니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지 않으니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율법을 지키고도 자신은 율법을 잘 지키는 의로운 사람일고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참된 의미를 설명해 주심으로 그들이 율법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꼭 사람을 죽여야만 죄가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에게 욕을 하거나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도 살인죄와 같은 죄라고 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는 사랑하라는 명령까지 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산상보훈 강해설교를 통해서 자세히 배우신대로 율법은 어떤 사람이라도 다 순종할 수 없는 너무나 차원이 높은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대로 사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삶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 앞에서 나는 부족한 인간이구나, 나는 죄인이구나, 나에게는 구속자가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좀 착하게 산다는 자부심 때문에 교만하여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차라리 악하게 살다가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대로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부족함을 깨닫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4.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발견합니다.

갈라디아서 3:2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 초등교사라는 말은 옛날 성경에서 몽학선생이라고 했던 단어입니다.

몽학선생은 학생을 진짜 선생님에게 인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믿음을 가지게 하고 그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몽학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3:21-2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인임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고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결국 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율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지만 율법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 인생에게 삶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는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