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53)
  본문 : 행 3:19-21   
  제목 : 회개, 돌이킴, 죄 사함, 새롭게 됨.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브라이언 채펠(Bryan Chapell)이 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라는 책의 서론에서 강해설교가 효력을 잃게 된 요소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의 권위가 점점 약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첫 번째 요소의 결과로서 생겨난 것으로 복음주의 설교자들이 설교의 초점을 하나님의 진리보다 도덕적인 교훈이나 사회 개혁에 두게 된 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강해설교는 성경 말씀 그대로를 전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진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설교 중에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강해설교마저 효력을 잃고 있는 것은 설교자들이 강해설교를 한다고 하면서도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이 세상의 축복이나 이 세상의 윤리도덕이나 행복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설교를 하기 때문에 설교가 능력을 잃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이 세상의 일 때문에 흔들립니다.
  우리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 교회도 돈도 좀 많아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칭찬도 받는 그런 교회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바른 진리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까지 세상으로 빠지면 누가 이 진리를 파수하겠습니까?
  우리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누가 참된 신앙을 지키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끝까지 진리를 사수하고 복음을 사수하고 참된 신앙의 길로 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에 들어 있는 중요한 핵심 단어는 회개, 돌이킴, 죄 사함, 새롭게 됨이라는 네 개의 단어입니다.

  이 말씀에는 진리의 길 영생의 길로 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이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들어서 다 잘 아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주 엉뚱한 길로도 갈 수 있는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이 중요한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인이냐 비 신앙인이냐 참된 신앙인이냐 잘못된 신앙인이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1.회개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라고 했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너무나 많이 들어서 잘 아실 것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회개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라는 단어를 써서 마음이나 목적이나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잘 못된 것임을 깨닫고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생각인 줄 알고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가고 있던 목적지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대로 두고 내가 생각하던 것 그대로 두고 내가 가고 있는 길 그대로 두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고백하는 정도를 회개라고 하지 않고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나의 생각과 내가 목적한 바가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꾸고 돌이키는 것이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회개하라고 하면서 그 앞에 “그러므로”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그러므로”가 왜 회개해야 하는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 생각과 그들의 목적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알게 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못은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회개해야 할 큰 죄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많이 알고 그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나 절기나 제사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도 많이 하는 종교적 열심을 가졌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몰라본 것입니다.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알아야 구원이 필요하고 구주 예수님이 필요했을 것인데 자신들이 그런 흉악한 죄인이 아니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롭다는 착각을 그 교만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진정한 회개 없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진정한 회개가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회개도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을 칭찬해주기만을 바라고 그런 교회나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도 없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개를 요구하지도 않고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교회에 오기만 하면 복을 준다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아무리 잘못해도 사랑만 해주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고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알고 있던 것들을 과거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바른 설교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이 잘못된 것들이 많고 부족한 생각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조금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고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지식이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수십 년을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바꾸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복 받아서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인생의 목적을 바꾸지 않습니다.

  신앙의 목적지는 이 세상의 행복을 포기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의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목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돌이키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가던 길 그대로 아니 더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나 목적지를 바꾸는 것이 회개인데 이런 회개 없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 생각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2. 돌이킴  

  19절에 “회개하고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돌이킨다는 말이 회개 속에 포함이 된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깨닫고 바로 고친 사람은 그 잘못에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돌이키라는 말을 재차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은 잘못인 것을 알고도 후회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다시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 중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그 잘못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이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른 길로 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고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가 생각하기를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세상에서의 삶을 구원해주시리라고 생각했으나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그것을 고쳐서 바른 메시야 관을 가지고 다시 예수님을 잘 따라가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그 뜻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 자기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음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서 돌이켜서 바른 길로 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인간인지라 예수님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보다 이 세상의 축복을 더 좋아하고 십자가의 반대 길로 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말씀을 통하여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붙잡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예 말씀을 듣지 않아서 깨닫지 못하거나 
  말씀을 듣고 알면서도 세상 욕심 때문에 돌이키지 못하고 늘 가던 길로 가고 있으면 안 됩니다.


3. 죄 사함 

  본문 19절에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죄 없이함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죄 없이함을 받으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엑살레입호(ἐξαλείφω)라는 단어인데 “닦아 없애버리다”, “씻어 버리다”, “지우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믿음 안에 구원이 있음을 믿고 세상으로 향해서 가던 길을 바꿔서 믿음의 길로 가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는다는 사실은 귀가 따갑도록 들으셔서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에게 있는 바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 사함은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칠 때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 할 때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이나 죄 사함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점점 완성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죄악 속에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하다가 주님 다시 오실 날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조금씩 완성이 되어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교리에서 성화라고 배웠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거룩한 삶을 살게 되고 조금씩 조금씩 그 구원이 이루어져 나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속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속에 와 계신 성령님은 살아계시고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 속에 있는 죄악들이 씻겨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죄 사함을 영어성경에서 wiped out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완전히 파괴해서 없애버리다”, “쓸어버리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저는 이 단어에서 차 앞 유리에 달려 있는 wiper를 생각했습니다.
  비가 올 때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빗물을 닦아줌으로 앞이 잘 보이게 해 주는 소중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가 자주 오는 것처럼 죄악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세상입니다.
   이 죄를 수시로 닦아내지 않으면 앞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거나 사고를 내고 마는 아주 위험한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동안 늘 이 죄 씻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수시로 우리의 생각을 점검하고 우리가 수시로 우리의 목적지를 점검하여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이 죄 씻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가는 길이 밝게 보이고 바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새롭게 됨

  본문 19절 말씀에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 새롭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이 죄악 된 육신을 버리고 이 죄악 된 세상의 삶을 버리고 유쾌하게 되는 날이 우리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는 날 완성이 될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말씀 드린 대로 이 새롭게 되는 것도 우리가 사는 삶속에서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한 우리의 삶도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된다는 말의 헬라어는 아납쉭시스(ἀνάψυξις)라는 단어인데 “호흡의 회복”, “다시 숨을 쉬다.” “소생시키다” “유쾌하게 되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다시’ 또는 ‘위로’라는 말과 ‘숨을 쉬다.’는 말의 합성어로 숨을 쉬게 되는데 다시 숨을 쉬게 되고 위로부터 오는 숨을 쉬게 된다는 것입니다.
  호흡이 끊어져서 죽은 사람을 소생시켜 위로부터 오는 숨을 쉬고 다시 숨을 쉬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신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코에 불어넣은 생기가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숨을 쉬고 있지만 우리는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이어가는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영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인지도 알지 못하고 구세주가 필요한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목표대로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어서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깨닫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을 목적지로 삼고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살려하고 바른 예배를 드리기를 힘쓰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이런 영적활동이 점점 더 왕성해져 가는 사람이 새롭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 새롭게 됨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 영혼의 생명은 나이에 상관없이 날마다 더욱 새로워지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가져야 할 중요한 것들을 말씀드렸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죄 사함을 받고 새롭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루어나가야 할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더 많은 지식들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복음을 통한 구원을 아는 지식을 날마다 배워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목적지를 확인하시고 잘못된 목적지를 가지고 있으면 빨리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죄의 오염에서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영이 새로워져서 참된 신앙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