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14)

본문 : 마 28:1-6

제목 :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세상을 살다가 보면 답답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마음대로 되는 일도 잘 없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만 닥쳐오고 걱정이 되는 일들만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열심히 기도하면 모든 일들이 잘 풀려야 할 텐데 모든 사람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살려고 하면 일들이 더 잘 안 풀리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알아주지도 않고 오히려 대강 적당히 사는 사람이 잘 되기도 하니까 믿음에 회의가 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끝까지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9)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 얼마나 자유롭게 잘 삽니까?

먹고 마시고 전 세계로 여행도 다니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타고 편하게 잘 삽니다.

윤리도덕이고 뭐고 필요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큰소리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뭘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못하고 삽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나 당하면서 손가락질이나 받으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의인이요

부활과 영생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오늘은 사도신경 중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는 고백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 중에 가장 핵심적인 고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이 부활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나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은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이 부활과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십자가의 진리를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결과가 부활이라는 엄청난 기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속에는 부활과 영생이 있기 때문에 복된 소식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활과 영생으로 가는 이 길을 끝까지 가시기 바랍니다.

 

 

1.부활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내가 기독교의 적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부활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만 거짓말로 밝혀 버리면 기독교는 끝장이 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사탄과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은 끝임이 없이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 예수님의 부활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도적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서 다른 곳에 감추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적설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8장 11절 이하에 보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꾸민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그것을 본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이 그 사실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자 그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고 했고 군인들은 돈을 받고 그렇게 거짓말을 했는데 그것이 유대인들 사이에 두루 퍼졌습니다.

“기절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릴 때 이 기절설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죽으신 것이 아니고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죽으신 일이 없으시기 때문에 부활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환상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환상을 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환상을 보았거나 귀신을 본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자꾸 부인하려고 하는 것은 이 부활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이 부활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탄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속에 부활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1)부활의 신앙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10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 속에는 이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것이 바른 믿음도 아니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기본이고 그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부활의 신앙은 의의 조건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우리가 죄를 범한 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살아나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3)부활 신앙은 우리의 부활에 보증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잠자는 자들 즉 죽은 자들이 다시 살게 하는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들도 그 뒤를 이어서 예수님처럼 다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 부활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우리의 부활에 보증이 되어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4)부활 신앙은 우리의 새 생활에 근거가 됩니다.

로마서 6장 4절 하반 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아서 장차 부활하게 될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들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 때도 이 세상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심으로서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부활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불쌍하게 보일지라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신앙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부활의 신앙에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구원이나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나 부활하는 것이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 우리의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 물 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함으로서 부활의 신앙을 시시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가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부활은 증거가 충분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로 보내시고 역사 속에서 많은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이 일을 진행하셨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이나 죽으심이나 장사되심이나 부활하신 모든 일들이 어느 구석에서 몇 몇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비밀리에 진행 하신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진행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1)빈 무덤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특별히 무덤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준비를 하셨고 니고데모라는 사람도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들은 부자였고 권력이 있는 공회의 의원이었고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면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돈과 권력으로 예수님을 튼튼한 새 무덤에 장사지내게 하셨고 그 무덤이 부활의 증거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튼튼한 무덤에 큰 돌로 막고 인봉을 하고 군인들로 지키게 함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빈 무덤을 보여 주셨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2)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절 이하에 부활의 목격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게바 즉 베드로와 열두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과 바울 자신에게도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 글을 쓸 때 목격자 대다수가 살아있었다고 했습니다.

직접 본 사람들을 증인으로 이 글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의심이 많았던 도마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과 창 자국을 확인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3)제자들의 설교와 삶이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의 설교는 예수님의 부활이 중심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 회유를 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한 결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외쳤습니다.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 까지도 부활의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전 생애를 다 바쳐서 목숨까지 다 바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겁이 많았던 베드로까지도 순교까지 하면서 이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부활의 목격자들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4)교회가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신약의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구약시대와 다르게 토요일인 안식일에 모이지 않고 일요일인 주일날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 이 주일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명령이나 어떤 의논도 없이 자연스럽게 주일날 모이기 시작을 했고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모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날입니다.

주일날 모일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반방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3.부활의 신앙에 올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증거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고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부활의 신앙을 버리고 엉뚱한 것들에 목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 세상의 일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부활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 부활에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에 올인을 해야 합니다.

 

“올인”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10년도 지난 드라마이지만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올인”이란 카지노 포커 판에서 자기가 가진 돈을 다 걸고 승부를 벌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건다는 뜻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과거에는 포커 판에 올인을 했었지만 나중에는 한 여인에게 모든 인생을 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올인을 해야 하는 것은 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도 부활하는 이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 부활의 신앙에 올인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5-38)라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서 고문을 당하지만 구차히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고 조롱과 채찍 감옥에 갇히는 것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확실히 믿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 확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흐지부지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가진 믿음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확실히 믿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조금 부족하고 때로는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 일에 우리는 올인을 하는 것입니다.

확신이 조금 부족해도 그것을 믿고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올인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에 올인하는 것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우리도 부활하게 하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에 올인하시기 바랍니다.

시시한 것에 목숨 걸지 마시고 이 부활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부활에 이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