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73)
  본문 : 행 5:11   
  제목 : 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것.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우리 동네 앞산에 올라가면 산불조심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그 현수막에 산불을 낸 사람의 처벌에 대해서 방화는 7년 이상 실화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살아야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방화는 고의로 산불을 낸 것을 말합니다.
  일부러 남을 해치기 위해서 불을 지른 것을 방화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7년이고 그 이상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화는 실수로 불을 낸 것을 말합니다.
  불을 낼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가 실수로 불이 난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최고로 3년이고 경미한 경우는 벌금이나 조금 내고 용서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비단 화재뿐만 아니라 모든 형법에 있어서 그것이 고의냐 아니면 과실이냐에 따라서 받는 벌이 많은 차이가 납니다.
  사람이 살다가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만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는 아주 엄한 처벌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형법을 강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고의적인 죄와 과실로 인한 죄를 구별하십니다.
  어쩔 수 없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용서를 하시지만 알고도 일부러 지은 죄에 대해서는 엄한 처벌을 하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지은 죄는 어쩔 수가 없어서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된 죄가 아닙니다.
  부부가 공모를 하고 합심을 해서 고의로 지은 죄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일을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일부러 남을 속인 일이기 때문에 최고의 형벌을 받게 된 경우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요셉이 밭을 팔아서 바치고 칭찬을 듣는 것을 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교회 앞에 밭을 팔아 바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같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만 밭을 팔아서 바치기는 하되 얼마만큼은 감추고 나머지를 바치기로 의논을 하고 밭을 팔아서 일부만 바쳤습니다.

  그 결과는 아주 비참했습니다.
  칭찬 좀 들으려고 밭까지 팔았는데 조금 덜 바치고 거짓말 좀 했다는 이유로 부부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나 이 사건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속이고 죽임을 당할 때도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5절)라고 했습니다.
  삽비라가 역시 거짓말을 하고 죽임을 당할 때도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절)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직접 본 사람들은 물론이겠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다 같이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는 사람들도 평소에는 하나님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소 잘못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냥 넘어가주시는 일이 많으시기 때문에 성도들도 하나님을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 사건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다 아시고 살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악한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강해설교가들 중에 마틴 로이드 존스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 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설교하면서 이 사건 속에서 인간들은 네 가지의 중요한 원수들과 대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원수는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는 죄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는 죄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큰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원수는 우리를 움직이면서 조종하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원수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죽음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원수는 이런 것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원래부터 우리의 원수가 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바르게 잘 지키면 우리가 복을 받는 유익한 것이지만 우리가 율법을 어겼을 때 그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는 원수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항하고 우리를 비참하게 하는 이 네 가지의 원수들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죄악 된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죄악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착하다고 의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다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들 마음속에 나쁜 죄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죄악 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게 했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했습니다.

  4절 말씀에 보면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했습니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더냐?”라고 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라고 했습니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어찌 네 마음대로 안 하고 나쁜 짓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죄악으로 오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로 마음이 쏠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하면 좋은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나쁜 일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떤 쪽을 택하면 될까요?

  당연히 좋은 편에 서서 좋은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나쁜 일을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대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일인데 우리의 마음이 악한 편으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죄는 대부분 욕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인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도 이 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명예에 대한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과 명예를 같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을 속이고 착취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필요도 없는 것까지 남이 가져야 할 것 까지 다 빼앗으면서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속을 잘 모르니까 돈이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부러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돈을 모은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런 사람은 저주의 대상이고 징계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명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합니다.
  칭찬을 받기 위해서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이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척 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 가식적인 선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십니다.
  잘난척하려고 하고 교만한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사람들은 속아서 칭찬을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면 다 잘 보이기 때문에 칭찬의 대상이 아니라 징계의 대상이 됩니다.

 

2)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죄를 범한 것은 사탄이 그 속에 가득해서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들의 죄성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욕심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 주변에서 시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마치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시만 방심을 하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에 약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으로 유혹을 하고
  이성에 약한 사람은 이성으로 유혹을 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노는 것으로 게으른 사람은 불로소득이나 일확천금으로 유혹을 하여서 넘어뜨립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오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드는데 믿다가 때려치우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아주 작은 일을 가지고 간단하게 넘어가버립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람이 사탄의 시험을 받는 것은 사람들이 일부러 유혹에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마치 100메다 밖에서 쏘는 화살과 같다고 했습니다.
  멀리서 화살이 날아오면 피하려는 마음만 있는 사람은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이 화살인 줄 알면서 즉 사탄의 유혹인 줄 알면서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오지도 않고 옆으로 비켜가는 화살을 일부러 가서 맞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피해갈 일을 찾아가서 맞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이 맞은 화살을 빼가지고 자기 가슴에 꽂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가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 인간을 속여서 유혹을 해서 죄를 짓게 만들고 자신과 함께 멸망을 당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오히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쪽으로 가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 죄악 된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싫어하시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을 싫어하십니다.
  마음만 먹으면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유혹을 당하는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죄를 죽음으로 벌을 내리십니다.
  인간에게 제일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인생은 늘 죽음 앞에 노출 되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우리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의 형벌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서 사형선고를 받고 그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죄수들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나를 심판하시고 사형선고를 내리시고 집행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4)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다 이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면 이 세상도 천국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율법을 다 잘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켜야 되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히려 율법의 반대편으로만 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어기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 좋은 율법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게 합니다.

  죄를 범하여 타락한 인생에게는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게 하는 원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의 계략,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악 된 삶,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은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보면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신칭의의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말로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기독교인답게 살지 않는다고 비난을 많이 받습니다.

  믿음의 위대함만 알고 진실한 고백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위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을 진실하게 고백을 해야 합니다.
  진실한 고백이라는 말은 고백만 진실 되게 말만 진실 되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백하는 그 믿음이 진실이 되려고 하면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 된 신앙고백은 성령님의 역사로 고백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 내 생각대로 하는 고백은 진실 된 고백이 되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내 속에 임하셔서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다면 성령님께서 믿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역시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성화의 역사도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오시면 믿음만 알게 하고 삶은 아무렇게나 살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백한 그 신앙대로 살게 해주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오염들을 제거해주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성향들을 없애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완전한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도진개진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죄를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삽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도록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늘 성령 충만함을 받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한 우리에게 사탄은 접근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성경을 읽고 늘 기도를 하고 늘 예배에 참속하고 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가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들을 향하여 선포하시는 성경말씀을 설교말씀을 잘 듣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교회에 온다고 해도 그것은 위선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죽음 뒤에 부활과 영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감쳐두고 계십니다.
  육신은 비록 잠시 죽음을 당하지만 영혼은 살아 있고 육신도 부활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도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 인간들에게 너무나 좋고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율법을 범해서 벌을 받게 하시기보다는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되고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게 하심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해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죄의 심판의 근거가 되고 죽음을 당하는 벌을 받게 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죄를 깨닫게 하고 죄 용서 받는 길을 알려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십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세상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심판이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운 마음으로 섬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다 큰 두려움을 가지게 했습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있는 그 죄악이 있습니다.
  그 사탄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그런 죄악에서 유혹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날 구원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로서 더욱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