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15)

  본문 : 1:8-11    

  제목 : 갈릴리 사람들아.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을 하였다거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손오공이냐 구름을 타고 다니시게 라고 비웃습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것이 참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나 재림은 우리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비웃음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자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져 가셨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올려져 가셨는데 나중에는 구름이 예수님을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여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은 천사를 말합니다.

  성경은 천사들의 복장을 말할 때 흰옷을 입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두 천사가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을 하셨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승천하실 때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승천을 하셨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이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대할 때 겉으로 나타난 표현 보다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중요한 내용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그 표현 방법은 미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지만 이 기사가 기록될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과학적이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쓰는 용어나 그들이 가진 상식으로 기록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해도 옛날이야기 수준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성경의 기록들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보이거나 상식 밖의 이야기처럼 보일지라도 밖에 나타난 그런 외형적인 모습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용어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그렇게 기록을 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정말로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오늘 읽은 본문 11절에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갈릴리 사람들아 라고 부른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성도들을 호칭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제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종이라든지 일꾼이라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를 우대하여서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는 고귀한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하대해서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천사들이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갈릴리 사람들아"라고 좀 낮은 신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갈릴리는 성경에 자주 나오는 나사렛과 가버나움이 있는 지역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용감하고 근면했지만 유대인들은 이들을 우둔하고 예의가 없고 반역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씨도 예루살렘 사람들과 달리 사투리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표준말이 아닌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는 촌사람들이라고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갈릴리에 속하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알려졌는데 태어나기는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 하러 가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이 살았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곳이 활동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소개를 하자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제자들이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방언으로 말하자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 천한 사람들이 사는 갈릴리 사람들이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갈릴리는 성경역사 즉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지역입니다.

  예수님의 주 활동무대였고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다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면서 처음 표적을 보이셨던 혼인잔치가 여기 갈릴리 가나에서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습니다.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기로 하신 곳이 이 갈릴리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특별한 일을 하신 곳이 이 갈릴리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로 봐서는 예수님도 반역자라고 보았기 때문에 갈릴리를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제자들을 부르면서 하필이면 별로 좋지 않은 갈릴리 사람이라는 호칭을 쓰셨을까요? 그냥 제자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라고 불렀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사람들이 경멸한 태도로 부르는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호칭을 썼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먼저 제자들에게 과거 자신들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어마어마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지만 과거에는 사람들이 경멸하는 지역에서 고기잡이나 하던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는 엄청난 일을 감당할 때 그것으로 자신들의 공로나 영광을 나타내지 말고 갈릴리에서 태어나서 고기나 잡았던 자신들의 과거 모습을 생각하고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하게 된 데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자기들이 가지게 된 신분이 얼마나 엄청난 신분인지를 잊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일에 증인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그 엄청난 일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일입니다.

 

  갈릴리라는 그 별 볼 일 없는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엄청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자부심을 가지고 맡은바 증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비웃을지라도 너희들은 이 엄청난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갈릴리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별로 알아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비웃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미련한 사람으로 보고 무능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너무나 지혜롭고 완전한 성공자들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제일 중요한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고

  사람으로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에 도달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갈릴리 사람들아 하고 비웃지만

  그 갈릴리에서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증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보는데서 올려져 가시니


  본문 9절 말씀에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셨다는 것은 지난주까지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보았던 8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마치시고 올려져 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려져 가셨다고 해서이 부분을 승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즉 승천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올라가신 하늘이 어디인지 어느 하늘로 가셨는지 그 증거를 대라고 말합니다.

  하늘로 올라가보니까 우주가 있는데 그 우주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아느냐고 묻습니다.

  묻는 것이 아니라 당치도 않는 말을 한다고 비웃는 것입니다.

