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31)

  본문 : 행 2:37-39    

  제목 : 너희가 회개하여.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제가 이곳에 와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동네에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공부방을 시작한 것이 아동센터라는 복지시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공부방도 하고 작은 도서관도 하고 노인들 무료급식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남동구 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 인천광역시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 등 여러 직책들을 맡아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스스로 만든 직책인 “가난세습 방지 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복지란 가난이 세습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부모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또 다시 부모님들처럼 가난하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다 노력만 하면 출세도 하고 부자도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개인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 사회의 형편, 개인들의 생각들이 다 함께 바뀌어야 되는 일이지 어느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누군가가 잘 살도록 바르게 살도록 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시작을 했지만 결국은 이런 세상에서 사는 일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세습에서 탈피는 복지가 아닌 신앙으로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하면서 여러 직책들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그 직책들 중에도 제가 스스로 만든 직책이 하나 있는데 “첫사랑 찾기 운동본부 본부장”입니다.

  첫사랑 애인을 찾아 나서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이 처음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영육 간에 강건하게 사는 비결인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뭔가는 부족하거나 뭔가는 변질이 되어서 하나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축복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더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나라인 교회를 더 사랑해야 하는데 변화가 아니고 변질이 되어서 하나님사랑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잃어버린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서 사도행전으로 왔습니다.

  처음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참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이며 바른 성도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성도답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잘 살아도 성도답게 잘살고 망하고 못살아도 성도답게 살다가 망하고 못살면 그것은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신약교회가 시작된 주후 30년에서 60년 사이에 처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첫사랑으로 시작한 성도들이 어떤 모습으로 시작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과연 그 믿음을 따라서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신약교회의 첫 설교인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들은 마음이 찔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까 라고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제자들에게 물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본문 38절에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많이 들어봤던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이미 다 한 번씩은 경험했던 일들입니다.


  웬만큼 교회에 다니신 분들은 다 한두 번 회개의 경험이 있을 것이고 세례는 다 받으셨고 그래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실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뭔지 잘 모르고,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다른 것은 이미 다 경험했던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설교 주제가 나오면 아 나 그것 다 알아 하고 딴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첫 사랑의 차원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회개나 세례나 죄 사함이 바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점검해 보려고 하니까 놓치지 마시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쉬운 말씀처럼 보이지만 쉽게 넘어갈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신앙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고 잘 살펴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가 시작될 때 처음으로 성도가 될 때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따르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서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제일 첫 관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복음을 외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 전도하러 나가서 “회개하라”(막 6:12)라고 전파하였습니다.     

  우리말에서 회개(悔改)라는 말은 뉘우칠 회(悔)자와 고칠 개(改)자를 써서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입니다.

  원어의 뜻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헬라어에서는 “나중의 생각”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로 전에 생각하던 것을 나중에 즉 지금 생각한 것으로 바꾼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을 길을 바꾸는 것 가던 길을 돌이켜서 바른 길로 가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잘못된 길임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고 가는 길을 바꾸는 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바른 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잘못된 길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돌이켜서 바른 길로 가는 것이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회개는 그동안 살아온 것을 돌이켜보고 잘못한 일들이 생각나면 고백을 하고 뉘우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옛날 성도들은 교회에 오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동안 잘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많이도 울었습니다.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하니까 울고

  회개하면 모든 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하니까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나는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 라고 하면서 안심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죄를 생각해서 후회를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회개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회개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길로 돌아서서 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과거에 가던 그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면 거기서 아무리 울고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회개를 한다는 것은 생활 습관 중 잘못된 것 조금 고치고 옛날보다 좀 착하게 선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회개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죄악의 길로 가던 사람이 백팔십도 방향을 바꿔서 정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예수님이 계신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가던 사람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이 계신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서 가는 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는 사람도 가끔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휩쓸려서 내가 탄 인생의 배가 엉뚱한 것으로 조금씩 밀려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첫사랑 찾기 운동본부가 필요합니다.

  처음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사랑했던 그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서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 못 왔는지를 살펴보고 잘 못 온 곳에서부터 바로잡아서 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옹고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그동안 알았던 것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최고로 알고 도무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치고 자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연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무대포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고신교단을 개혁주의 교단이라고 합니다.

  개혁주의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형편들을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간다고 해서 개혁주의입니다.

  그래서 자꾸자꾸 살펴보고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이 진리가 아니고 잘 못되었다는 것이 발견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원래는 AB형의 피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AB형의 피를 가진 사람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해서 저는 바보는 아니니까 천재구나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한번 다시 검사를 해 봤더니 A가 없어지고 B만 남아서 B형이라고 했습니다.

