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38)

  본문 : 행 2:43   

  제목 :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교회의 시작을 소개하고 있는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교회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서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성찬예식을 행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 가르침에 합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제나 성찬이나 기도가 다 사도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행하여져야만 그것이 참된 교회의 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사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나 가르침을 극히 적은 부분입니다.

  그냥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그들이 본 그대로를 증언한 것입니다.

  왜 죽으셨는지 그 죽으심 앞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을 지나 늦게 사도에 합류한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를 보면 복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모든 서신이 그렇지만 특별히 로마서나 에베소서에 의하면 그 복음의 의미기 무엇인지 그 복음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자신 있게 외치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고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얻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고

  그 복음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시는데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을 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복음을 믿는 믿음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게 되었고 그 믿음의 대상인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어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그런 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나 하고 복음과 반대되는 이야기만 함으로서 교회를 세속적인 종교로 만들어 버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이 사도들의 가르침이 계속되게 하는 곳입니다. 

  사도들처럼 신앙고백을 하게 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오늘 본문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이상한 말로 설교를 하니까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 말로 알아듣고 그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서로 교제하고 성찬예식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여기 두려워했다는 사람들은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같이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교회의 식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교회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무서운 마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군중심리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들끼리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지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비웃고 침을 뱉으며 조롱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난 후 그들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다 없어져버릴 것이고 찍소리도 못하고 도망가 버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도 있고 다 도망가 버릴 줄 알았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서 방언을 하고 설교를 하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제자들의 편이 되고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예수님 편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남은 사람들은 슬슬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며 모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 세상이 끝날 때 심판주로 오셔서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런 우리 교회 앞에서 세상 사람들은 벌벌 떨면서 우리를 무서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우리를 무시하고 비웃으며 손가락질 하며 욕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 자기들 편에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자기들 편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도 가지고 있고 돈도 가지고 있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의 비웃음거리나 되고 하니까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살아야 할 우리들이 세상을 부러워하고 사니까 저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알고 자기들의 처지를 바르게 안다면 우리들이 부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세상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에나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다 가진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쓸데없는 것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쓸데없는 것들은 많이 알고 있지만 꼭 필요한 진리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몰라서 저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밤잠을 못자고 늘 벌벌 떨면서 술로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세상 사람들이 바라고 누리는 이 세상의 행복을 좇아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세상에서 탈출시켜서 영원한 생명을 주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게 해 주셨는데 그런 교회에 와서 망할 세상을 부러워하며 세상을 향하여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한다는 이 말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움 마음으로 섬겨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사실은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은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과 다른 두려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지만 우리의 두려움은 벌을 받을까봐서 무서워서 떠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너무나 좋으셔서 너무나 우리를 환대하셔서 너무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셔서 너무 감사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 하나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부득불 한번 비교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 좀 주고서 되게 생색을 냅니다.

  고맙다는 표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금방 끝내버립니다.

  조금만 맘에 안 들게 하면 줬던 것도 도로 내놓으라고 합니다.

  기분이 좀 좋지 않으면 금방 원수처럼 생각을 해버립니다.

  수시로 변하고 수시로 의심을 하고 수시로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너무 귀한 것을 주시면서 조금도 생색을 내시거나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보고 불경을 저질러도 한번 택하신 백성은 절대 버리시지 않으시고 한번 약속하신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시고 한번 사랑하신 자녀는 끝까지 변함없이 언제나 사랑해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한 번의 선택으로 영원한 세상까지 보장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이렇게 크신 은혜 앞에서 우리는 그 높으신 하나님께 두려운 마음으로 영광을 돌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하나님을 몰라보고 때로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몰라서 그런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 다 귀하게 여기며 섬겨야 합니다.


  개혁주의 목사이고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있는 미국의 존 맥아더 목사님은 그의 교회론에서 교회에서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높은 차원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교회의 제일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고 해서

  세상의 부모님처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초대교회에서는 기적과 표적들이 사도들을 통하여 많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라는 말은 놀라운 일 인간의 기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자연법칙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말합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그 놀라운 일에 어떤 신호가 들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런 뜻이 없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놀라운 일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기적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법칙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려나가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특별한 시기에는 이런 놀라운 기적과 표적들을 통하여 일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자 할 때에는 놀라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실 때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출애굽뿐만 아니라 모세오경이 기록된 때도 그 때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지서를 기록할 때도 놀라운 표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선지자들의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보이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을 알리는 것이고 또 복음서를 기록한 시기이기 때문에 놀라운 표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시고 초대교회가 시작될 때도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의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의 기록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복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복음전파와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표적에 관해서는 우리가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기적이 다 하나님의 뜻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탄의 역사로 일어나는 기적도 있고

  때로는 이방종교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간의 능력으로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재능을 통하여 훈련을 통하여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정신적인 일을 통해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표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고 또 거짓으로 기적을 조작해서 우리를 유혹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기적적인 일을 보면 더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 기적과 표적을 사도들을 통해서 일어났다고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특별히 증인의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표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사도도 아니면서 사도들의 흉내를 내려고 하거나 최소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기적을 일으키려고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는 다 사이비 이단이거나 거짓선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인 자연법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칙은 다 하나님의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원리도 선한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법들을 잘 지키면서 그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살려고 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적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겠지만 보통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연의 법칙들 일반은총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기적 같은 일들을 많이 체험하고 삽니다.

  눈앞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세월을 지나고 보면 아 그때가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신앙생활 하는 이 자체가 기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귀한 진리를 깨달으셨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귀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중하차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직까지 여기 계십니까?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있었는데도 그 유혹을 이기고 여기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인해서 불구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아직도 교회 안에 남아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입니다.

 

  더 기적 같은 일은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희생하며 헌신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욕심이 다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세상에서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돈 한 푼이 아깝고 남을 위해 쓰면 배 아프고 그런 이기심이 다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를 위해서 쓰지 않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먼저 쓸 줄 아는 마음을 가진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재능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는 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런 기적이 일어나야합니다.

  그것이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런 표적이 없이 그냥 교회만 왔다가 갔다가 하고 주님을 위한 희생이 조금도 없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이나 헌신이 없는 삶을 산다고 하면 그것을 표적이 있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고 새로운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영광스런 신분을 주신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기적과 표적들이 우리 삶 속에도 주님을 섬기는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