 

  16세기 이후에 과학자들이 지구가 둥글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잇다는 것을 발견하게 전에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평평한 평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자신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 하늘에 여러 층의 하늘이 있어서 눈에 보이는 하늘이 있고 또 이렇게 볼 수 없는 하늘이 있는데 세 번째 하늘이 낙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표현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올라가셨다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의 공간으로 올라가셨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을 이 지상에 계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3절 말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 모습을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죽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은 아닙니다.


  없어지셨다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습도 제자들이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그들이 대화할 때에 예수님께서 함께 동행을 하셨지만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한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에 대해서 풀어서 설명을 해 줄 때 예수님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시기 전과 같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몸은 우리가 가진 이 몸과는 차원이 다른 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이 육신과는 다른 신비한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자신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제자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도 보여주시기는 했지만 이미 우리와 같은 육신은 아니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몸은 이미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차원이 다른 세상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예수님께서 올라가셨다는 말을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셨다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의 표현을 사용해서 설명을 하셨을 뿐이지 그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차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몸이 가서 있는 공간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차원이 다른 세상임을 말씀하기 위해서 올려갔다는 표현을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공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나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올라가셨다고 하고 또 구름이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 것은 그런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이제 끝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실 곳은 하나님보좌 우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보좌우편에 위치해계신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하늘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 것은 지난번처럼 사라지셨다가 다시 나타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나타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시고 남은 일들은 성령 하나님께 맡기시고 하나님이 계시는 것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우리가 사도신경을 배우면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이 세상 만물들을 다스리시고 예수님은 그 우편에 앉으셔서 그 일들을 함께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완전한 제사장으로서 참 선지자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일들을 감당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우주 공간으로 사라지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몸이 가셔야 할 장소로 옮기셨음을 말씀하는 것이고 그 장소는 낙원이며 그 낙원 즉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본문 11절 말씀에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구름이 가려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기록된 역사를 읽으니까 그냥 무덤덤하게 이 장면을 대하고 있지만 당시의 제자들의 마음에는 정말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아 이제 진짜 가버리셨구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셨구나 부활하신 몸으로 종종 나타나셔서 말씀도 해 주시고 어려울 때 도와도 주시면 참 좋을 텐데 이제 어떻게 살까?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정말로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두 천사가 말을 합니다.

  어찌 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예수님은 너희가 올라가실 때 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니까 그 때까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명령을 잘 지켜서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히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있는 우리 성도들은 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금방 오실 줄 알았는데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오시지 않고 계시니까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기도 해서 그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내일이라도 오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초림하실 때처럼 다시 아기로 태어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인간의 몸으로 다시 오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가지셨던 그 신비한 몸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빨리 오시지 않으시니까 재림예수를 빙자한 가짜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와 똑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서 오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 비밀리에 왔다고 하는 사람은 다 가짜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듣기도 싫어하는 말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로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은 다 끝이 날 것이고 그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조롱하고 비웃던 모든 사람들은 잡혀 와서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최후의 심판을 받아서 형벌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비웃었습니까?

  예수님을 얼마나 조롱했습니까?

  우리를 개독교니 뭐니 하면서 얼마나 잘난 척했습니까?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우리들을 비웃습니다.

  뭘 그런 것을 기다려 이 땅에서 펴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지 그런 것까지 진짜로 믿고 기다리느냐고 우리를 비웃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그런 비난 앞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 때로는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마음을 졸이며 삽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영생이 없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믿던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얼마나 억울할까 이런 마음도 가져보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오시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때 이런 가슴 아팠던 모든 일들이 다 사라지고 그동안 우리가 당했던 그 고통들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때로는 의심이 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 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날에 오시지 않으신다고 해도 언젠가는 오실 것이고 그 때 우리도 부활해서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기쁜 날 그 영광스러운 날이 우리 모두의 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만왕의 왕으로서의 일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믿지 않고 우습게 여길지라도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은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여러분의 믿음의 핵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과거에 갈릴리 사람들처럼 별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이렇게 구속사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증인들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기뻐 뛰면 즐거워하는 참된 신앙인들 가운데 여기 모인 우리들이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들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