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4.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21)

본문 : 골 3:15

제목 :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러분의 마음은 누가 혹은 무엇이 주장을 합니까?

어떤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주장대로 삽니다.

자기가 생각해서 옳다고 생각 되는대로 행동하면서 삽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여러 가지로 교육이나 훈련이 잘 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생각 없이 그냥 따라다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별로 아는 것도 없이 별로 많은 경험을 하지도 못했으면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데 이런 사람은 고집쟁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습관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오락이나 술이나 도박이나 게임 같은 좋지 않은 것에 중독이 되어서 그런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번 잘못들인 버릇 때문에 평생 도박이나 술이나 게임 같은 것들의 종이 되어서 사는 불쌍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취미생활 조금 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됩니다.

무엇이든지 너무 깊게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사탄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사탄이 그 마음에 있습니다.

죄악 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다 사탄의 역사이기 때문에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사탄이 들어와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은 아주 강하게 사탄이 역사를 해서 귀신들린 사람처럼 행동을 합니다.

무당들처럼 신 내림을 받아서 신들린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신 내림을 받지 않았으나 귀신이 강하게 역사하는 사람도 있고 귀신이 시키는 대로 많은 죄를 지으면서 악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귀신이 주장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타락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억제하시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다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 성도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께서 주장하시게 해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라

오늘 본문 말씀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라”라고 했습니다.

 

주장하도록 하라는 말은 운동경기를 할 때 심판이 그 경기를 주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심판이 없이 운동경기를 하면 각자가 자기 마음대로 판단을 하면 서로 싸움이 나고 끝까지 경기를 할 수 없고 누가 이겼는지 누가 졌는지 승패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혼란스럽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분쟁이 있을 때 그것을 정리하는 심판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심판관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심판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심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강이 어떤 일들의 잘잘못을 구별해주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가까우면 좋은 일이고 선한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멀어지면 나쁜 일 악한 일이라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평강이라고 번역된 헬라에 에이레네(εἰρῄνη)라는 단어는 평화, 화평, 번영, 일치, 조화, 평강, 안전, 화목. 화친 등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의 샬롬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는 샬롬입니다.

샬롬이라는 단어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사 안녕하십니까? 에 해당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면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를 합니다.

아무 탈 없이 평안하십니까? 라는 뜻입니다.

안녕의 반대말은 위험 불안 혼란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안녕이란 위험한 일이나 불안한 일이나 혼란스러운 일이 없이 편안하게 잘 계셨습니까? 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평강 즉 에이레네나 히브리어의 샬롬이나 우리나라 인사의 안녕이나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샬롬이나 에이레네는 우리나라의 안녕과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일반적인 인사에서 나아가서 정말로 전쟁이 많던 시대에 평화를 기원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많은 전쟁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이스라엘나라는 전쟁을 밥 먹듯이 하고 살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이 평화라는 말이 그들의 평생소원으로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늘 전쟁 속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약 3,500년으로 본다면 그 기간 동안 전쟁이 없이 산 기간은 약 230년에 불과하고 그 나머지 3,270년은 전쟁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근세에 와서 우리는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치렀습니다.

1차 세계대전만 해도 37,513,000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1차 대전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그리고 지구상에 일어났던 모든 전쟁들을 종합해 보면 정말로 엄청난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부상을 당해서 평생 불구로 살기도 하고 전쟁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들도 있고 전쟁터에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어서 어려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재산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포로가 되기도 하고 그런 고통 속에서 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입니다.

 

전쟁을 경험하신 분들은 평강 혹은 화평이라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런 전쟁이 없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르신들은 일제침략과 6.25전쟁을 경험하신 분들이지만 저 보다 늦게 태어나신 분들은 아직 평생 전쟁을 경험하지 않고 평화 속에서 산 행복하신 분들입니다.

샬롬이라는 말에는 그 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사람들과의 전쟁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지 못한데서 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실 구약 성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는 수단으로 전쟁을 사용하셨다는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대다수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주시거나 반대로 그들에게 상을 주시는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샬롬이라고 인사를 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평화를 기원하는 뜻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주장하기를 바란다고 할 때 그 평강도 이 세 가지가 다 해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도 평안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툼이나 전쟁이 없는 평화가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화평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이 평강을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평화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진노의 대상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죄 대신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는 것이며 그를 통하여 우리 인간관계도 서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또 우리 서로가 참된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시는 참된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서로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불러주시는 방법도 평강의 방법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 서로에게 경쟁을 시켜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부르심을 받는 그 자체가 전쟁터와 같았을 것입니다.

 

군에 가면 훈련 중에 제일 많이 받는 얼 차례가 선착순이라는 것입니다.

저기 앞에 보이는 소나무 돌아서 선착순 1명하면 제일 빨리 갔다 오려고 있는 힘을 다 냅니다.

1등 한 사람은 앉아서 쉬고 나머지는 모두 1등을 할 때까지 달려야 하니까 정말 힘이 듭니다.

같은 부대원들이었지만 그 때 만큼은 서로가 경쟁대상이고 적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대학을 가기 위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일은 누구나가 바라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경쟁에 의해서 들어가야 되니까 모두에게 서로가 경쟁대상이고 전투의 대상이 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서로가 평화롭게 지내야 할 동급 자들이 서로에게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이 이런 경쟁모집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중요한 부름에 그런 경쟁력을 가지고 부르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올 수 있도록 그냥 오기만 하면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오실 때 시험 봐서 오신 분들 혹시 계십니까?

