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12)

본문 : 골 2:1-3

제목 : 내가 얼마나 힘쓰는지를 알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골로새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그리고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으로 알려져 있는 서신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죄수로 지내던 때에 쓴 서신입니다.

 

만약에 우리 같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면 좋지 않은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하다가 벌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도 별별 변명을 다하며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별별 생각을 다했을 것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대접을 받는가?

이렇게 귀한 진리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들이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처음 주님을 만난 일에서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이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내가 왕년에 엄청난 일을 한 사람입니다.

내가 한참 때는 내가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지고도 온갖 병들을 다 낫게 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던 사람입니다.

내가 빌립보에 있는 감옥에 갇혔을 때는 기도하고 찬송만 불러도 감옥 문이 열려버렸습니다.

내가 정말 왕년에 대단한 사람이었고 이런데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찾아봐도 바울은 그런 원망을 하거나 불평을 하거나 딴 생각을 한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왕년에 한 일에 대해서 자랑을 하거나 교만한 말을 한 일이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받은 지위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받은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까 이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한 삶을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할까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든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든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든지 심지어 해를 끼치는 사람이든지 상관이 없이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더 깊이 알고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그런 바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보면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너희’는 이 서신을 직접 받는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라는 곳은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약 18km쯤 떨어져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골로새교회나 라오디게아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다 같이 바울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게 복음을 받은 에바브라에게 복음을 받아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즉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들 바울과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신이 직접 복음을 전하여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과 똑같은 수고로 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힘쓴다는 말은 그냥 힘을 좀 쓴다는 말이 아닙니다.

투쟁을 하고 전투를 하는 자세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목숨을 걸고 죽을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2-3절 말씀에는 이렇게 바울이 자신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는 이유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자신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평안이나 자신의 이익을 다 포기하고 이렇게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애를 쓰고 있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교회도 어떤 면에서는 복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안위나 부귀영화에 매달리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가는 것 때문에 이 세상에서 누릴 행복들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풍성함을 받아 누림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마음의 위안을 받고

본문 2절 말씀에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의 위안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사나 죽으나 애를 쓰는 까닭은 그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위안이라는 말은 위로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을 위안 혹은 위로라고 합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위안이란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이해하는 주석가들은 이 말을 위안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찾아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골로새서교인들이 어떤 고통이나 핍박을 당해서 위로를 받을만한 처지에 있다는 암시가 없기 때문에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위안을 “강화시켜주다”라는 뜻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연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강화시켜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복음을 대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뜨겁고 감사가 넘치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죄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 신앙고백으로 그 믿음으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새사람이 되었고 영원한 생명이 되었고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엄청난 복이라는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골로새교회에 이런 복음의 진리를 부인하는 거짓선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 출신의 교인들은 믿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할례도 받아야 하고 율법도 지켜야 하고 선한 일도 많이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자기들의 경험을 살려 가르칩니다.

 

또 다른 신을 믿다가 개종한 이방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의 경험을 살려서 신비한 경험을 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오랜 경험들이 생소하게 처음 들은 복음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순한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기가 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 한분만이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끝까지 변함없이 따르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는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천국가기 위해서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도 거짓선생들이 들어와서 복음이 아닌 다른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변질이 되기 시작을 했습니다.

 

믿음이 아닌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영원한 천국보다 이 세상이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놓은 자리에 앉아서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가르침 때문에 복음을 버리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재무장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에게 이 복음으로 위로를 해야 합니다.

그 위로함으로 우리의 마음이 강해져야 합니다.

강한 마음을 가지고 변함없이 진리 가운데 바른 복음을 따라 살게 하는 것이 참된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2. 모든 풍성함에 이르고

본문 2절 말씀에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와 모든 풍성함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위하여 그렇게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것은 성도들이 위안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더 깊이 말하면 마음을 강하게 하여 변함없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풍성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풍성하다는 말은 충분하다는 말이고, 넘친다는 말이고, 부족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복음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진리들을 다 알게 된다면 아무리 거짓선생들이 별의별 말을 다 동원하여 유혹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복음의 진리를 완전히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조금만 복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해도 마음이 흔들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도들이게 원하는 것은 풍성함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더욱 알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풍성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연합을 해야 하는 것과 확실한 이해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연합하다’는 말은 ‘함께 결합하다’라는 뜻입니다.

‘함께 결합하다’에서 ‘숙고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숙고하다’는 말은 곰곰이 잘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확대해석을 하면 ‘가르치다’는 뜻도 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잘 가르쳐서 곰곰이 잘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연합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로 서로 연합이 되고 한 마음이 된다는 뜻보다는 서로 진리를 가르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의 확실성을 알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으로 연합이 되면 즉 사랑으로 함께 깊이 생각을 해보고 진리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보면 우리가 받은 복음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되고 그 풍성함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이나 거짓 선생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척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척은 하지만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결국은 거짓 사랑으로 거짓복음을 전함으로 자기들의 욕심만 채우게 됩니다.

우리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단들이나 거짓선생들을 보십시오.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사람을 유혹해서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파탄시키고 형제들 간에 사랑도 끊어버리게 하고 재산 팔고 인생을 다 망치게 해서 자기들의 이익만 채우는 것이 이단이요 거짓선생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자녀가 누릴 수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림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곰곰이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진 것을 착취하시거나 여러분을 골탕 먹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렇게 불러 모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사랑의 마음으로 복음을 확실하게 이해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부요한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통해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요한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난하다고요 아닙니다. 제일 부요한 사람입니다.

내가 못났다고요 아닙니다. 제일 잘난 사람입니다.

내가 무식하다고요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진리를 알고 있는 제일 유식한 사람입니다.

내가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라고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제일 필요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지만 자신 있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당하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못나서가 아니고 없어서가 아닙니다.

너무 풍성한 복음을 그가 가졌고 그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제일 부자요 제일 풍성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울이 가졌던 그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함이라

오늘 본문 2절 하반절과 3절 말씀에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골로새서는 당시에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이단들의 가르침에 대항해서 바른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들어온 이단은 혼합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이단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에다가 당시의 종교들을 혼합시켜서 이상한 종교가 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복음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런 사상 저런 사상을 혼합해버리니까 아주 이상한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원의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골로새서를 기록하였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에는 특별히 ‘비밀’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을 합니다.

아마도 당시의 이단들이 자신들만이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알고 있다.

구원을 받으려면 이 비밀 교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들만이 특별한 계시를 받아서 알고 있다.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

이런 비밀의 교리를 알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비밀은 그런 비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렇게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를 하고 파헤쳐서 깨달아야 하는 그런 비밀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비밀은 신비한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바로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연구를 하고 도를 닦고 고행을 하고 노력을 해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비밀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비밀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는 것이 비밀입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 알고 믿고 따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듣고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아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의 생각 속에는 그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끝까지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애를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위안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마음이 강하게 만들어서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이해를 해서 우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부요한 사람들인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알게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뜻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