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21)

본문 : 행 2:1-4

제목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역사를 기록한 책 즉 구속사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역사를 진행시키면서 아주 중요한 날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날을 기억하도록 하십니다.

그 특별한 날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진행하신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날도 특별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큰 별을 준비하셨고 그 별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나신 것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영광중에 나타나서 예수님의 나심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성탄절이라고 해서 매년 전 세계 사람들이 그 날을 축제일로 정하고 특별한 행사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그 날도 특별한 날입니다.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지키고 있었던 유월절 절기에 일어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노릇하던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때 특별한 일을 행하셨는데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순순히 해방시켜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재앙이 애굽에 있는 모든 장자들과 짐승들 가운데서도 처음 난 것은 다 죽이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천사가 그것을 보고 그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유월절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즉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날을 기념하여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고 그 절기를 지키면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 유월절 절기 중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진행하시면서 그 유월절 어린양이 예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예수님을 통한 완전한 구원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신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부활하신 날을 부활주일로 지키고 성찬예식을 행하여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 째 되는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하나의 절기를 지켰는데 그 날을 초실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하는 절기입니다.

보리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보리농사라고 해서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친다고 해서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그 날이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서 오십이라는 뜻을 가진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여기 순(旬)은 10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5순은 5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신약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이 날이 오순절에 시작이 되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날에 특별한 의미를 두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시고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며 그 일이 오순절과 연관하여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날을 택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의 의미와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것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이 일이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오시는 날에 아주 특별한 일을 행하심으로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며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날임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이런 날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이르매”라는 말은 단순히 오순절 날이 되었다. 오순절 날이 왔다. 라고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우리말에 이미 이르렀다고 번역을 한 것은 헬라어에서 단순히 왔다고 쓰지 않고 “쉼플레로오”(συμπληρόω)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 “쉼플레로오”는 “가득 채우다” “완전하게 채우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날이 왔다는 말보다는 그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한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날이 왔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한 날이 왔다는 뜻입니다.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 시간이 왔다든지 채무를 변제해야 할 만기가 되었다든지 꼭 지켜야 할 어떤 약속한 시간이 됐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우주만물을 다스려 나가시는 것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에 따라서 운행을 해 나가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그냥 아무 때나 오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갈 4: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도 유월절이라는 절기에 때를 맞추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후 50일이 지난 후 즉 유월절이 지나고 50일이 되었을 때 초실절 맥추절이 되었을 때 성령님께서 오시고 신약의 교회가 시작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은 누가 그냥 대강 생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역사 가운데서 또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시간 가운데서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2천여 년 전 오순절 날에 성령님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신약의 교회가 시작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들이란 1장에서 다락방에 모였던 예수님의 12사도와 그들을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1장에 모였던 그 다락방이 아니라 다른 장소 아마도 성전에 모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기록이란 시간과 장소와 그리고 거기 사람들이 있을 때 그리고 일어난 사건이 있을 때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거기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그 일이 일어난 것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라면 오순절 즉 맥추절이나 초실절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받은 백성들의 첫 열매가 오늘 맺히게 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해 놓으신 그 구원을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시킴으로 하나님나라의 첫 열매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첫 열매들로 하여금 세상 끝까지 전파되게 하는 역사적인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가 그렇게 전파되기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 우리가 있는 여기까지 이르러서 여기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교회의 원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많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시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가 시작되는 모습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의 원래 모습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역사 가운데서 행하신 구원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에 대해서 이적을 행하고 능력을 받고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정작 알아야 할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잘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시면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고 그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증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제일 큰 이유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본문 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기념일이 되면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날 그냥 지나가면 섭섭합니다.

행사를 하되 특별한 행사를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냥 지나가면 엄청 섭섭해 하고 대강 적당히 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벤트를 통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나 결혼을 한 것을 엄청나게 의미 있는 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하실 때도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특별한 일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특별한 이벤트를 하십니다.

