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50)
  본문 : 행 3:16   
  제목 :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다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선천성 불구자인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40이 되도록 구걸이나 하면서 먹고 살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성전 안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고침을 받은 사람이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곳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이 사람들이 나를 고쳐준 사람이라고 하자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 사람들을 향해서 베드로 사도가 설교를 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행한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을 행하신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거기 모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섬겨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것쯤은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이런 일을 하셨는가에 관심을 더 가진다는 것입니다.

  야 저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하나님의 기적을 실행할 수 있을까?
  기도를 많이 했거나 선한 일을 많이 했거나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이야.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서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베드로가 앞의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앉은뱅이에게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이런 은혜를 입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거야 
  앉은뱅이에게 우리가 알지 못한 어떤 경건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야.
  아마 구걸한 돈을 몰래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을지 몰라.
  아니면 비록 몸은 성전 문 앞에 있었지만 기도는 성전 안에 들어가서 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정성스럽게 했을 것이야
  그래서 이런 큰 은혜를 받게 되었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 것은 믿음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을 “그 이름을 믿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또 그 믿음을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믿음 예수님께로부터 온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앉은뱅이를 성하게 했고
  이 믿음이 앉은뱅이를 완전히 낫게 했습니다.
 
  이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하는 불구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성하게 하고 완전히 낫게 하여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설교를 들으면서 이 믿음에 관해서 잘 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왜 믿음이 그렇게 소중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 안에 있는 믿음

  오늘 본문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므로 이 사람이 성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그 이름을 믿으므로”라는 말을 영어성경에서는 헬라어 성경에 가깝게 “By faith in the name of Jesus”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이 사람이 성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이 누구의 믿음 때문인가 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믿음이 강해서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앉은뱅이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고침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믿음이 누구에게 있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천지 창조주 하나님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믿음을 말하면서 지금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속속들이 다 안다고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핵심적인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정작 진리를 바르게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무엇을 믿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사도신경 강해설교를 들으면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믿어야 할 여러 가지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창조주를 믿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믿어야 합니다.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가장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모든 믿음의 핵심에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성령님께서는 우리 속에 오셔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교회나 성도의 교제나 죄를 용서 받는 것이나 몸이 부활하는 것이나 영생을 얻는 모든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모든 믿음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 믿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그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그 이름의 뜻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이란 죄에서 구원을 받는 믿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이룬다고 했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지혜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진리를 바르게 배우게 되었고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이 믿음을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교회에 다니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믿는 목적을 부자가 되는 데 둡니다.
  육신이 질병을 고치고 싶은 사람은 믿는 목적을 병을 고치는데 둡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사람은 믿는 목적을 이 세상의 행복에 둡니다.

  이런 세상적은 목적은 믿음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면 이 세상의 일들도 행복하고 즐겁고 하는 일들이 잘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일 불행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저주의 대상으로 진노의 대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어지면 모든 면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들을 다 용서함을 받고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구원을 받는 믿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 이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밖에서 믿습니다. 라고 외쳐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처럼 삽니다.
  그냥 교회에 왔다가 갔다가 할 뿐이지 정말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가족이 되지 않습니다.
  늘 구경꾼처럼 나그네처럼 잠시 다녀가는 사람처럼 삽니다.

  예수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과 완전히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한 몸의 지체처럼 서로 한 몸을 이루면서 친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우면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알고 
  교회가 필요한 것을 채울 줄도 알고
  교회를 위해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잘 이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이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온 믿음

  본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는 말은 영어성경에서 “the faith that comes through hi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온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병자를 완전히 낫게 한 믿음이 어디서 왔느냐고 하면
  예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온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 2:8-9절에 믿음의 출처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배울 때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이 “나는”이라는 말이 먼저 나와서 “나는 믿습니다.” 라고 할 때 믿는 주체가 내가 되니까 그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을 착각할 것에 대한 주의사항을 말씀 드렸습니다.
 
  “나는 믿습니다.”라고 할 때 이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거나 나의 공로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나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믿는다고 내가 믿었다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믿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 드렸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너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으로 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과 반대되는 개념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불교나 유교나 무속종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말을 오해합니다.
  믿음이란 마치 불교에서나 유교에서나 무속종교에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 행위를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좋다고 할 때 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짐이 없이 하고 그것도 오랜 시간동안 하는 것을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고 수시로 일주일 혹은 한 달씩 기도 기간을 정하고 기도 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유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고 인간관계를 잘 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바르게살기운동 본부처럼 생각을 합니다.

  오랫동안 무속신앙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좋다고 할 때 어떤 신비한 말을 하고 예언을 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에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면서 철야를 하면서 기간을 정하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해서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행위를 하고 나서 하나님 이만하면 됐지요 이런 공로가 있는 저에게 이제 구원을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우리가 이런 일들을 행하였는가를 살펴보고 거기에 따라서 의로운 사람이니 악한 사람이니 하고 판단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그런 일들을 행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40일이 아니라 수천 일을 금식을 하면서 고행을 한다고 해도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다고 해도 그런 것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나의 의로운 행위를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그것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 즉 창세전에 선택을 하신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가진 믿음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우리는 늘 불안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나온 믿음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조석으로 바뀌는데 지금 내가 믿는다고 했지만 내일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직까지 우리 마음에 믿음이 남아 있는 것은 그 믿음의 출처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날들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끝까지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심이 많고 도저히 남을 믿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진 내가 아직도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으로 이 믿음을 나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믿음은 엄청난 위력을 가진 믿음입니다.
  우리를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닌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졌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