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4. 광성교회 부활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3-2)

본문 : 벧전 1:3-4

제목 : 부활의 산 소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삶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거짓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잘 살펴보지 않으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필요한 좋은 것일수록 가짜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에도 참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이 있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형식적이거나 가짜가 많다는 것입니다.

 

믿음에도 살아있는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말로 고백하는 것이지만 그 고백에 따른 삶이 없다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의 소망에도 산 소망이 있고 죽은 소망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죽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말씀하신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일날 부활하셨기 때문에 일정하지는 않지만 춘분이 지나고 만월(음력 15일)이 지난 후 처음 맞이하는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기로 정하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에 부활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그 기쁨을 서로 나누고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기는 날입니다.

이 복된 날에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씀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소망은 죽은 소망이지만 우리가 가진 소망은 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시 한 번 발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받은 산 소망(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우리가 산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소망이 산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진 소망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고 현실에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소망은 100% 이루어지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소망입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기분나빠합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러면 당신들에게도 구원을 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라고 인정을 해 줍시다.

거기에는 구원이 없지만 있다고 가정을 해 주고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불교에도 그들이 생각한대로 하면 구원이 있다고 인정을 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리대로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고행을 하고 도를 깨닫고 그렇게 해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성철이라는 사람도 죽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고백을 했는데도 사람들은 거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윤회설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잘 살아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요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개새끼나 돼지새끼나 그것도 못되면 바퀴벌레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그것도 종교라고 그것도 소망이라고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유교나 원불교나 이슬람교나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깨닫고 자신들이 계획하고 자신들이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종교들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고 믿는 신은 참 신도 아니지만 참신이라고 해도 그대로 실천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죽은 소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의 교회 안에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을 하고 바른 삶을 살고 선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선한 일 많이 하고 착하게 사는 것은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산다면 그들이 가진 소망은 죽은 소망일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서 마음은 편하고 이 세상의 일들은 잘 되고 행복하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소망 산 소망과는 관계가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선행으로 엄청난 복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이 그들과 다른 것은 우리가 가진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쟁취해서 가지게 된 소망이라면 다시 빼앗길 수도 있고 그 소망이 헛된 소망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은 참된 소망이요 그래서 산 소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소망을 주실 때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주는 소망이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준을 정하고 사람들에게 경쟁을 시켜서 그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는 소망이라고 한다면 그 기준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 소망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리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데 그 기준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연약한 사람도 긍휼히 여기심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었고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백성들을 미리 정하시고 택함을 받은 사람들만 구원해주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들을 정하실 때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합당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나쁜 사람들을 버리시는 것이 합당하신 일인데 왜 그런 원칙도 없이 오히려 나쁜 사람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을 선택하시냐고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불평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긴다.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구원을 받게 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시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정말로 이해도 되지 않고 동정의 여지도 없는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 같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좀 나은 사람도 있고 비교적 부족한 사람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면 다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제가 잘 쓰는 비유대로 한강에 수많은 모래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좀 번쩍거리는 모래알이 있다고 해도 우리 눈에는 그저 같은 모래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래알 중에 한 알을 줍는 것은 그 모래가 다른 모래보다 깨끗하고 빛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그냥 그 모레를 줍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도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더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에 합격을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셔서 산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지는 소망이고 살아 있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산 소망(증거가 있는 소망)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산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은 그 소망이 근거가 있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가진 소망이 산 소망이라고 하는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신 산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를 지시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진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으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부활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실감이 안 나서 이런 말을 들어도 아멘이 시원치 않지 정말 이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다만 바라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진짜 이루어질 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장례식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참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서글플까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 고생하시다가 힘들게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 아이고 참 안됐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아버님을 어머님을 먼저 보내고 슬퍼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그것도 또한 못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죽음의 고통 죽음 때문에 헤어지는 고통 이런 것이 없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이별을 하지만 다시 부활해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을 달랠 수가 있습니다.

 

더 다행한 것은 우리가 다시 부활하여 살게 될 다음 세상은 이런 죽음이나 이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해서 다시 갖게 될 몸은 지금 우리가 가진 이런 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늙거나 병들거나 아프거나 죽는 일이 없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그 사실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떤 증거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생전 경함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일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할 수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우리 예수님의 부활하심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나 깨나 예수님의 부활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할 만큼 부활에 관한 말씀들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에서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당시에나 지금에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은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부활하시지 못했을 것이지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부활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없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연하게 있었던 사실을 가지고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3.거듭나게 하는 산 소망(실현되고 있는 소망)

우리가 가진 소망이 산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소망이 이미 우리 속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무런 조짐도 없이 그냥 있다가 나중에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부활할 몸으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의 소망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부활절이 되면 계란을 나누어줍니다.

왜 계란을 나누어주게 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순절 동안 즉 부활절을 기다리는 동안 금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당시에 영양가가 제일 많은 것으로 생각했던 계란을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에 나누어주어서 영양을 보충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당시에 전쟁이나 기근이 많았던 시대에 먹을 것이 부족했고 계란은 아주 귀한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이 되면 큰마음 먹고 좋은 선물을 주는 것이 계란이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 알에서 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로 계란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계란은 다 부화가 안 되는 무정란이고 또 그나마 삶아서 주니까 부활과는 좀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좋은 생각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계란이든 씨앗이든 그 속에 생명이 있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좋은 뜻으로 해석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해서 우리 육신 속에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죽은 생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 있어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었는데 다시 살려서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면 이러나는 현상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을 알고 진리를 알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과거와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전에 즐기던 세상일과 멀어지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나친 욕심과 쾌락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더 귀한 것은 그 영혼이 살아 있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육신도 죽은 다음에 완전한 육신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가만히 있다가 죽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몸속에 그 부활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씨앗이 생겨났고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4.유업을 잇게 하는 산 소망(참된 소망)

본문 4절 말씀에 산 소망을 가진 우리가 잇게 될 유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산 소망은 우리가 죽으면 그냥 이런 몸으로 다시 사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새롭게 전혀 다른 완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몸은 흙으로 만들어서 죽고 썩어질 몸입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쇠약해져서 결국은 죽게 되는 그런 몸입니다.

너무나 불완전하고 너무나 나약한 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산 소망대로 다시 부활 할 몸은 다시는 늙지도 병들지도 쇠약해지지도 죽지도 썩지도 않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 세상도 지금 우리가 사는 이런 불완전한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상속해 주시는 영원한 천국 하나님나라가 우리가 장차 가서 살 세상입니다.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

없어야 될 것은 하나도 없고 있어야 될 것은 다 있는 곳

황금보석 열두 진주로 꾸며진 완전하고 아름다운 나라 그 나라가 우리가 가서 살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세상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이 썩어질 몸 쇠약해질 몸으로 조금 나은 삶을 살고 조금 더 오래살기 위해서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몸으로 완전한 세상에서 영원토록 사는 것이 우리가 가진 소망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소망을 산 소망이요 참된 소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복된 날입니다.

이 날에 서로 기뻐하며 이 즐거움으로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산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