  점검 안 해보니까 피도 바뀌더라고요

  피가 바뀐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가 누군가의 실수에 의해서 잘못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에 가서도 군번에 AB형이라고 새겨서 걸고 다녔는데 전쟁이라도 나서 피를 흘렸다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세상으로 가던 길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르려고 방향을 바꿔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회개는 중간 중간 우리의 삶을 점검해보면서 과연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바른 길인가를 살펴보고 잘못되었을 때 다시 수정을 하여서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렇게 즐기면서 살아보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불법을 행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부정한 방법이라도 즐기면서 육신의 쾌락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그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지고 그쪽을 향하여 가게 됩니다.

  그럴 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나라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시 가던 길을 수정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가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늘 수시로 점검을 하고 수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회개하고 난 후에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그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신앙의 입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신앙을 고백하여서 정식으로 하나님나라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세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니까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면서 신앙고백을 하고 그 신앙고백을 보고 정식 교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회개가 내 스스로의 마음의 각오요 결정이라면 세례는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줌으로서 회개하여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가 무엇이냐고 할 때 여러 가지 의미들을 말합니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침례교를 비롯해서 몇몇 교파들이 침례를 합니다.)

  그들은 세례를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요 다시 나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을 나타냄으로 침례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약식세례를 하는 장로교를 위시한 몇몇 교파들은 물을 뿌리거나 찍어 바름으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세례는 그 세례 자체를 통해서 그런 죄 사함이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을 받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의식이지 그 자체가 죄를 사하거나 부활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의 중요한 의미는 이 예식을 통하여 이제 완전히 예수님의 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사탄의 종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예수님과 한편이 되어서 한 형제처럼 한 몸처럼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편에서 사탄이 주는 거짓 쾌락을 누리다가 멸망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편에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의리”가 유행어입니다.

  의리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의리를 지키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의리하면 주먹세계에서 잘 쓰는 말입니다.

  어깨들 조폭들이 모여서 서로 혈맹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형제애로 뭉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조직을 배반하지 않고 조직과 함께 살고 조직과 함께 죽는다.

  술에다 손가락을 물어뜯어서 피를 내어서 술에 타서 나누어 마시기도 하고 혈서를 써서 맹세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뚤뚤 뭉쳐서 힘을 합해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례도 사실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나와 예수님이 한편이 되고 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한편이 되어서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언제든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영원한 천국까지 함께 가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님과 한 편이 된다는 것 굉장한 일입니다.

  단순히 한 편이 아니라 예수님과 형제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온갖 은혜들을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도 함께 재판장이 되고 

  왕 되신 예수님 곁에서 함께 왕 노릇하고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도 받아서 영생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조폭을 따라서 그들과 혈맹이 되어서 사는 것은 나쁜 짓이나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한 편이 되어서 사탄을 따라 이 세상의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일시적으로 즐기겠지만 영원한 형벌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아주 비참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편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이 세상에서는 비록 좀 힘들 수도 있지만 영원한 행복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런 귀한 세례를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 받은 것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해서 의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나쁜 짓을 하는 조폭들도 그런 의식을 행하면 목숨 바쳐서 의리를 지키는데 이렇게 귀한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예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생각해 보면 아무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정말로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해서 불러서 세례를 받게 해서 예수님의 편에 세워주고 온갖 좋은 혜택들을 다 누리게 해 주셨는데 그렇게 쉽게 그 좋은 것을 포기하다니요.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에 사용하던 개역한글성경에는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고 잘못 된 것을 바르게 잡아서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를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바로잡은 것입니다.

 

  회개를 하는 것이나 세례를 받는 것이나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시간상의 순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똑똑한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이나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회개도 하고 세례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받는 것은 성령님이 아니고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내 안에 이미 와 게시는 성령님께서 세상에서 돌이켜서 예수님 편에 와 있는 성도들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그 선물은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은사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고 교회를 위해서 살 때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성령님께서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가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은 늘 기쁨으로 살고 전적으로 주님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면서 교회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늘 저 뒤편에 서서 구경꾼처럼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교회에 오는 것도 힘들어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살다가 보면 세상사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고 신앙생활도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예수님 믿고 십자가를 붙들고 살면 괜찮기는 할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말씀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과연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서 예수님과 한 편이 된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 사함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했는데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는 사람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나의 신앙이 입문부터 잘못된 것인지 세월 따라 살다가 변질이 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회개가 잘못되었는지

  다시 회개를 해야 할 정도로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있는지

  예수님과 한편이 되기로 한 그 약속 그 맹세가 헛된 맹세였는지

  예수님과 한편이 됨으로 누리게 되는 그 좋은 것들을 잊어버렸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로 예수님의 편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점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이 질문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아서 주님께서 방향을 바로 잡고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시고 그 능력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신앙생활 하시다가 주님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맞아하시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우리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