교회에 오실 때 권리금 내고 오신 분 혹시 계십니까?

교회에 오실 때 어떤 훈련기간을 거쳐서 오신 분 혹시 계십니까?

그냥 다 오셨습니다.

그냥 왔는데 와 보니까 여기 엄청난 혜택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부름을 받고 오셨으니까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것이 실감이 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부름을 받아서 천국으로 가는 길도 평강의 길입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눈물이 없이 갈 수 없는 길, 고통이 없이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십자가의 길이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대신 져주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가 멍에를 메긴 멨지만 우리 주님께서 함께 메어주신 멍에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고 평안하게 가는 길입니다.

 

신앙생활은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서로를 경쟁시키시지 않으십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하면 됩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으면 그만큼만 하면 됩니다.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면 그 받은 만큼만 하면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세상처럼 경쟁을 시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헌금 많이 하는 사람 충성 많이 하는 사람 전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상을 줍니다.

성경 암송대회 성경 퀴즈대회 찬송가 경연대회 이런 것들을 가지고 경쟁을 시키고 줄을 세웁니다.

서로 경쟁심을 불러일으켜서 잘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혹 그런 것 때문에 우리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주신 평강이 깨어지면 안 됩니다.

 

저는 운동을 해도 시합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은 더 싫어합니다.

내기를 한 시합에 이겨도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지면 마음이 더 불편합니다.

지면 성질이 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평강이 사라집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윈-윈 전략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겨야 합니다.

안 그래도 이 세상의 경쟁에 밀려서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에서까지 서로 경쟁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다 아시고 경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시고 거기에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서로 다툴 사이가 아니라 서로 협력할 사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한 몸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몸에 붙어 있는 각 지체들입니다.

서로 협력을 해야 할 사이지 경쟁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의 지체들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몸의 각 지체가 서로 경쟁을 한다면 서로 머리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머리가 되어서 손과 발을 부리면서 살라고 하지 손이나 발이 되어서 힘들게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발이 되어서 평생 힘들게 몸을 지탱하면서 사는 발이 얼마나 불평이 많겠습니까?

나도 기회가 되면 머리가 되어서 힘들지 않게 떵떵거리며 한번 살아봐야지 라고 하면서 틈만 있으면 머리가 하는 일을 비평할 것입니다.

머리는 아무나 하나 그렇게 머리가 안 좋아가지고 온몸을 고생시키면 되나 자신 없으면 물러나라 내가 해 보겠다 사사건건 시비를 할 것입니다.

 

저는 제 몸을 바라보면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각 지체들이 이렇게 서로 협력을 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머리에서 명령만 내리면 온 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그 명령을 수행합니다.

잘해라 하지 마라 할 것도 없습니다. 다 스스로 알아서 잘 합니다.

그것이 잘 안될 때는 우리의 몸이 병이 든 때고 이제 죽을 때가 된 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 몸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서로 한 마음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서 협력하고 평화를 누리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3.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시고 그 일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시고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연결이 잘 안 되는 말씀 같습니다.

평강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으니까 서로 평화롭게 살라고 하시면 이해를 할 것인데 평강을 말씀하시고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까 좀 이상하게 들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라는 말을 알고 보면 평강과 함께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의 감사라는 말 속에는 우리 말 속에 없는 많은 의미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면 그냥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것이지만 헬라어에는 더 많은 뜻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아한, 매력적인, 호의, 은사, 선물, 친절, 은혜, 용서, 탕감, 아낌없이 주는 것, 거저 주는 것, 이런 뜻들이 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런 좋은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감사란 단순히 말로만 인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절한 마음 은혜를 베푸는 마음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 좋은 것으로 나누어주고 싶어 하는 이런 마음이 들어 있는 감사가 참된 감사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 은혜를 베풀고 서로를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감사라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거기에 참된 평화가 있기 때문에 평강과 함께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싶으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은혜를 알기는커녕 아직도 불평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원수인 상태로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하는 평화의 통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감사는 평화의 통로입니다.

서로 싸우는 집에 가보면 원망과 불평뿐인 집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 너 때문에 우리가 망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그 가정에 평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만 있으면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만 있으면 거기는 참된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며느리 밥 태운 이야기입니다.

어느 며느리가 시집을 와서 그만 밥을 태우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밥도 할 줄 모르고 시집왔느냐고 혼을 내니까 시아버지도 옆에서 함께 혼을 내고 남편도 손찌검을 해서 아주 전쟁터같이 살벌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옆집에 시집온 며느리도 밥을 태웠는데 시어머니가 애야 미안하다 내가 물을 적에 부었구나. 내 잘못이다. 라고 하자 시아버지가 아니야 내가 불을 너무 많이 때서 그랬어. 미안해 그러자 신랑이 아니요 모든 것은 땔감을 너무 많이 해온 저의 탓입니다 라고 위로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같이 밥을 태웠는데 한 집은 전쟁터가 되고 한 집은 평화로운 가정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전쟁터와 같이 되고 고통스러운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 하는 이런 마음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고 평강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평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과의 평강을 누려야 하고 우리 서로와도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강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평강을 누리고 사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