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49)
  본문 : 행 3:13-15   
  제목 :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성경을 보면 대부분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이야기로 읽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뜻을 많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일반 상식을 많이 알면 좋은 것처럼 성경도 그냥 읽어서 아는 상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유익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읽기만 해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내용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해야 그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해석이 어떤 개인의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님의 역사가 있는 해석인지에 따라서 그 내용이 엄청나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자기의 생각대로 해석을 하는 것과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받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석을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알고 또 그 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을 왜 거기에 기록을 하고 있는지 그 말씀 앞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교는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그 냉용을 정확히 해석을 해서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서 전해주고 그 말씀을 왜 기록하고 있는지 그 말씀을 내 삶속에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하는지 까지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서 대부분 이 세 가지 단계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구분은 안 되어 있다고 해도 그런 방향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렇게 구별을 해서 단계적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 구별을 마음에 두고 설교를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지난 시간에는 13절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그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13절 하반절의 말씀부터 15절의 말씀까지를 가지고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 사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는데 어떤 일인가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는데 그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셨는데 그 과정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입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죽이는데 그들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자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인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빌라도는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에서 보낸 총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형시킬 권한이 빌라도 총독에게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 박아 사형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형을 시킬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냥 놔주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서 매나 몇 대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절대로 풀어주어서는 안된다고 데모를 합니다.
  꼭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떼를 씁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꾀를 써서 예수님을 풀어줄 방도를 내놨습니다.
  명절이 되면 죄수 한 사람을 사면시켜주는 관례가 있는데 그 관례를 가지고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사면하여 풀어준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당시에 아주 제일 악질적인 죄인인 바라바라는 사람과 예수님을 놓고 둘 중 한 사람을 풀어주자고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은 별로 죄가 없고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은 살인자에다가 민란을 일으킨 흉악한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놓아주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흉악한 죄인을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계속해서 우겨서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일이 우습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사형을 시켜야 할 죄인은 사면이 되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죽게 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 편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못 죽여서 안달을 하다가 결국 죽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간단하게 다시 살려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바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악함과 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중점적으로 관심을 가질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중점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간이 어떤 상태인가를 바르게 알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스스로 선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스스로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악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냥 보고 계시다가 선을 행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만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주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 완벽한 능력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그 도움과 나의 노력으로 인해서 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조금만 능력을 주시고 지켜보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의로운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을 행하면서 산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앞을 못 보는 봉사에다가 말을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에다가 스스로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앉은뱅이와 같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이 없이는 진리가 무엇인지 바른 삶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인간들의 이야기 할 때는 대부분이 비정상적이고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한 사람도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이야기도 그런 인간의 악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언급된 사람들은 성전 곁의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불리는 곳에 모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악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인간들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악한 우리들을 끝까지 버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는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1)사람은 사악하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 인간은 너무나 사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기본 양심은 있는 것인데 인간에게 있어야 하 기본 양심마저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여기 악한 사람이 있고 조금 선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구의 편이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선한 사람의 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자기의 이권이 조금이라도 걸려 있으면 태도는 금방 바뀝니다.
  악한 사람이 나에게 국물이라도 좀 준다면 그 사람 편이 됩니다.
  악한 사람이 나와 사돈네팔촌만 된다고 해도 고향 사람이라고만 해도 우리의 기준은 바뀌어 버립니다.

  나에게 불이익을 주고 나를 욕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바른 일을 해도 
그 사람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빌라도에게 내어준 사람들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유대교 지도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들 이권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매우 꾸짖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이 이권을 행사하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에 한사코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사람은 무지하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런데 보면 참 무지하고 어리석습니다.

  물론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옛날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분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날마다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뭘 잘 모르면 뭐가 잘 생각이 안 나면 네이버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줍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몸에 좋은 운동이 무엇인지 어디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다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들을 가지고 또 더 발전한 과학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중요한 것을 아는 일에는 점점 더 무식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면 이 세상이 가진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입니다.
  정작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오히려 알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지식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전파하신 것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었습니다.  
  그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조상 때부터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이었고 성경에 기록된 핵심적인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줄줄 외우고 다닌다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그 하나님나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지식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는 악한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연구하여 설교를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참 무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 천국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모두들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권력에 눈이 어두워서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3)사람은 선보다 악을 더 선호한다.
  선하고 좋은 것과 악하고 나쁜 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선하고 좋은 것을 선택한다고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말씀들은 그렇게 하시는데 막상 선택하신 것들을 보면 선하고 좋은 것보다는 악하고 나쁜 것을 붙잡고 계시는 분들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악하고 나쁜 것들이 우선은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은 입에 쓴 것이 많고 몸에 나쁜 음식은 입에 달고 맛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몸에 좋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먹는 것은 입에 단것을 먹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세상의 재미를 보는 것보다 좋은 일인 줄을 다 압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고 나쁜 것을 선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를 좋아하고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주를 죽였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가려는 악한 영이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악한 사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사탄이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에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착각을 하여 자신들이 선하고 바른 길을 간다고 생각하지만 악하고 무지하고 선보다 악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악함과 무지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도록 내어 준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일에 앞장을 서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런 악하고 무지한 일을 행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 선한 일을 행하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선하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선한 것을 택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죽이려고 하는 그들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4)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이시다.
  사실 생명의 주를 죽인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생명은 잠시 빼앗아 갈 수 있겠지만 영원한 생명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빼앗을 수도 없으면서 죄만 짓고 말았습니다.

  그런다고 생명의 예수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도 부활하신 신비한 몸을 가지고 나타나시고
  더 강하게 나타나고 더 큰 힘을 가진 심판주로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부활하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는 죽일 수 없는 몸으로 도 강하게 더 신비하게 살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일에 대해 증인입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쳐주고 그것을 놀랍게 여겨서 모여든 사람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설교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며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제로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의 서론으로 우리 인간들이 무지하고 악한 사람이며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생각은 오직 예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거나 자신들의 명예를 높인다거나 자신들의 생각이나 철학을 알린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구원을 받는다는 이 진리를 전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도 사도들처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제일로 여기고
  예수님을 믿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 전도와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의 겉 부분만 알고 일반상식정도로 생각을 하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는 귀한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말씀 속에 있는 깊은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깊이 알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대강 적당히만 알고 넘어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깊은 경지는 알지 못하고 늘 초보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신앙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그래야 신앙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서라고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그 유혹을 따라 생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께 헌금하고 충성하는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힘들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제일 초보자의 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있다가 기회만 되면 그 자리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거기서 늘 그렇게 맴돌고 있지 말고 깊은 곳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는 너무나 소중한 길입니다.

  여기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오면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받은 어쩔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사악하고 무지하고 선보다 악을 더 선호하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보다 이 세상의 복을 더 사랑하는 어쩔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