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76)
  본문 : 행 5:17-20   
  제목 :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전하라.

   

  “17.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우리나라의 교회는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창기의 선교사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국 선교사들이 많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복음을 전함으로 오늘날 우리나라교회가 이렇게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에 우리나라 교회가 본래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복음이 원색 그대로 들어와야 되는데 여러 가지 환경들로 인해서 변색된 복음이 들어와서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인 이상규 교수님의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이라는 책에 미국교회가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문자적 강조라고 했습니다. 성경 그대로를 믿는 것은 좋은데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가르쳐서 성경 원래의 뜻과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로인해서 신조와 신앙고백 성례전에 무관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해서 그 문자를 해석해야 되는데 전체의 뜻을 무시하고 그 문장만 보고 해석을 함으로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부흥주의라고 했습니다. 당시 영국이나 미국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교회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는데 그것이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이끈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이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숫자적인 부흥만 앞세우고 참된 진리를 전파하거나 바른 신앙을 강조하지 못해서 덩치만 큰 이익집단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교회가 미국에 가서 주식회사가 되고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되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을 강해설교 하면서 평신도 때 알았던 신앙과 차이가 많음을 느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온 것인지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세월이 흐르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질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모습은 세월 따라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복음 자체가 변질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무시되고 생명의 말씀이 무시되고 엉뚱한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고 교회를 개혁했던 개혁주의자들의 사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전파했던 그 복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전했던 그 복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복음이 무엇이기에 목숨을 걸고 모든 삶을 포기하고 그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본문 16-19절 말씀에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싸움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아주 당당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비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의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사두개파 사람들은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들이 누릴 권세를 다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 마음대로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힘이 막강한 사람들은, 이미 잘 된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고 특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중요한 핵심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바꾸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해 온 것이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해 온 것이고 특별히 바꿀만한 이유도 없고 바꾸면 손해가 나는 일을 스스로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 시기와 질투심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오늘날도 구약성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대교식 신앙을 좋아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바르게 살아서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것이 바른 삶을 살게 하고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율법을 제대로 잘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지키는 척만 할 뿐이지 정말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받들어서 잘 지키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제일 큰 임무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려고만 노력을 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는 척하면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인데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오히려 미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예수님의 제자들을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옥문은 그대로 잠겨 있고 간수들도 보초를 잘 서고 있는데 제자들을 붙잡아 둔 그 감옥 안에는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편임을 기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잘못됐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구약이 아니고 신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그 약속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어서 신약 즉 예수님의 피로세운 새 언약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여전히 구약성경의 약속들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 약속의 핵심이 신약이고 피로세운 세 언약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편에 서 계시는가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전하라

 

  본문 20절 말씀에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제자들을 기적적으로 나오게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들 편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너희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짜 복음이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아예 성전으로 들어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전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구약성경 전체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을 부분적으로 보면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죽이는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을 무참히 죽여 버리는 엄한 말씀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될 때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인간들이 타락한 것과 타락한 인생들이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그 결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을 알 때 그것이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합니다. 그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에로의 구원이라는 것을 보고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다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전하지 말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참 뜻을 다 알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본문에 “이 생명의 말씀”은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들이 너무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의 말씀 영생의 말씀이 성경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성경의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7:2-3절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베드로 사도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을 때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사도들의 임무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게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주어진 사명도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고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들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알게 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들이 죽음으로 가는 것을 복음이라고 전합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복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잘 살라고 가르칩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르게 잘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그렇게 살려고만 노력을 하면 그 길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지만 그렇게 해서 영생을 얻을만하게 의롭게 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성공을 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길이고 좋은 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행복한 길이 아니라 저주의 길일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서 그것을 목표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그 부와 성공을 활용할 뿐이지 그것이 삶의 목적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세상의 성공이 신앙을 잃게 하는 요인이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도 그 감옥에서 나와야 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둔 것처럼 오늘날도 사탄의 세력이 복음을 믿고 따르려는 우리들을 이 세상의 감옥에 가두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불러내어 주셨는데 아직 그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의 욕심을 따르며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참된 자유를 가로막는 감옥입니다.

 

1) 이 세상의 부귀영화의 욕심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종교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영생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받아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하고 더럽고 게으른 아주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일부러 자기들만 사는 동네를 만들고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난했던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저렇게 잘 살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눈을 뜨고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고 성공을 해서 잘 살았습니다. 천하고 가난했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신분이 바뀌고 부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 되고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생명의 말씀을 전해서 이 세상이 전부가 이님을 알게 하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살지 말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살게 하는 곳입니다. 그런 교회를 다니면서 그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복음과 반대되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잘 살아야 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믿음을 버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잘 살아도, 행복하게 살아도 생명의 말씀 안에서 잘 살고 행복해야지 생명의 말씀을 떠나서 세상 부귀영화를 따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 살겠다고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겠다고 하나님의 말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떠나서 살려고 하십니까?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이 영생의 말씀을 두고 어디 가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시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2)외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의 감옥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장 큰 죄악은 마음은 딴 곳에 두고 외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화를 내시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도 다 이해를 하고 용서를 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사람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마태복음 23:25절에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릇이 겉보다는 속이 깨끗해야 되는데 겉은 깨끗한 것처럼 보이는데 속에는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다 들어 있는 그릇처럼 사람이 겉보다는 속마음이 더 중요한데 겉보기에는 신사 같은데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것이 당시 지도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제일 심각한 문제도 이 외식적인 믿음에 있습니다. 겉으로만 믿는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고 교회에 출석을 하지만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은 진실한 고백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 같은 진실한 삶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강옥에서 나오게 하시면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감옥에 갇혀있지 마시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좋아 보이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참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