그 이벤트의 특징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고 또 하나님의 뜻임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는 일이 특별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날에 특별한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 바람이 “홀연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내려 왔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홀연히’라는 말은 ‘갑자기’ ‘뜻밖에’라는 말입니다.

어떤 소리가 날만한 일이 없는데 뜻밖에 소리가 났고 어떤 신호도 없이 갑자기 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아주 강하게 급하게 부는 바람 소리와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바람 소리가 날려고 하면 태풍이 불어오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뿌리째 뽑히기도 하고 지붕이 날아가기도 해야 날법한 소리가 그런 일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소리만 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대목을 가지고 성령님을 마치 바람 같다고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오실 떼 이런 바람을 타고 오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이비 부흥사들이 성령을 받으라고 하면서 바람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바람이시거나 바람을 타고 다니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는 날 바람 소리 같은 큰 소리가 나게 하신 것은 그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특별한 일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람 하면 별 생각이 없지만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람 하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역사로 생각을 했습니다.

시편 104:2-4절에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바람을 날개로 삼아서 다니시는 것 같고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신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바람을 가지고 일을 하시며 바람이 나타나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다는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에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태풍이 오고 바람이 불었으면 아 자연현상으로 바람 소리가 나는구나. 라고 생각했겠지만 바람도 불지 않고 나무도 흔들리지 않는데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시는 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라고 했습니다.

사실 집안에서 들을 때 온 집안에 그 소리가 가득한 것 같았지만 밖에서도 그 큰 소리가 들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몰려 왔기 때문입니다.

몇몇 사람들에게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몇몇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듣게 해서 그 이상한 소리를 듣고 몰려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

본문 3절 말씀에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불이 혀처럼 갈라졌다고 했는데 뱀의 혀는 갈라졌지만 보통 사람의 혀가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좀 이해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어성경은 “혀처럼 생긴 불이 나타나더니 그것이 갈라져서 각 사람 위에 와 닿았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불의 모양이 혀같이 생겼는데 그 혀같이 생긴 불이 나누어져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와 닿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불하면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불하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3:2)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음을 모세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불의 모양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모양만 불이지 그것이 불처럼 뜨겁거나 나무를 태우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불이 나타났다고 하여서 성령님은 불처럼 뜨겁다거나 성령님을 받을 때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말을 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 중에 불처럼 능력을 나타내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의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아는 보통 불이라고 하면 머리에 불이 붙기도 했을 것이고 그 집을 태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은 뜨겁지도 무엇을 태우지도 않는 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불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불이 성령님의 임재를 알려주시는 것인데 그 성령님의 임재를 알리는 불이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 위에 다 하나씩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성령님의 임재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쓰려고 하시는 그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각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거기 모인 사람은 사도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인 120명의 성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120명 모두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임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모든 사람이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임하십니다.

아무나 오시라고 해서 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은 누구에게나 다 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라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아직도 이렇게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고 이미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계신다고 믿어지면 세상 그만 바라보고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더 가까이 오시고 주님을 더 의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본문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다 성령님을 받았는데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충만하게 받고 어떤 사람은 대강 적당히 받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다 똑같은 성령님이십니다.

그 역사하심도 똑 같습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시는 역사가 다 똑 같습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똑 같이 역사하시되 사람에 따라 그 반응이 빨리 오기도 하고 늦게 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속도가 서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님이 임하시자마자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변화하여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그럭저럭 살다가 주님나라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빨리 적극적으로 주님을 알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제자들과 스데반을 비롯한 일꾼들과 오늘 처음 성령이 임하실 때 자리를 함께한 120명의 성도들처럼 특별한 사람들을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속에 와 계신 성령님께서 강하게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며 최선을 다하여 주님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며 목숨을 걸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날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특별한 날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알리기 위해서 특별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듣게 했습니다.

혀 같은 불이 갈라져서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이 우리에게도 임하여 계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도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우리도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