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19)
  본문 : 행 1:20-22   
  제목 :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


   “20.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에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위하여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힘써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한 일은 가룟 유다 대신에 사도 한 사람을 뽑아서 보충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고 배반하고 떠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 한 사람을 뽑아서 조직을 정비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교회의 본래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신앙고백이나 그의 삶의 모든 과정들이 오늘날 우리 교회가 나아갈 모습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교회가 따라가지 말아야 할 반대방향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다른 마음이 생겨서 떠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재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돈이 욕심이 나서 돈을 따라 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뭔가를 잘 못 알고 왔다가 자신의 목적과는 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길로 가는 분임을 알고 떠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단이나 거짓선생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단이나 거짓 선생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이들이 목사 흉내를 내고 이들이 지도자 흉내를 내고 이들이 성도 흉내를 내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가룟 유다처럼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회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지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스스로를 뉘우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아직도 교회 안에 앉아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바른 길로 가는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은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을 제자로 뽑는 과정에서 주님의 일을 위해서 뽑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 교회의 일꾼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본문 20절에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하는 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 한 사람을 다시 뽑아야 하는데 그 근거를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라고 한 말은 시편 69편 25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라고 하신 말씀을 거의 비슷하게 인용을 한 것입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기록한 시편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있으면서 두 번이나 배반을 당했습니다.
  둘째아들 압살롬에게 배반을 당해서 왕위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았으며 셋째아들 아도니야에게도 배반을 당해서 왕위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 아버지도 소용이 없고  형제들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당하지만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믿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족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가족은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핏줄이고 생명까지도 나누어 가져야 할 사람이 가족입니다.
 
  다윗처럼 자식에게 그것도 두 번씩이나 배반을 당하면 정말로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그 배반도 거짓말이나 좀 했다든지 재물이나 좀 빼앗아 갔다든지 하는 그런 배반이 아니고 왕 자리를 빼앗아가고 목숨도 빼앗아가려는 결정적인 배반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를 합니다.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8: 22 -28)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배반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가족들에게 친척들에게 친구들에게 사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반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장 과정이나 살아오면서 저의 편에 서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사람을 배반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삽니다.
  우리 동네에 이발소가 있는데 주인은 세 번 바뀌었는데 저는 20년 단골손님입니다.
  병원이나 은행이나 슈퍼마켓이나 한번 정하면 웬만해서는 잘 바꾸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손해가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조금씩은 바꿔가면서 해야 물건 값도 싸고 서비스도 좋아집니다.
  교회도 가끔 여기저기 옮기면서 다녀 보아야 목사님이 나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심방도 자주오고 기도도 더 잘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인해서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그런 배반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좀 불편하고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도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한번 사랑하시면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한번 선택을 하셨으면 후회하시거나 변경하시는 일이 없이 언제나 한 결 같이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뭐가 잘 안 되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기도 하고 기대치에 못 미치는 일들이 많아도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금방 원망하고 떠나 버리지만 금방 돌아서서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고 욕을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시고 나를 변호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꾼을 뽑으실 때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뽑으실 것입니다.
  뭐 화끈하게 잘하다고 금방 사라지는 사람보다는 좀 부족하더라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일꾼으로 뽑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언제나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변함이 없이 맡은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라는 말은 시편 109편 8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시편도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는 시입니다.
  다윗은 배반도 많이 당하면서 살았지만 원래 적들이 많았고 대적들에게 공격도 많이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바르게 산다고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고 박수쳐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대적들이 많이 생기고 대적들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왜 너만 잘난척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대강 적당히 죄도 지으면서 살아야지 어떻게 그렇게 깨끗하게 살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다면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사건건 네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 볼 테니까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깨끗하게 사는 척 하는가 한번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09편에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1-3, 8)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남을 공격하는 사람 거짓말을 하는 사람 이런 불성실한 사람에게 직분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직분을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다윗의 글을 인용하면서 배반하고 떠난 가룟 유다의 직분을 다른 사람이 수행하도록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자를 다시 세울 때 이런 말씀을 명심해서 다시는 배반하지 않을 사람 악한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을 뽑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앞장서서 일을 하는 직분자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세의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우리는 이미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무정하며 비방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거역하며 배신하는 자들이 많은 이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구원을 받은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착하고 선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를 써야 하며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본문 21-22절에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다시 뽑을 제자의 자격조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한번쯤은 만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쫓으실 때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을 때 그 때 그 현장에는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수만 명의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가버린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외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이익에 따라서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익이 없으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교회의 교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 좋으면 오고 기분 나쁘면 오지 않고 이익이 있으면 오고 손해가 날 것 같으면 가버리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루 이틀 일 년 이년 함께 살아본다고 그 속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보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은 서로 칭찬해주고 활용도 하고 나쁜 점은 감싸주고 그 나쁜 점을 잘 다스릴 줄 알도록 도와주어야 그것이 가족이고 친구고 주안에서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 일이년 보고 잘 한다고 일꾼을 세우지 말라고 합니다.
  금방 와서 열심히 충성을 하는 것 같아서 일꾼을 세웠더니 금방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들이 많아서 헌법으로 일꾼을 세우는 기간을 정했습니다.

  장로는 7년 동안 흠이 없어야 하고 같은 교회에서 3년 이상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교회 헌법으로 정했습니다. 
  장립집사는 5년간 흠이 없어야 하고 2년 이상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인간의 참된 의미를 아는 것이 일이년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에 가서 부흥회에 참석해서 뜨거운 불을 받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불치의 병이 낫고 그랬다고 금방 성도가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과 동해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깨닫고 체험을 해야 합니다.
  진리가 그렇게 쉽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게 얄팍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지금이 최고인 것 같지만 한참 가다가 돌아서보면 그 때가 초보였고 더 깊은 신앙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며 늘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만 보지 말고 더 멀리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형편만 생각하지 말고 더 먼 미래를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토록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과 동해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신앙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
  본문 22절에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언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된 자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착해야 하고 배반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착하게 있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 대신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증인은 그런 사람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증인으로서 증인에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말은 부활이 있다고 하면서 마치 부활이 없는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타락한 교회는 부활의 증인이 되지 않습니다.
  부활을 잘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다른 말을 합니다.
  마치 부활이 없는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을 휘두르면서 살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처럼 재산을 모으고 쾌락을 즐기며 타락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들의 삶에서 부활의 증거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훌륭한 지도자들이라고 칭송을 받고 그들이 주님의 제자로 군림을 하고 사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일꾼은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 성도들의 부활을 증거하고 부활이 있는 사람답게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참된 교회요 그것이 참된 일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부활의 증인들이 모여서 함께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곳입니다.
  착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서 배반하지 않고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입으로 부활을 증언하고 삶으로 부활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요 사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