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41)

  본문 : 행 2:46-47   

  제목 : 하나님을 찬미하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왜 교회에 다니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 교회에 다니세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어떤 사람은 왜 교회에 다니는지 잘 모르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알아도 잘못 알아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바른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신칭의의 진리를 바르게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의 기준인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 와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이 너무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우리 같은 죄인들이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임을 압니다.


  그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미리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믿음이 나무나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믿음이 정말로 우리에게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있으나마나 한 것이고 별 볼일 없는 것이라면 있든지 말든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하겠지만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확인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믿음도 아닌 가짜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는 정말로 큰 낭패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인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열심이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참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주일 낮예배 오후예배, 수요일 금요일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와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주일에 겨우 주일 하루 그것도 낮예배나 드리고 가버리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일까 없는 사람일까 궁금해집니다.


  열심히 전도를 하고 시간이나 재능이나 물질을 바쳐서 충성을 다하고 또 선한일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는 성도들을 보면 우리는 참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도 의심이 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경공부를 하고 제자훈련을 받고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지식을 배우고 훈련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가 과연 믿음의 바른 지식을 가지고라도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에 너무 주눅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열심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야할 덕목이기는 하지만 그 열심 자체를 가지고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고 그 열심 자체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그런 열심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자신들의 열심을 의로 여기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 참된 진리의 길 참된 지리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지도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엄청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히 바른 열심히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2-4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도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믿음을 따른 열심히 아닌 열심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즉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 다른 점은 일반 종교는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의 종교입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깨닫고 자신들이 만들고 자신들을 위해서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기준을 알고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와 거짓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 무엇으로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장황하게 서론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47절의 “하나님을 찬미하며”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가신 믿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강해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사도행전 1-3장을 “진정한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설교집을 냈습니다.

  그가 오늘 본문을 강해하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 즉 “하나님을 찬미하며”가 종교와 기독교를, 그리고 참기독교와 거짓 기독교를 구분하는 핵심 텍스트라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의미를 알고 그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의미도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기 때문에 이 찬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특별한 추수감사 주일에 구원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바르게 알고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찬양을 드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오늘 본문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찬미는 칭찬, 찬송, 찬양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찬미나 찬송이나 찬양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초대교회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중심에 있는 “하나님을 찬미하며”하는 말씀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할 때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대로 구원받는 백성이 더해지는 것도 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과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기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들은 얼마 전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들이 한 행동 때문에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지르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침을 뱉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평생 두려움에 떨면서 후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몰랐으면 그것이 죄인지 뭔지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잘한 일인 줄 착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흉악한 일이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가롯 유다처럼 어디 가서 목이나 매달아 죽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뻐하며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의미를 알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된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그 구원 받은 백성이 된 것에 감사를 드리고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구원이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던 우리에게 너무나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난 후에 그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찬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노예처럼 종살이하던 그 지옥 같은 애굽에서 탈출을 하는데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는 말을 탄 애굽의 군사들이 죽이려고 달려오는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육지처럼 길을 내어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를 합니다.

  그 뒤를 따르던 애굽의 병사들이 물속의 길로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 길을 물로 덮으셔서 몰살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가 감사한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노래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15:1-2)

  

  모세의 누이 미리암도 손에 작은북을 잡고 그 뒤를 따르는 여자들도 함께 작은 북을 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자손손이 기쁨으로 이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했고 그들의 감사제목이 그들의 노래제목이 이 구원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기뻐할까요?

  이런저런 기쁜 일도 많겠지만 기쁨보다 걱정되는 일 어려운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더 염려되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 앞에 죽음의 요단강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죽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습니다.

  부자나 권력가나 똑똑한 사람이나 다 소용이 없습니다.

  누구나가 다 죽어야 하고 죽은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이라는 엄청난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이 힘들다고 자살을 하지만 죽은 후에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감사절을 지키면서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죽음에서 이런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같이 홍해를 건넌 것보다 더 기적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이 우리 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기적같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 하나가지고 이렇게 엄청난 구원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을 해서 이루었다면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누가 나를 좀 도와주어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별로 감사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내 스스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누가 도와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로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러 나갔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귀신들도 그들에게 항복을 하고 엄청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면서 예수님께 보고를 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20)

  사람들은 그들 앞에 나타난 기적을 자랑하고 그들이 행한 일을 자랑하고 그들의 실적을 가지고 자랑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도 없고 그런 실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우리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여기 이렇게 와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힘들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기쁜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미함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참 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를 구분해 주는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오늘 본문 47절 말씀에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온 백성들이 그들을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칭찬을 받을 만합니다.

  열심히 선전에 모이기를 힘쓰지요

  네 것 내 것이 없이 서로 나누어 쓰지요

  또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요

  기쁨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지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에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온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을까요?

  여기 온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들이 하는 일이 옳은 줄을 아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유대인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저들을 박해하여서 모이지 못하게 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칭찬한 사람들은 진리를 바르게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의 욕심이나 채우고 권력이나 휘두르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그런 진리를 아는 사람들의 눈에 보면 칭찬받을 것이 없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교세를 키워서 자기 자랑을 하려고 목회를 하는 잘못된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성도들도 교회에 나와서 어떻게 하든지 복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일에 칭찬을 합니다.

  외형적인 것을 보고 잘했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칭찬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잘못된 눈을 가지고 그 잘못된 눈으로 평가하면서 칭찬을 하는 칭찬에 목말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들과 같은 체 합니다.

  그들처럼 세상의 쾌락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들처럼 세상의 부귀영화화 성공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천국이나 지옥을 말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구원을 모르고 영원한 천국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가, 어떤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가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진리와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칭찬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야 하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늘 본문 47절에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 교회에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를 하고 노력을 하면 교회의 교인들은 많아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성도는 주님께서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잘 알지 못해서 아무에게나 복음을 전하고 아무나 초대를 해서 교회에 오게 하지만 그 사람들은 교인일 뿐이지 구원받는 성도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쳐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서 그 은혜를 깨닫고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자리까지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착각을 하면서 삽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풀고 우리가 잘 해주고 우리가 기도해주고 하면 다 구원받을 백성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해주어도 안 될 사람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면 그 안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도 않고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도 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고 그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받은 구원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미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이 완성될 주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 그 구원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죄의 오염에서 죄의 성향에서 점점 벗어나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교리에서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점점 변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좀 더 주님과 가까이 가게 만듭니다.

  그런 변화가 없는 사람은 그런 구원을 받아가는 사람이 아니면 믿음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신앙

  매일 매일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신앙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더 깨닫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나아가는 사람이 참된 신앙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참된 신자인가를 구별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바르게 아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사람이 진정한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